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가뭄으로 배추 가격이 급등하면서 직접 김치를 담그는 대신 포장김치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 모양새다. 일부 대형마트·온라인몰에서는 포장김치가 일시적으로 품절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배추 가격 안정화를 위해 중국산 배추를 오는 27일부터 도매시장을 통해 공급할 예정인 가운데 업계에서는 중국산 배추가 수입돼도 한동안 포장김치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26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포장김치 코너. /연합뉴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상(001680) 종가 김치와 CJ제일제당(097950) 비비고 김치의 지난달 배추김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 넘게 증가했다. 대상 종가 김치는 지난달 전체 김치 매출이 전년보다 14% 늘었다. 특히 종가 포기김치, 종가 전라도포기김치, 종가 맛김치 등 배추김치 매출이 17% 증가했다. CJ제일제당 비비고 김치도 지난달 배추김치 매출이 지난해보다 12% 늘었다. 국내 포장김치 시장에서 대상과 CJ제일제당은 각각 점유율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두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50%가 넘는다.

서울 마포구의 한 이마트 매장을 찾은 김명자(51)씨는 “작년에 한 김장 김치를 거의 다 먹어서 새 김치를 담그려고 했다가 가격을 보고 놀랐다”며 “올여름 배추 작황이 안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했다. 김씨는 포장김치 코너에서 10㎏짜리 포장김치를 하나 카트에 담았다.

현재 포장김치 업계에선 품절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전날 대상 자사 몰 정원e샵에서는 배추김치 상품 35개가 일시 품절됐다. CJ제일제당 자사 몰 CJ더마켓에서도 배추김치 상품 21개가 일시 품절되기도 했다.

관련 업계는 배추 수급이 여유롭지 못한 상황을 염두에 둔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아워홈 관계자는 “고랭지 배추 사용 시기를 최대한 뒤로 늦춰 수급에 대응하고 있다”며 “강원도 태백·정선 등 사전에 물량 계약한 곳의 배추들을 점검해서 물량 확보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중”이라고 했다. 조선호텔 관계자는 “김장용으로 쓰는 가을·겨울 배추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전까지는 배추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대응책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시장에서 배추를 판매 하는 상인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일부 시중 마트에서 배추 한 포기당 가격이 2만 원을 넘는 등 '금 배추'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27일부터 중국산 배추 초도 물량 16톤을 도매시장에 공급해 가격 안정을 도모할 계획이다. /뉴스1

이번에 배추 가격이 급등한 건 추석 이후 공급되는 여름 배추의 작황이 좋지 못한 탓이다. 폭염과 가뭄에 배추가 잘 자라지 않으면서 공급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배추(상품) 1포기 평균 소매가격은 968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6.3% 비싸다. 일부 마트나 전통시장 등에서 팔리는 배추 1포기의 소매가격은 2만~2만3000원에 이른다. 20년째 배추 농사를 한 최 모(63)씨는 “올해 여름 배추 농사는 포기했다”며 “햇볕이 너무 강하고 비도 안 오면서 배추가 아예 자라지 못하고 잎이 새까맣게 타버려 상품성도 없었다”고 했다.

현재 배추 농가에서는 김장용 배추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전국 김장용 절임배추 생산이 많이 나는 강원도를 포함해 전남 해남·충북 괴산 등 배추 농가들은 협회 차원에서 생산 상황을 공유 중이다. 괴산에서 배추 농사 중인 박 모(60)씨는 “가을·겨울 배추는 8월 중순에 씨를 심는데, 날이 너무 뜨겁고 가물어서 물을 길어와 대는 등 노력한 덕분에 수급에 차질은 없어 보인다”며 “그나마 김장할 땐 배추값 폭등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괴산 절임배추협회에서는 지난해와 동등한 가격인 4만원(20㎏·택배비 별도 6000원)에 판매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배추 가격 안정을 위해 중국산 배추를 오는 27일부터 초도물량 16톤(t)을 도매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에 일부 대형마트에서도 중국산 배추 수급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은 신중한 입장이다. 중국산 배추는 무르고 달지 않아 소비자 선호가 높지 않은데다 중국산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부정적인 편이기 때문이다. 주부 이영순(57)씨는 “중국산 배추로 김치를 담그느니, 차라리 포장김치를 사먹으면서 김장용 배추가 나올 때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포장김치 매출 증가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포장김치 업계 관계자는 “국내산 배추와 고춧가루 등을 사용하는 만큼,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김장용 배추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포장김치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김치의 원재료인 배추 수급이 잘 안 되는 상황에서 비싼 돈을 주고 해먹는 것보다 포장김치를 사거나 안 먹는 게 경제적인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