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는 지구 정 반대편에 자리한 나라다. 서울에서 땅을 파고 내려가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나온다. 거리로 2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멀다는 이유 탓인지 아르헨티나가 가진 잠재력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아르헨티나는 국토 면적 기준 세계 8위다. 땅덩이가 우리보다 무려 28배가 크다. 동시에 세계 7위 와인 생산국이다. 수출 규모로 치면 세계 8위다.
그러나 우리나라 와인 시장에서는 항상 칠레에 밀렸다. 2021년 국제와인기구(OIV) 통계를 보면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량은 1250만헥토리터를 기록했다. 1340만헥토리터인 칠레와 거의 비슷하다. 심지어 2020년대 이전에는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량이 칠레를 앞서는 경우도 잦았다. 그럼에도 매번 우리나라에선 남미 이인자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와인 종주국 유럽 국가 못지않다. 아르헨티나는 인구 97%가 백인계다. 남미에서도 손꼽히는 백인 국가다. 이탈리아를 포함해 유럽에서 온 이민자 선조들 때문이다. 자연히 와인을 식사 자리마다 함께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와인이 국제 시장에서 저평가받는 이유가 ‘다른 나라에 팔기보다 직접 마셔서 소비하는 양이 많아서’라고 항변한다. 내수 시장에서 충분히 소비해서, 질 좋은 아르헨티나 와인을 다른 나라에 보여줄 기회가 적었다는 뜻이다. 아르헨티나 국민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은 18리터로, 1리터 남짓한 우리나라에 비해 15배 이상 많다.
아르헨티나산 와인을 홍보하는 공식 협회 ‘와인즈 오브 아르헨티나’ 역시 전체 와인 생산량 가운데 70%를 자국민이 소비하고, 30% 정도만 수출길에 오른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최대 와인 산지는 서부 멘도사(Mendoza) 지역이다. 이 지역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000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더 가깝다. 산티아고와 거리는 300킬로미터 남짓이다. 안데스 산맥을 사이에 두고 칠레가 자랑하는 최고급 와인 산지 푸엔테 알토는 서쪽에, 멘도사는 동쪽에 자리한다.
루한 데 쿠요(Lujan de Cuyo) 지역은 멘도사에서도 특히 품질 좋은 포도가 나는 지역이다. 루한 데 쿠요는 해발 1000미터에서 시작해 1400미터까지 넘나드는 고지대다. 높은 산골 사이로는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세가지 바람이 분다. 존다(Zonda), 수데스타다(Sudestada), 폴라(Polar)라 불리는 세 계절풍이다. 이 바람들은 포도 열매가 충분히 무르익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존다는 안데스산맥에서 일 년 내내 불어오는 서풍이다. 따뜻하고 건조해 겨우내 잠들었던 포도나무를 깨우는 역할을 한다. 수데스타다는 여름철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다. 작열하는 태양에 포도가 지나치게 익거나 타지 않도록 도와준다. 마지막 폴라는 겨울철 남극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이다. 이 바람은 포도나무 수액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포도 품종 말벡(Malbec)은 만생종(천천히 익는 품종)이다. 충분히 당도를 머금으려면 건조한 날씨가 필요하다. 이 바람들은 일 년 내내 포도가 습기에 썩지 않고 말벡 특유 과실 향을 품게 한다.
트라피체는 아르헨티나 최대 와인 그룹 그루포 페냐플로(Grupo Penaflor)가 소유한 7개 와이너리 중 하나다. 1883년 창립 이후 141년 동안 멘도사에서 아르헨티나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다.
오랜 역사만큼 경력도 화려하다. 현재 그루포 페냐플로는 아르헨티나 와인 전체 수출량 가운데 24%를 담당한다. 세계로 나가는 아르헨티나 와인 네 병 가운데 한 병이 이 그룹 소속 와인이다.
트라피체는 국제 시장에서 아르헨티나 와인이 제 평가를 받지 못하던 19세기에도 묵묵히, 고독하게 와인을 만들었다. 프랑스에서 직접 포도나무 묘목을 가져오고, 더 볕이 잘 드는 밭을 찾아 1000미터가 넘는 고지대를 일구기도 했다. 그 결과는 21세기에 들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와인 전문지 와인엔수지애스트는 2019년 트라피체를 올해의 신대륙 와이너리로 선정했다. 미국 나파밸리나 칠레 푸엔테 알토 유명 와이너리들을 모두 제치고 얻은 결실이다.
메달라 말벡은 트라피체 와이너리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와인이다. 트라피체가 받은 여러 상을 반영해 ‘메달을 받은 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니엘 파이 트라피체 수석 와인 양조가는 “아르헨티나 토양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소규모 포도원에서 자란 포도만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 와인은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신대륙 레드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금양인터내셔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