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애호가들은 골프에 한 번 빠지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고 한다.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워 평소에 꾸준히 익혀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와인 전문가들이 와인을 읊을 때 하는 말과 똑 닮았다. 예의가 중요하고, 철학과 이어지며 인생에 비유할 수 있다는 점도 그렇다.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것을 찾게 되는 것도 골프와 와인의 닮은 점이다. 와인 향과 맛에 눈을 뜨면 좋아하는 생산지와 생산 연도를 따지면서 마시기 시작한다. 골프 역시 칠수록 잘 다듬어진 골프장과 본인 손에 꼭 맞는 골프채에 욕심을 부린다.

결정적으로 골프도 와인도 함께 마시는 사람, 같이 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얼마나 대화가 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지에 따라 그 자리에서 느끼는 즐거움의 양이 결정된다. 무엇보다 역경을 이겨내야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고, 피니시(finish)가 좋아야 한다는 공통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골프장 18홀 코스는 저마다 생김새와 난이도가 다르다. 와인 또한 만드는 국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개성을 띈다. 이 때문에 수없이 많은 와인 가운데 그날 라운딩에 꼭 어울리는 와인을 꼭 집기란 쉽지 않다.

일부 골프 선수들은 본인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다가 아예 본인 이름을 건 와인을 만든다. 이런 와인에는 만든 골퍼 성격이나, 골프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백상어’ 그렉 노먼은 호주 남동부 쿠나와라 지역에 직접 와이너리를 세웠다.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는 그가 이 와이너리에서 시라즈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2001년 꼭 마셔봐야 할 100대 와인’ 가운데 8위로 꼽았다.

부드러운 스윙의 대명사 어니 엘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와인 사업을 하기 전까지 와인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고 와인 산지 스텔렌보쉬에서 열린 한 골프대회에 나갔다가, 현재 부인 리젤을 만났다. 엘스는 ‘리젤을 만난 첫날 생전 처음으로 와인을 몇 병이나 나눠 마셨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이후 결혼했고, 엘스도 와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래픽=손민균

와인 업계 전문가들은 골프장 혹은 클럽 하우스야말로 와인이 가진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라운딩 도중 맥주처럼 마시는 캔 와인이 인기다.

골프 애호가 대부분은 충분한 여유를 갖고 골프장을 찾는다. 라운딩 내내 와인에 대한 충분한 대화를 나누기 좋다. 적절한 온도와 탁 트인 공간 역시 와인이 향기를 뿜어내는 데 이상적이다. 이런 자리에서는 굳이 격식을 차린 비싼 와인이 아니더라도, 해당 와인이 가진 잠재력을 드러난다.

국내에도 골프 애호가를 겨냥한 와인들이 따로 나온다. 챔피온과 롱디스턴스, 니어핀은 각각 겉면에 퍼터와 드라이버, 아이언이 그려진 골프장에 꼭 맞는 와인이다. 이들 와인은 포도 품종이 가진 특징을 골프 장비로 표현했다.

가령 챔피온은 이태리 아부르초 지역 토착 품종인 몬테풀치아노로 만든다. 이 포도로 만든 레드 와인은 입안에서 뻣뻣하다 싶을 만큼 뚜렷한 강건함이 느껴진다. 다소 남성적인 이미지가 어깨가 딱 벌어진 챔피언을 닮았다. 겉면에 그려진 퍼터 헤드처럼 묵직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롱디스턴스는 50년 이상 자란 포도 묘목에서 딴 가르나차 틴토네라라는 스페인 포도 품종으로 만들었다. 이 와인을 만든 콜로마 와이너리는 ‘장미와 산딸기 향이 나는 부드럽게 전체적으로 퍼지는 와인’이라고 표현했다. 겉면에 그려진 주먹만 한 헤드가 달린 드라이버는 ‘장타(長打)를 위해서는 이 와인처럼 부드러운 스윙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았다.

니어핀은 포르투갈 해안가 바이라다 지역에서 생산한 와인이다. 이 지역 와인은 국내에서 좀처럼 찾기 어렵지만, 맛과 향이 섬세해 팬이 많다. 한잔 입에 머금으면 레몬을 핥았을 때처럼 날카로운 산미가 바닷가 와인 특유의 소금기와 어울려 와인에 몰입도를 높여준다. 더운 여름 라운딩에 은은한 긴장감을 살리기 좋다.

골프 고수(高手)들은 장타를 치는 힘과 정확성도 중요하지만, 타수를 줄이려면 집중력을 끌어올려 아이언샷을 핀에 잘 붙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와인은 집중력과 날카로움을 산도가 높아 입에서 찌릿한 느낌을 주는 화이트 와인으로 표현했다. 겉표면에도 아이언을 그려 넣었다.

퀸타 도 발도에이로 블랑코 ‘니어핀’은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구대륙 화이트와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다. 수입사는 올빈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