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퀴즈. 바나나 우유에 바나나 들어있을까요? 대부분 아시고 있겠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실제 바나나 대신 바나나 맛을 내는 향료와 색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품 이름도 병 라벨을 자세히 보면, ‘바나나 우유’ 대신 ‘바나나맛 우유’입니다.
두번째 퀴즈. 그럼, 흔히 바나나 막걸리라고 부르는 술에는 바나나 들어있나요? 물론 바나나 없고, 바나나 향료와 색소가 들어있습니다. 현행 주세법에는 막걸리에 향과 색소를 넣을 경우, 막걸리로 분류되지 않고 기타주류가 돼, 일반 막걸리보다 세금이 8배 정도 비싸고, 또 병 라벨에 막걸리라는 이름을 쓸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나나 막걸리를 자세히 보면 ‘막걸리’란 글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실제 바나나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바나나맛 우유처럼 라벨에 ‘바나나맛(막걸리)’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바나나, 땅콩, 초코, 딸기 향과 색소를 넣은 ‘기타주류’ 막걸리도 당당하게 막걸리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주세 감면을 확대한다는 취지에서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를 허용하겠다고 최근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주인 막걸리에 향과 색소를 허용할 경우, 전통주의 전통성, 다양성, 차별성이 훼손돼 전통주 시장이 붕괴될 우려가 높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이다. 여기에는 전통주산업 활성화를 위해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 첨가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동안은 막걸리의 첨가물로 인정받지 못했던 향료와 색소를 앞으로는, 제조 원료로 인정해 주세 부담을 줄이고, 신제품 개발을 장려하겠다는 게 정부의 주세법 시행령 완화 취지다. 이번 정부의 세법 개정안은 이달초까지 입법예고 절차를 거친 뒤, 이달말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확정될 전망이다.
막걸리는 쌀, 누룩, 물로 만든다. 전통적 제조방식으로는 이 3가지 원료만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의 입맛 변화와 시대 흐름에 맞추어 전통누룩 대신, 입국 등 다양한 발효제 사용이 허용됐으며, 순차적으로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 사용도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막걸리의 맛과 색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향료와 색소는 막걸리 원료로 인정하지 않았다. 가령, 오미자 막걸리에는 실제 오미자 과일을 넣어야지, 오미자 향료와 색소는 넣지 못하도록 했다. 지역 농산물 소비를 촉진시킨다는 정부 취지도 작용했다. 그래서, 그동안은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를 넣을 경우, 막걸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타주류로 분류돼 일반 막걸리보다 8배 높은 세금을 내야 했고, 상표에 막걸리로 표기도 못하게 됐다. 막걸리는 현재 병당(750ml 기준) 33원의 세금을 내지만, 기타주류로 분류된 막걸리는 246원(과세표준 30%)의 비교적 높은 세금을 내왔다.
그러다보니, 양조장들이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어 향료와 색소를 조금이라도 넣을 경우, 고세율과 막걸리 표기 불가 대우를 받아, 세금 부담은 물론 판매에도 애로를 겪어왔다. 다양한 맛과 향의 제품 개발 역시 그동안 제약을 받아왔다는게 관련 업계의 주장이다. 그래서 막걸리 생산업체들의 단체인 한국막걸리협회를 중심으로 7~8년전부터 정부와 국회 등에 청원을 통해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 첨가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한국막걸리협회 경기호 회장(조은술 세종 대표)은 “막걸리에 향과 색소 첨가를 인정해달라는 요구는 업계 오랜 숙원사업”이라며 “이번 주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보다 다양한 막걸리들이 가격경쟁력까지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세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역시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반대론자가 사단법인 한국술산업연구소 류인수 소장이다. 류 소장은 국내 대표적인 전통주 교육기관인 한국가양주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전통주 전문가다. 류 소장은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를 허용할 경우, 지역농산물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지역특산주 제조면허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한다.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해 전통주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원료의 특색을 살린 차별화된 술을 제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반면, 앞으로는 막걸리의 대표적 부재료인 과일 같은 지역 농산물 사용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과일 등 천연재료 대신 과일 맛과 색상을 내는 향료와 색소를 첨가하면 향과 색이 훨씬 잘 우러나는 것은 물론, 제조원가도 크게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체 주류시장에 향과 색을 넣은 술들이 많아지면서 지역의 특색 있는 술들이 경쟁에서 밀릴 우려가 높다.”
그동안은 향료와 색소를 넣은 술은 ‘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돼 천연 원료를 사용한 ‘막걸리’와는 차별화가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정이 달라졌다. 향료와 색소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주세법상 세율이 같은 ‘막걸리’이기 때문에, 값비싼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 막걸리가 향, 색소를 넣은 막걸리보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류 소장은 이번 조치로 전통주시장이 붕괴될 우려가 높아졌다고까지 봤다. 그는 “우리나라는 막걸리에 대한 표시기준 및 등급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향료와 색소 허용시 저품질 술들이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것에 대한 견제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이로 인해 소비자의 혼선이 불가피하고 고품질 술이 성장할 수 있는 전통주 생태계 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류 소장은 지난달 30일 전통주 주무부처인 농식품부 관계자를 만나, 이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그는 앞으로도 110개 지역특산주 및 소규모 양조장을 대표해, ‘2024년 세법 개정안 중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 첨가를 반대한다’는 청원서를 정식으로 정부부처와 국회 등에 제출할 방침이다.
물론 향료와 색소 첨가 찬성론자의 의견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막걸리협회 경기호 회장은 “경기침체로 매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규모 업체들이, 앞으로는 향과 색소를 첨가한 다양한 제품들을 기타주류가 아닌 막걸리 브랜드로 출시할 수 있게 된 만큼,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침체된 막걸리 업계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막걸리에 향과 색소를 첨가하는 것은 막걸리의 오랜 전통을 훼손하는 행위다”는 일부 주장 역시 터무니 없다고 경기호 회장은 말한다.
“막걸리협회 주도로, 막걸리 빚기가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2021년)된데 이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는 취지는 쌀과 누룩으로 발효를 해서 지게미를 거르는 등의 막걸리 제조 과정 자체가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만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치 역시 전국 팔도에서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 지듯이, 막걸리 재료의 외연이 확대되는 것은 막걸리 문화의 훼손이 절대 아니다.”
경 회장은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를 첨가하는 것이 막걸리 세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외국에 수출되는 막걸리 절반 이상이 향과 색소를 첨가한 ‘기타주류’ 막걸리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당당하게 막걸리라는 이름을 쓸 수 있어, 해외수출이 날개를 달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물론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막걸리 세계화는, 우리 농산물로 만든 막걸리를 세계인이 누리도록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공적인 향과 색소를 넣은 막걸리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막걸리로 세계시장에 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에 ‘과일막걸리’ 시대를 연 주역인 ‘오미자막걸리’를 생산하는 문경주조 홍승희 대표는 “이번 개정안이 그대로 추진될 경우, 가뜩이나 농민주, 서민주 이미지가 강한 막걸리가 ‘값싼 술’이라는 인식이 더욱 고착될 우려가 크다”며 “정부는 우리술의 고급화에 더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2008년, 오미자 막걸리가 출시 직후 히트를 치자, 한때 오미자 맛을 내는 향과 색소를 첨가한 ‘짝퉁’ 오미자맛 막걸리들이 쏟아져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조사를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술산업연구소 류인수 소장은 “논란의 여지가 큰 막걸리 향료, 색소 추가는 1~2년 유예하면서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다시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걸리협회 경기호 회장은 “막걸리 향, 색소 허용은 소수의 규모 있는 막걸리업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만큼, 정부는 업계의 오랜 바람대로 개정안을 확정,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