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택배로 받은윤석열 대통령 추석 선물세트입니다.미개봉 상태로내용물은 인터넷 정보로 대신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 명절 선물 세트가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준 선물도 예외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추석을 맞아 사회 각계 인사들에게 선물 세트를 전달했다.
이 선물 세트 가운데 일부는 전해진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바로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라왔다. 고(高)물가가 이어지면서 선호하지 않는 선물이나, 불필요한 선물을 되파는 짠테크(짠돌이 재테크)가 이번 명절에도 부각되고 있다.
가격은 20만~25만원을 호가했다. 거래희망장소는 서울 당산동부터 부산 해운대구까지 다양했다. 판매자들은 일제히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상품’이라는 점과 ‘방금 받아서 전혀 맛보거나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날 오후 대통령실은 전통주 산업을 활성화하고 지역 특산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도라지약주(경남 진주), 유자약주(경남 거제), 사과고추장(충북 보은), 배잼(울산 울주), 매화 핸드크림(전남 담양), 청귤 핸드크림(제주 서귀포)으로 구성한 선물을 국가 유공자나 각계 인사에게 보냈다.
통상 대통령은 설과 추석 명절에 국가나 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한 각계 인사들에게 선물을 전한다. 이때 명절 선물비는 대통령 업무추진비에서 집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역시 취임 이후 명절마다 이런 선물 세트를 보냈다. 이때마다 윤 대통령이 보낸 선물세트는 당근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 15만~30만원 사이에 팔렸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구성품들이 비매품이지만, 전반적인 구성을 볼 때 대통령실이 시중에서 5만~8만원 사이 팔리는 수준으로 선물 세트를 구성한 듯 보인다”며 “대통령이 보낸 선물이라는 프리미엄을 감안해도 30만원은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을 거래 지역으로 설정한 뒤 ‘추석 선물’을 검색한 결과 수백여개가 넘는 판매글이 나왔다.
햄이나 김 세트부터 통조림 같은 식품류, 바디워시나 샴푸 같은 생활용품까지 명절 대표 선물이 주로 눈에 띄었다. 대부분 1만~3만원대 제품이 많았다. 인터넷에서 5만원대에 판매 중인 스팸 세트는 1만원대에 팔렸다. 유통기한이 길어 오래 소비할 수 있는 품목에는 ‘돌아오는 명절이 쓰셔도 된다’는 소개 글도 달렸다.
한우나 홍삼 같은 고가 선물을 판다는 글도 보였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10만원대에 판매되는 홍삼 세트는 5만원을 넘지 않았다. 눈여겨봤던 물건들은 2~3시간 후에 다시 찾으면 이미 팔린 경우가 잦았다. 특히 시중가보다 50% 넘게 싸다 싶은 물건은 거의 ‘거래 완료’ 표시가 붙어 있었다.
추석 선물 세트를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파는 행위는 2030 세대에게 익숙하다. 과거에는 처치 곤란해 묵혀뒀던 선물이지만, 지금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되팔 수 있다. 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당근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1700만 명에 육박한다. 번개장터는 280만 명, 네이버 중고나라는 90만 명 수준이다.
선물 세트를 사고팔아 본 이들은 “이분 저분 추석 선물을 드릴 명단을 짜다 보면 싼 선물 여러 개가 모여 부담스러운 가격이 되기도 한다”며 “구매자는 정가보다 저렴하게 선물 세트를 살 수 있고, 판매자는 필요 없는 물건을 현금화해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5부터 건강기능식품도 개인 간 중고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침향환이나 인삼·홍삼 선물 세트 같은 중장년층용 선물 세트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건강기능식품은 사람 몸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제조 및 가공한 식품을 뜻한다. 홍삼, 비타민, 프로바이오틱스 등이 대표적인 건강기능식품이다. 기존에는 현행법에 따라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할 경우 영업 신고를 해야 했다. 개인이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해당 규제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 권고를 반영해 선물로 받은 건강기능식품을 온라인에서 팔 수 있는 길을 터줬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명절 때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선물세트 되팔기가 반복되는 현상은 안 주고 안 받아도 되는 선물을 굳이 서로 주고받으려는 불필요한 관행 때문”이라며 “필요한 상품을 살 수 있게 전통시장 상품권을 주거나, 선물을 고를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