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업계에도 다른 산업군처럼 상어 같은 포식자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대형 자본을 앞세우거나, 미디어나 정·재계 인맥을 동원해 몸집을 키운 뒤 생태계를 좌우한다.
몸집이 작은 독립 디자이너들은 이들이 좌우하는 생태계에서 생존을 위협받는다. 독립 디자이너 가운데 일부는 쇼 한번 올릴 장소를 찾아 억대에 달하는 돈을 쏟아붓는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한들, 무대를 구하지 못하고, 대형 유통 파트너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이내 브랜드를 접을 수밖에 없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경쟁력 있는 독립 디자이너들과 중소 패션 브랜드가 살아날 수 있도록 케이(K)-패션계에서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8일 무신사가 펴낸 ‘임팩트 리포트’에 따르면 무신사는 지난 2015년부터 올해 7월까지 중소 입점사에 상품 생산자금 3072억원을 무이자로 지원했다. 무신사와 계열사 29CM 누적 지원금을 합산한 수치다.
무신사 측은 “패션업계 특성상 제품을 먼저 생산하고 판매해야 하는데 고금리 시대에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 규모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상품 생산자금 무이자 대출을 10년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무신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시즌 생산자금을 처음 지원받은 한 중소업체는 지난해 9월부터 11월 사이 거래액이 직전 해보다 2.7배 늘었다. 무신사가 생산자금을 무이자로 지원해 준 덕에 살길을 찾은 셈이다.
무신사 생산자금 무이자 지원은 소규모 업체나 아직 진입 단계인 브랜드가 생산·마케팅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성장 촉진 프로젝트다. 지원금을 받는 업체 가운데 82%는 연 거래액이 50억원에 못 미치는 중소 업체다.
무신사가 시작한 상생 행보는 단순히 플랫폼뿐 아닌, 패션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무신사가 지원금을 대여하자, 삼성물산(028260) 패션 부문 패션·라이프스타일 쇼핑몰 SSF샵 같은 다른 대형 패션기업이 입점 브랜드에 성장 자금 대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또 무신사는 유망 브랜드 창업자에게 판매 전략과 상품 기획 컨설팅, 마케팅도 지원한다. 무신사는 동대문이나 성수, 한남 같은 서울권 주요 패션 상권에 촬영 스튜디오와 사무 공간을 갖춘 시설을 짓고 신진 디자이너 등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브랜드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부터 잠재력 높은 브랜드를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무신사 철학을 적용한 경영 방침이다.
무신사는 파트너 브랜드가 해외 판로를 키울 수 있도록 2022년 7월 무신사 글로벌 사이트를 열었다. 어느덧 13개국에서 유통과 판매를 진행한다. K-패션 영향력이 큰 일본에서는 2021년 별도 법인 ‘무신사 재팬’을 설립해 국내 파트너 브랜드가 일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동시에 국내외 비상장 패션 중소기업, 벤처 기업 투자와 성장을 지원하는 전문 벤처캐피털 ‘무신사 파트너스’에서 현재까지 900억원 가까운 금액을 투자해 관련 사업을 돕고 있다.
무신사 관계자는 “패션 브랜드를 창업하고 싶은 인재들을 발굴하기 위해 무신사 넥스트 패션 스콜라십(MNFS)에서 장학생을 선발하고, 브랜드 출시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신사는 패션 업계 침체에도 지난해 연결기준 연 매출 9931억원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현재 무신사에 입점한 브랜드 수는 8000개가 넘는다. 규모가 큰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유통 채널 확보가 어려운 국내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무신사에는 속속 입점했다.
무신사는 장차 주요 소비자로 떠오를 2030에 대한 따뜻한 관심도 사회적 가치 경영 차원에서 꾸준히 확대하는 중이다.
무신사는 지난달 자립준비청년의 홀로서기를 돕는 대외 활동 ‘너의 꿈을 응원해’ 캠페인을 펼친다고 전했다. 무신사는 보육시설, 공동생활가정에서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는 청년들을 돕기 위해 2022년부터 희망친구 기아대책과 함께 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무신사를 주로 사용하는 소비자층과 자립준비청년 연령대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기획한 ESG 경영 활동이다.
무신사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입시, 취업 등의 이유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때에 필요한 의류와 프로필 사진 등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신사 관계자는 “자립준비청년들이 개성과 취향을 발견하고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