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와인은 격변의 시대를 거치고 있다.

와인은 세계 곳곳에 깃발을 꽂았던 유럽 열강 문화 중심에 자리를 잡았지만, 정작 세계화는 더딘 편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유럽 국가들이 밀집한 지중해 지역에서 생산·소비했다.

이제 와인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에서 즐기는 세계적인 음료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상황은 썩 좋지 않다. 기후변화에 따라 생산 환경이 급변하면서 글로벌 와인 산업은 갈림길에 섰다. 1인 가구와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 세대)의 달라진 음주 문화로 와인 소비량 역시 매년 출렁이고 있다.

지난해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거의 매일 와인을 마시는 18세 이상 성인이 10명 중 1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시장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발표한 프랑스 와인 소비 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에서 와인을 일상적으로(매일 또는 거의 매일) 마신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의 11%로 집계, 직전 조사 당시인 2015년에 비해 5%포인트 줄었다. 52%는 와인을 ‘종종(주 1~2회) 마신다’고 응답했거나 ‘어쩌다 한 번(월 1~2회) 마신다’고 했다.

무엇보다 ‘와인을 아예 안 마신다’는 응답도 37%에 달했다. 입소스에 조사를 맡긴 프랑스농수산물진흥공사는 “(조사를 처음 시작한) 1980년에는 와인을 일상적으로 마시는 사람 비율이 성인 인구 절반(51%)에 달했다”며 “40여 년 만에 와인을 일상적으로 마시는 성인 비율이 5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가장 주된 이유는 와인이 다른 주류에 비해 비싸다는 인식이 확산한 탓이다. 프랑스 내 이민자 수가 늘면서 와인을 반주로 즐기는 프랑스 식(食)문화도 쇠퇴했다. 와인을 곁들인 코스식 정찬을 즐기는 기회가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와인 소비량도 줄었다. 근로 강도가 세져 낮에 와인을 마시기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픽=정서희

프랑스 최대 와인 회사 카스텔(Castel) 그룹은 이 시류에 반기를 들었다. 카스텔 그룹은 전 세계 와인 기업 가운데 몸집이 세번째로 크다. 현재 전 세계 53개국에 와인을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국제 와인 시장에서는 보통 50달러(약 6만5000원)를 넘는 와인을 프리미엄 와인으로 구분한다. 프랑스 현지 대형마트에서도 30유로 이상은 비싼 와인 취급을 받는다. 100유로(약 15만원)를 웃도는 와인은 프랑스는 물론 미국 같은 세계 최대 와인 시장에서도 기념일에나 찾는 귀한 몸이다.

로쉐마제는 프랑스 최대 와인 산지 랑그독 지역에서 만든다. 이 지역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연중 300일 이상 햇빛이 풍부하게 들고, 여름에 건조하고 뜨겁지만 해발 고도가 높아서 밤에는 서늘한 편이다. 여기에 양분이 충분한 충적토가 넓게 펼쳐져 있어 포도 농사를 짓기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도 프랑스 전체 와인 생산량 가운데 30% 이상을 생산한다.

대량으로 와인을 만들다 보니 이 지역 와이너리는 품질보다 양을 우선시한다는 악명이 따라왔다. ‘랑그독 와인은 질 낮은 테이블급 와인’이라는 고정관념도 점차 퍼졌다.

카스텔 그룹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랑그독 지역에 투자를 감행했다. 인근 대학 교수진, 와인 전문가와 협력관계를 맺고 체계적인 포도 재배를 시작했다. 또 주변에 좋은 포도밭을 추가로 사들여 와인 양조 전문가를 배치했다. 동시에 와이너리 양조 설비는 최신식으로 바꾸고 유럽 최대 규모 와인 숙성실과 운송 시설을 구축했다.

2015년 로쉐마제는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주류 통계 기관 IWSR이 인정한 프랑스 와인 판매 1위에 등극했다. IWSR에 따르면 로쉐마제 와인은 2020년 기준 프랑스 내에서 750ml 병 기준 6500만병이 팔렸다. 프랑스 인구가 6600만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프랑스 전 국민이 한 병씩 마신 셈이다.

로쉐마제는 2020년대 들어서도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프랑스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최근 로쉐마제 브랜드가 프랑스 내수 와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 정도다. 프랑스인이 한 해에 마시는 와인 7병 중 1병은 로쉐마제라는 계산이 나온다.

로쉐마제 로제는 랑그독이 자랑하는 두 포도품종 생소와 그르나슈를 섞어 만들었다. 로제 와인은 대체로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리고, 가볍고 상큼해 입맛을 돌게 한다. 그래서 미식을 즐기는 프랑스인들은 보통 더운 여름 식전에 로제 와인 한잔을 마신다. 로쉐마제는 이 와인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16도 정도로 즐기는 일반 레드 와인보다 훨씬 차가운 9도 정도에서 마셔보라고 권했다.

이 와인은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 로제 와인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수입사는 레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