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옷 공장’으로 불리는 방글라데시에서 수백 명이 사망하는 대규모 유혈시위가 발생하자, 현지에 공장을 둔 국내외 패션기업들이 생산 차질 우려로 긴장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지난달 시작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400여 명이 사망했고, 6만여 명이 체포·기소됐다. 공무원 채용 시 독립 전쟁 유공자 후손을 우대하려는 정부 방침이 단순 가산점 같은 우대 차원을 넘어서면서 특혜 논란으로 번졌다.
여기에 만성적인 취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국민 대다수가 거리로 나서면서 시위는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국정 최고 책임자인 총리가 자리를 버리고 나라를 떠났다.
14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영원무역(111770)은 방글라데시 공장에서 일부 생산 차질을 빚었으며 현재 공장 운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KOTRA)에 따르면 영원무역은 1980년 방글라데시에 진출한 이후, 현재 수도 다카와 제2도시 치타공에 대규모 의류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영원무역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요가복 열풍을 일으킨 룰루레몬,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등을 위탁 생산(OEM)하는 기업이다. 현재 방글라데시 현지 인력을 6만 명 이상 고용하는 패션업계 큰 손이다.
영원무역 관계자는 “독립 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7월 20일에서 8월 6일 사이 통행금지, 인터넷 중단, 정부 셧다운 같은 조치가 이어졌다”며 “영원무역도 1주일 정도 생산 손실을 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8월 6일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망명한 후, 영원무역 모든 공장은 정상적으로 문제없이 운영하고 있다”며 “다만 현재 경찰 당국이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해 치안 문제가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방글라데시는 한반도 3분의 1만 한 면적에 1억 7000만 명이 몰려 산다. 의류 제조업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산업이 없어 실질 실업률이 40%에 달한다. 높은 실업률 때문에 임금이 주변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 노동집약적인 의류 제조업이 발달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는 전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많은 3500개 의류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공장에서 약 400만 명이 근무한다. 지난해 384억달러(약 52조4000억원) 상당 의류를 수출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의류 수출국 자리에 올랐다. 방글라데시 의류 제조 및 수출 협회(BGMEA)에 따르면 기성복 제조·수출은 이 나라 총수출액 83%를 차지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로이터는 스웨덴 SPA(제조·유통 일괄형) 패션 브랜드 H&M 소속 공장이 1000개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자라 등 스페인 SPA 공룡 인디텍스는 12개 단지에 273개 봉제 공장, 국내에서도 유명한 일본 SPA 브랜드 유니클로는 29개 공장을 운영 중이다.
이들은 세계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싼 인건비를 보고 방글라데시 공장과 손을 잡았다. 2022년 H&M 공급망 소속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받은 월급은 평균 134달러(약 18만3000원)였다. 캄보디아 노동자 평균(293달러) 대비 절반 이하였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 현지 공장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정상적인 가동이 어려운 실정이다.
로이터는 “이번 시위로 브랜드 대다수가 크고 작은 피해를 봤다”며 “아일랜드 SPA 프라이마크는 공장 내 폭력 사태를 우려하는 지경이고, 미국 유명 브랜드 슈프림 모기업 VF코퍼레이션은 방글라데시를 떠나 다른 국가에서 소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의류 수출업계에서 여름을 사이에 둔 6~9월은 성수기다. 저렴한 여름옷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겨울옷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주문량과 주문 금액이 다른 시기보다 많고 높다.
한 국내 의류업계 관계자는 “의류는 다른 상품보다 유행과 흐름에 민감하기 때문에 정확한 납기일에 약속한 물량을 확실히 공급해야 한다”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와 능력 있고 양심적인 참모진들이 과도정부를 이끌 예정이라 추가적인 소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