위스키 업계가 고급화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기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국내 위스키 시장이 꺾이기 시작하면서, 브랜드별로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한 돌파구라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 영빈관에 전시된 발베니 50년 숙성 제품. /양범수 기자

14일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위스키 더 발베니(THE BALBENIE)를 수입하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WG&S)는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에서 발베니 50년 컬렉션을 비롯한 고숙성 위스키 제품들의 경매를 진행한다.

발베니 50년 컬렉션은 발베니 50년 숙성 제품과 발베니 증류소 투어(2인)로 구성됐으며, 추정가만 1억3000만원에 이른다. WG&S가 국내에 공식 출시한 2015년 이후 세 번째 판매되는 것이다. 2015년 판매 가격은 1세트(2병)에 1억원이었으니, 9년 사이 1병 당 가격이 2배가 된 셈이다.

WG&S는 이날 경매에서 발베니 50년 숙성 제품 외에도 25년·30년·40년 숙성 제품과 1974·1980 빈티지 제품도 경매를 진행한다. 이들 제품은 발베니가 2021년부터 한국의 전통공예 장인들과 진행한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으로 만들어진 공예품들과 구성돼 경매에 붙여진다.

공예품과 함께 경매에 오르는 것임을 감안해도 시작 추정가가 425만~7000만원에 달한다. WG&S는 이날 메이커스 캠페인 작품과 함께 에디션으로 판매되는 제품의 수익금은 전액 한국 전통공예 발전을 위해 기부할 방침이다.

수익금을 기부하는 만큼 발베니가 고숙성 제품에 대한 마케팅을 벌이는 셈이다. 발베니는 WG&S가 서울신라호텔에서 운영하는 더 디스틸러스 라이브러리에서 고숙성 제품과 오래된 빈티지 제품 등을 상시 판매하고 있다.

위스키 업계는 이런 고숙성 제품에 대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 더 맥캘란(THE MACLLAN)은 지난달 영국 고급 자동차 브랜드 벤틀리와 협업해 만든 맥캘란 호라이즌 출시에 이어 연내 창립 200주년 기념 제품을 출시한다.

맥캘란 200주년 기념 제품은 1940년 생산돼 84년 간 숙성된 위스키와 맥캘란 증류소가 증설한 뒤 2018년에 처음 만들어진 위스키를 활용해 만들어진다. 전 세계에 200병만 출시되는 제품으로 구체적인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약 19만달러(2억5783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더 글렌드로낙을 수입하는 한국브라운포맨 역시 내년에 한국 시장에 고숙성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글렌드로낙 증류소를 이끄는 레이첼 배리(Rachel Barrie) 마스터 블렌더는 지난 8월 국내 기자간담회에서 “위스키 애호가들도 만족할 수 있는 40~50년 숙성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맥캘란 84년 숙성 제품(왼쪽)과 글렌드로낙 50년 숙성 제품. /각 사 제공

업계에서는 위스키 업계가 고숙성 제품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국내 위스키 시장이 성장 단계를 넘어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겪은 급격한 양적 성장이 끝나면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되어 고관여자의 수요를 맞추는 게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발베니·맥캘란·글렌드로낙과 같은 스카시 위스키 수입량은 올해 들어 줄고 있지만 수입 금액은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스카시 위스키 수입량은 5841톤(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 감소했다. 수입 금액은 1억76만달러(1367억4139만원)로 같은 기간 3% 늘었다.

고품질 위스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영향으로 주류 수입사들의 올해 실적 역시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회계연도를 연중으로 잡고 있는 몇몇 주류 수입사의 지난 회계연도 실적은 직전 회계연도 대비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렌타인·로얄살루트 등을 수입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는 2023회계연도(2023년 7월 1일~2024년 6월 30일) 매출액은 1752억원으로 5.5% 줄었지만, 53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직전 회계연도 대비 3.3% 증가했다. 조니워커·라가불린 등을 수입하는 디아지오코리아의 지난 회계연도 매출은 1625억원으로 5.9%증가했다. 다만, 영업이익은 82억원을 기록하면서 같은 기간 2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스키 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좋지 못하다 보니 브랜드 파워가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라면서 “고숙성 제품에 대한 마케팅은 제품의 판매를 넘어 브랜드 역사를 강조해 타 브랜드와 차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주류 브랜드들이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