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사들이 앞다퉈 진출했던 와인 사업이 쉽지 않은 모양새다. 와인 한 잔을 곁들이는 홈파티 문화가 엔데믹(풍토병화) 이후로 사라졌고 주머니 사정 문제로 와인 소비 자체가 감소한 탓이다. 유통 수입·유통사들 실적은 악화했다.

시장 확대를 믿고 와인 수입량을 늘린 상황에서 소비가 따라주지 않아 재고가 넘쳐난다. 살길을 찾아 나선 와인 유통사들 일부는 지점을 줄이고 사업 방향을 고급화로 돌리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 와인 전문 매장 줄인 롯데마트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마트의 주류 전문 매장인 보틀벙커 지점은 4곳에서 3곳으로 줄었다. 보틀벙커 2호점이었던 창원중앙점이 지난달 말 영업을 종료했기 때문이다. 남은 곳은 잠실점과 광주상무점, 서울역점이다. 창원중앙점이 문을 닫는 이유는 매출이 부진해서다. 롯데마트 1층에 약 300평 규모로 크게 구획을 잡고 장사를 시작했지만 기대만큼 집객력이 크지 않았다. 나머지 지점들의 매출도 좋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보틀벙커는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가 마트 집객력을 높이기 위해 꺼내든 카드다. 주류는 사실상 오프라인으로만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점 초창기엔 효과도 봤다. 하지만 와인에 대한 대중적인 소비가 줄어들면서 반짝인기에 그치게 됐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와인 시장 소매판매량은 5400만리터를 기록했다. 2022년 와인 소매판매량(6300만리터)과 비교하면 14%가량 줄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주류는 와인, 하이볼, 위스키, 꼬냑 등등 유행이 너무 빨리 바뀐다”며 “유행은 빠르게 지나는데 대규모로 매장을 꾸려 사업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개점한 하우스 오브 신세계 와인 셀라 전경. /신세계백화점 제공

◇ 대중화보다 고급 와인 집중하는 신세계·현대·갤러리아

일부는 고급 와인 판매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신세계엘앤비는 작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와인 편집숍 ‘와인앤모어’의 매장을 6개가량 줄였다. 또 중저가 와인보다는 고급 와인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할 계획이다. 꾸준히 와인을 즐기는 애호가 층이 고급 와인 중심으로 간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신세계엘앤비는 와인앤모어 시그니처 매장인 청담점 등 핵심 점포의 규모를 확대하고 고가 와인을 중심으로 판매하는 등 리뉴얼에 나설 계획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와인 사업 확장을 하며 “합리적인 가격으로 와인 대중화를 이루겠다”고 했던 출사표를 감안하면 사업 방향을 정반대로 수정한 셈이다.

와인 유통을 위해 새로 꾸려진 회사들도 부진을 겪고 있다. 한화갤러리아의 와인 자회사 비노갤러리아는 이달 3일 3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했다. 지난해 법인을 차리고 1년 만에 자금을 추가로 넣었다. 작년 비노갤러리아 매출은 4억4000만원, 영업손실은 1억9000만원이었다.

갤러리아는 사업 확대를 위한 추가 출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회사는 와인을 고급 콘텐츠의 일환으로 가져갈 계획이다. 국내에서 만나 보기 힘든 희귀 와인과 1억원 이상의 초고가 위스키를 직매입해 프리미엄 와인숍 ‘더 비노 494(THE VINO 494)’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더 비노 494는 지난 13일 갤러리아명품관에 개점했다.

현대백화점의 와인 수입·유통 전문 자회사 비노에이치 역시 지난해 매출 39억원, 영업손실 2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전년도 손실(6000만원)보다 손실액이 확대됐다. 비노에이치 내부적으로는 전년 대비 2%가량 역신장을 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도 전체 와인시장이 줄어든 것에 비해서는 선방하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 비노에이치 관계자는 “매출 중심의 무리한 확장을 지양하고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와인 상품을 개발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