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앱 1위’ 배달의민족(배민)이 외식업주가 부담하는 중개 수수료를 주문 음식값 기준 6.8%에서 9.8%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2022년 초 정률 수수료 체계를 도입한 이후 2년 반 만에 인상이다.
발표 직후 배달업계와 소비자들은 술렁였다. 지난달 배달 기사 단체는 배민 배달 요금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정부 역시 강도 높게 물가 안정 권고를 하고 있다. 배달 비용은 서민 경제와 밀접하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배민이 수수료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은 이달 초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일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보도자료를 내고 이국환 대표가 사임한다고 알렸다. 이 대표는 배민을 1년 반 동안 이끌었다. 갑작스럽게 이 대표가 사임한 이유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아한형제들 모기업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수수료 인상을 지시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딜리버리히어로에 수천억 원대 벌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수료 인상 주장은 더 힘을 받았다. 딜리버리히어로는 7일 EU 집행위가 반경쟁적 계약 혐의로 4억유로(약 6000억원) 규모 벌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딜리버리히어로가 비용 마련 차원에서 수수료 인상을 요구했다는 예측이다.
그러나 배달업계 취재 결과 이번 수수료 인상 결정은 올해 초부터 이어진 쿠팡이츠와 배민 사이 무료 배달 경쟁에서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배달업계 2위 쿠팡이츠는 이커머스 쿠팡 유료 멤버십(와우 멤버십) 회원에 한해 배달 서비스를 무제한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배민도 즉각 또 다른 무료 배달 정책을 걸고 반격했다.
쿠팡은 무료 배달을 시작한 지 열흘 남짓 지나자 유료 멤버십 요금을 한 번에 월 4990원에서 월 7890원으로 58.1%(2900원) 인상했다. 무료 배달 경쟁에 쏟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인상한 가격은 다음 달부터 적용한다.
당시 쿠팡 관계자는 인상 이유를 두고 “쿠팡이츠(음식 배달 플랫폼)에서 배달비 무료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와우 멤버십 혜택이 그동안 계속 확대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민은 지난달 말에야 부랴부랴 배민클럽이라는 유료 멤버십 체계를 만들었다. 배민클럽은 3990원을 내고 가입해야 한다. 가입자에게는 무료 배달 혜택을 제공한다.
배민클럽은 현재 사전 가입자를 모집하는 단계다. 아직 정식 서비스는 시작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시작은 다음 달 20일부터다. 현재 배민은 서비스 시작을 앞두고 월 이용료 3990원을 1990원으로 할인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배민은 갈 길이 멀다. 쿠팡은 현재 와우 멤버십 가입자 1400만 명 이상을 확보했다. 다음 달부터 이들 가입자로부터 매달 7890원이 들어온다. 배민은 이제 막 한 달 1990원을 받는 멤버십 걸음마를 뗐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라이더(배달 기사) 단체가 쿠팡이나 배민 같은 플랫폼을 보이콧하고 정부까지 나서서 물가 안정을 강조하는 와중에 배민이 스스로 수수료 인상이라는 역주행을 했다”며 “쿠팡 와우 같은 유료 멤버십 없이 무료 배달을 제공하다가는 도저히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따른 판단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배민은 배달업계에서 마땅한 경쟁자 없는 1위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올해 쿠팡이츠가 무료 배달을 시작한 이후 배민이 구축한 아성에 금이 가고 있다.
지난달 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쿠팡 이츠 이용자는 1년 사이 68% 증가했다. 반면 배민 이용자는 정체 중이다. 신규 설치 이용자 수 역시 올해 3월부터 쿠팡이츠가 배민을 앞섰다.
배달업계 전체를 놓고 보면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배민이 60% 선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률 수수료를 적용하는 자체 배달 서비스(OD·Own Delivery) 시장에서 쿠팡이츠와 배민 시장 점유율은 비등비등해졌다고 배달업계 관계자들은 추정한다. OD는 플랫폼이 직접 배달 기사와 계약을 맺고 제공하는 서비스다. 배민은 배민1이라는 이름으로 OD 서비스를 제공한다. 쿠팡이츠는 모든 배달 서비스가 OD다.
한 배달업계 관계자는 “배민이 수수료를 쿠팡이츠 수준으로 인상했지만, 쿠팡이츠와 무료 배달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는 볼 수 없다”며 “쿠팡은 쿠팡대로 1400만 명이 넘는 와우 멤버십 가입자 가운데 실제 쿠팡이츠 이용자 수를 늘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고, 배민은 수많은 유료 멤버십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상황에서 배민클럽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