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따른 지역 소멸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위기 속 지역과 상생하는 유통업체들도 있다. 조선비즈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토종 유통업체들의 현장 및 지자체 현황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지난 21일 이른 아침 강원도 원주시 진광중학교 앞.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로 드문드문 바쁜 걸음을 옮기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이 학교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우산일반산업단지다. 우산일반산업단지는 1970년 조성된 강원도 지역의 ‘형님 격’ 산단(산업단지)이다. 강원도에 따르면 현재 이 산단에는 27개 기업 근로자 1700여 명이 일한다.

이 가운데 1300여 명은 삼양식품(003230) 혹은 그 계열사에 다닌다. 우산공단길을 지나자마자 거대한 건물 위로 어렴풋이 삼양라운드스퀘어 글씨가 보였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삼양식품그룹 지주사 이름이다. 원주공장은 면과 스낵, 소스류, 조미소재를 생산하는 삼양식품 제1공장이다.

공단 앞 종합복지관 관계자에게 “정문이 어느 쪽인가”라고 물으니 “저쪽 제일 큰 건물 보이는 곳 따라 쭉 가면 전부 삼양 공장”이라고 알려줬다. 이어 그는 “여기 전부 삼양 다니는 사람들인데 뭐 그런 걸 물어보냐”라고 반문했다.

삼양식품 원주공장 전경. /삼양식품 제공

강원도는 산업화 이후에도 이렇다 할 향토 기업이 없었다. 개발이 어려운 지형과 혹독한 겨울, 낮은 인구밀도 탓까지 공장 만들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 와중에 삼양식품은 1989년 이후 강원도 원주에서 35년 동안 자리를 잡고 있다. 우산일반산업단지는 삼양식품과 계열사를 중심으로 한 ‘삼양타운’이다. 삼양식품은 이 공장 단지에 ‘삼양라운드스퀘어 원주캠퍼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장 부지는 총 4만 평(약 13만제곱미터)에 달한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삼양식품 원주공장 옆으로 삼양제분과 삼양라운드어스, 삼양스퀘어팩, 삼양로지스틱스 같은 계열사들이 있다”며 “1989년 준공한 후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첨단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고, 투자를 꾸준히 하다 보니 규모가 커졌다”고 말했다.

삼양라면을 만든 삼양식품 창업주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은 강원도 철원 이북 출신이다.

전 창업주는 6·25 전쟁이 끝난 직후,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 부대 잔반을 끓인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노동자들을 보고 라면 사업을 결심했다. 이후 인맥을 동원해 일본 묘조식품(明星)에서 인스턴트 라면 제조 기술을 무상으로 원조받았다.

삼양라운드어스 직원들이 야채선별장에서 라면스프의 원료인 건조야채에 이물질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 /삼양식품 제공

첫 공장은 서울 도봉동이었다. 그러나 삼양식품은 원주로 이전한 후 도약했다. 전 창업주는 물 좋고 공기 좋은 원주가 좋은 식품을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2022년 5월 밀양공장을 준공하기 전까지 원주공장은 삼양식품 전체 면류 생산량 가운데 80%를 만들었다. 불닭볶음면 수출 신화가 시작할 무렵, 그 수출 거점도 원주였다.

불닭볶음면은 2012년 4월 처음 등장했다. 이후 2016년 브랜드 매출 180억원에서 2017년 1300억원, 2018년 2000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 삼양라운드스퀘어 원주캠퍼스 전체에는 700여 명이 일했다. 이 인원은 불닭볶음면 인기에 힘입어 8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고용 인원은 올해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2016년에는 원주공장 내 라면 생산라인을 6~7개 정도만 가동했는데, 현재는 주간에만 12개 라인을 운영한다”며 “올해 2월 원주시와 공장 신설을 위한 투자협약을 맺어 내년 상반기까지 생산 인력 30명을 새로 고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주공장 덕분에 라면은 강원도가 자랑하는 효자 수출 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강원도 농식품 수출 누적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2억5300만달러)보다 27% 증가한 3억21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라면은 소스류(불고기·떡볶이), 주류(소주·곡물 발효주)와 함께 가공식품 부문 수출을 이끌었다.

그래픽=정서희

지난 35년 동안 삼양식품과 원주 시민들은 수차례 경제 위기를 함께 겪었다.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원주에서는 범시민 운동 차원에서 삼양식품 구하기를 시작했다. 원주시는 원주상공회의소와 함께 1998년 2월 6일 대책회의를 열고 ‘향토기업 삼양 살리기 협의회’를 꾸렸다. 향토기업 삼양 살리기 협의회에는 원주교육청, 1군사령부, 원주시 번영회, 원주시 새마을 부녀회 같은 지역 단체 37개가 일제히 참여했다.

원주시에 따르면 당시 삼양식품을 돕자는 현수막 수십 개가 원주시청 2청사 벽면을 포함한 시내 곳곳에 걸렸다.

시민들은 2월 강원도 찬 바람을 맞으며 화의 신청 조기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화의란 기업이 파산·부도 위험에 직면했을 때 법원 중재를 받아 채권자들과 채무 변제협정을 체결해 파산을 피하는 제도다. 협의회 소속 사회단체들은 ‘원주시민 단결하여 향토기업 살립시다’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서명 참여를 부탁했다.

그 결과 당시 5만7000여 명의 시민이 삼양식품의 조속한 화의를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했다고 강원도는 전했다.

삼양식품 원주공장 생산라인. /삼양식품 제공

삼양식품 역시 원주 사회에 묵묵히 이익을 환원해 왔다.

삼양식품은 원주시 연탄은행 밥상공동체에 매년 정기적으로 연탄 5000장과 라면 200박스를 후원하고 있다. 일과사랑 장애인 보호작업장과 어울림 발달장애인 주간 보호작업장에는 매월 제품을 정기후원하고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원주캠퍼스가 자리한 우산동 일대 16개 경로당에는 지역 어른을 위해 매년 설과 추석 때마다 한 곳당 300만원 상당 제품을 매년 직접 방문해 기부한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경로당 지원은 창업주 전중윤 명예회장이 지시한 유지 사업”이라며 “전 창업주가 1970년도 확대간부회의 석상 이후 늘 공익 활동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는 매년 원주권에서 팔리는 삼양라면(40개 입) 1박스당 400원을 기부한다. 삼양식품에 따르면 이런 기부활동에 사용하는 금액은 2020~2023년 연평균 3억원 규모로 불어났다.

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일환으로 치악산 국립공원사무소와 손잡고 생물종 다양성 증진 및 생태계 보전 활동에도 나섰다. 원주공장 직원들은 정기적으로 국립공원을 찾아 멸종위기식물 증식 및 복원, 외래식물 제거, 치악산 국립공원 깃대종 모니터링 및 서식지 관리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다.

올해 3월부터는 황금박쥐 서식지 보존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는 기업이 환경보전에 참여하는 지역형 ESG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고 삼양식품은 전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원주권 지역협력업체를 거쳐 자재와 소모품을 사는 금액, 지역 인재 우선 채용 방식으로 원주에서 쓰는 예산 총액이 지난해 기준 800억원에 달한다”며 “삼양식품은 원주에서 생산설비 투자와 지역 인재 고용, 공장 건립이 곧 지역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