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노리카코리아가 발렌타인 12년을 단종하고, 대신 발렌타인 10년을 출시한다. 위스키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2030세대를 사로잡기 위한 시도다. 전문가들은 2년 짧아진 숙성 기한만큼 생산 비용을 줄이고, 재고 관리에 효율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평가했다.

9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주류기업 페르노리카의 한국 법인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최근 스카치 블렌디드 위스키 발렌타인 12년이 국내 시장에서 사라진다고 밝혔다.

발렌타인 12년은 2001년 국내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23년 동안 위스키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에게도 대중적인 위스키로 두루 사랑받았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공식 웹사이트에서 이 위스키를 '코어(핵심) 위스키 컬렉션' 가운데 최상위권 제품으로 추천했다. 발렌타인 17년부터는 '프레스티지(고급) 위스키 컬렉션'에 속한다. 이 때문에 주류업계에서는 '발렌타인 위스키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보여주는 위스키'로 통했다. 기본 위스키와 고급 위스키를 잇는 교두보였다는 의미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국내 소비자들이 위스키를 향유하는 문화가 달라져 발렌타인 12년을 단종한다고 했다.

페르노리카코리아 관계자는 "하이볼을 즐기는 트렌드에 맞춰 오는 가을 중으로 (발렌타인 12년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발렌타인 10년을 대신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발렌타인 10년을 통해 더욱 많은 소비자 니트(NEAT·어느 것도 첨가하지 않은 순수한 상태) 또는 하이볼로 발렌타인을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손민균

국내 블렌디드 위스키 시장에서 10년 숙성 위스키와 12년 숙성 위스키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 차이는 크지 않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이미 국내에 발렌타인 12년보다 저렴한 다른 발렌타인 브랜드 위스키를 팔고 있다. 발렌타인 파이니스트와 발렌타인 7년 버번 피니쉬가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은 12년과 같이 코어 위스키 컬렉션으로 묶인다. 제품 콘셉트와 소비층이 유사하다는 뜻이다.

김주한 미국 블루브릭바 바텐더는 "현재 시장에 유통 중인 발렌타인 파이니스트와 발렌타인 7년 버번 피니쉬는 가을에 나올 발렌타인 10년보다 저렴한 위스키"라며 "오로지 하이볼 시장 공략을 위한 싼 위스키 확보가 목적이라면 발렌타인 12년을 단종하더라도, 굳이 10년을 새로 내놓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주요 위스키 브랜드들은 시장 변화에 따라 페르노리카코리아처럼 오래 숙성한 위스키를 상대적으로 덜 숙성한 위스키로 종종 대체한다. 주로 비용을 절감하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다.

2018년 일본 산토리는 미국 시장에서 히비키(響) 17년을 단종하고,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라는 무연산(NAS·No Age Statement) 제품을 출시했다. 무연산 위스키는 원액 숙성 연한을 표시하지 않는다. 엄격한 연한 표기에서 자유로워 위스키 제조사가 원액 재고를 활용하기 쉽다.

종합주류회사 바카디 소속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 듀어스는 12년과 18년을 중심으로 한 제품군을 보완하기 위해 8년 숙성한 위스키를 내놨다. 이 제품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위스키 입문자 시선을 끌어당겼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그동안 발렌타인에 씌여진 '나이든 사람들이 마시는 독한 술' 이미지를 지우고, 소비 저변을 넓히기 위해 수년에 걸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7년 페르노리카코리아는 발렌타인 브랜드 모델로 40대가 넘은 중년 배우 정우성 씨와 이정재 씨를 내세웠다.

하지만 5년이 지난 2022년 남자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 민호와 배우 주지훈 씨로 모델을 바꿨다. 민호는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1991년생이다. 주 씨는 42세다. 발렌타인은 모델 교체에 맞춰 중후함과 고급스러움 대신 꿈을 키워드 삼아 발렌타인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했다.

브랜드 포지셔닝 전문가 김소형 데이비스앤컴퍼니 컨설턴트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브랜드별로 개성이 뚜렷해 차별화가 용이하지만, 여러 원액을 섞어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미묘한 풍미 차이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브랜드 이미지로 승부를 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류업계에서는 페르노리카코리아가 발렌타인 10년을 기존 발렌타인 12년보다 얼마나 저렴하게 내놓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발렌타인 12년은 현재 5만~6만원 정도에 팔린다. 관세에서 자유로운 면세점 판매가를 기준으로 발렌타인 10년은 12년보다 12% 정도 저렴하다. 이를 감안하면 국내에서 발렌타인 10년은 4만~5만원 대로 팔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주류도매업중앙회 관계자는 "5만원 미만 위스키는 전체 위스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큰 카테고리"라며 "경쟁사 디아지오가 같은 4만원대 시장에서 12년 숙성 위스키 조니워커 블랙라벨을 팔고 있는데, 2년 덜 숙성한 제품을 어떻게 포지셔닝할지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