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에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베트남 날씨를 뚫고 하노이(昇龍)에서 차로 2시간쯤을 달리면 너른 평야 곳곳에 들어선 흰 공장과 널브러진 공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비어있는 넓은 땅. 하이트진로(000080)가 회사의 미래를 걸고 있는 베트남 공장의 터다.

며칠째 쏟아진 폭우로 생긴 물웅덩이와 무성한 풀, 땅의 경계를 보이기 위한 빨간 깃발들이 나부끼는 것이 전부였지만, 하이트진로는 오는 2026년에는 이곳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시장 공략을 위한 ‘소주’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10일 베트남 타이빈성 하이트진로 베트남 소주 공장 부지의 모습. /양범수 기자

◇ 86개국으로 나갈 수백 가지 제품 만들 ‘표준 공장’

조선비즈는 지난 10일 하이트진로의 첫 해외 생산기지가 들어설 예정인 베트남 타이빈(省太平)성 그린아이파크 공단을 찾았다. 여러 후보지에 대한 검토 끝에 공장 부지를 확정하고 현지 법인(진로소주 베트남)을 설립해 지난 5월에서야 토지 사용 절차를 마무리한 탓에 아직 비어 있는 땅이었지만, 대도시인 하노이·하이퐁(海防市) 등과 연결된 39번 국도와 인접해 있었다.

하이트진로는 이곳 8만2083㎡에 7700만달러(약 1067억원)를 들여 2025년 3분기까지 과일소주 생산 1개 라인을 완공할 계획이다. 아직 소방·방재 등 공장 건설을 위한 허가 절차가 남아있지만, 내년 1분기에 착공에 들어가 이르면 2026년 2분기에는 시운전 및 생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베트남 공장 부지는 하이트진로의 국내 최대 소주 생산기지인 이천 공장(17만5257㎡)에 비하면 절반이 안 되는 규모다. 하지만,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공장이 회사의 창립 100년 만에 만들어지는 첫 해외 생산기지인 만큼 생산 설비는 물론 건물 외형과 공간 조성 역시 특별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성훈 진로소주 베트남 법인장이 지난 10일 베트남 타이빈성 그린아이파크공단 홍보관에서 베트남 소주 공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양범수 기자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공장을 회사의 첫 ‘해외 표준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제조공정의 최적화·효율화된 설비 ▲주조용수를 위한 고도의 수처리 시스템 ▲전산화 물류 시스템 ▲국내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기준에 준하는 품질 관리 시스템 ▲유연 생산 시스템 ▲에너지관리 및 탄소 배출량 관리 시스템 등을 도입한다.

공장에 들어설 하나의 생산라인으로 86개국으로 수출되는 수백 가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자재 및 물류 관리와 동선 역시 최적화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위해 요소 차단을 위해 제품 제조 라인과 원료 자재 및 폐기물 처리 동선을 분리하고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스팀·전력 사용량 관리 체계도 갖출 예정이다.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공장의 건물 외형에 회사 로고는 물론, 두꺼비나 창립 연도를 의미하는 숫자 1924 등을 적용해 회사의 정체성을 담을 방침이다. 또, 공장 내부에는 현지 소비자를 비롯한 공장 방문객들이 회사의 역사와 제품의 우수성을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관과 견학로 등도 설치할 계획이다.

정성훈 진로소주 베트남 법인장은 “해외는 물론 국내에 공장을 새로 짓는다면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할 수 있을 수준의 공장이 될 것”이라면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공간임은 물론, 환경친화적인 공간이자 하이트진로가 가진 100년의 정체성과 우수함을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시장만을 위한 베트남 소주 공장이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제품 생산의 전초 기지로 삼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3단계에 걸친 공장 확장 계획도 마련했다. 연간 최소 100만 상자(2000만 병)의 과일소주 생산을 1단계로 하여 공장을 가동하고, 향후 수출량 증가세에 맞춰 일반 소주와 현지화 제품까지 500만 상자(1억 병)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베트남 공장 조감도. /하이트진로 제공

◇ 현지 생산으로 가격도 현지화해 시장 공략 가속

하이트진로 베트남 공장은 하이트진로가 글로벌 전략으로 ‘소주의 세계화’를 시행한 2017년부터 소주 제품 수출량이 지속해서 증가함에 따라 설립이 추진됐다. 수출량 증가에 맞춰 국내 공장 가동률도 지속해서 높여 오고 있지만, 베트남을 비롯해 주요 수출 대상국이 인접한 곳에서 생산하는 것이 시장 공략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이트진로의 소주 수출액은 2017년 338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1394억원으로 312% 증가했다. 소주 수출액 증가를 이끈 것은 과일소주를 비롯한 기타제재주 항목으로 같은 기간 해당 수출액은 69억원에서 792억원으로 11배 이상으로(104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반 소주 수출액은 269억원에서 602억원으로 124% 증가했다.

하이트진로는 경기 이천과 충북 청주, 전북 익산과 경남 마산 네 곳에서 소주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이들 공장의 평균 가동률 역시 수출액 증가에 맞춰 오름세를 보였다. 2017년 하이트진로의 소주 공장 평균 가동률은 65%로 66만3706㎘(1㎘=1000ℓ)의 소주 제품을 생산했는데, 지난해에는 77%의 평균 가동률을 기록하며 84만4022㎘의 제품을 생산했다.

무학 등 국내 소주 제조 업체의 일부 소주 공장 가동률이 90%를 넘는 곳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하이트진로 역시 국내 공장에서 수출량을 부담할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이트진로는 더 적극적인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국외 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면서 발생하는 관세·물류비·인건비 등 비용 부담을 낮춰 이를 시장 개척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황정호 전무는 “현지 생산에서 오는 이점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면서 진로의 대중화를 이루는 것이 해외 공장의 기본 콘셉트”라면서 “가격은 소비자가 제품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제품 가격 현지화는 시장 확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맞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베트남 하노이 타이빈성 그린아이파크공단 홍보관에서 하이트진로, 타이빈 성, 공단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하이트진로 베트남 공장 건립 설명회를 진행했다. /하이트진로 제공

하이트진로가 여러 공장 후보지 가운데 베트남을 선택한 것은 베트남 현지 소주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는 점과 타이빈성의 그린아이파크 산업단지가 베트남 개발 경제특구에 해당하는 공단으로서 입주 기업에 주어지는 법인세와 토지세 면제 등의 혜택이 크게 작용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국내에서 베트남으로 수출된 소주 금액은 2017년 403만달러에서 794만달러로 약 97% 증가했다. 베트남은 일본·미국·중국과 함께 우리나라의 4대 주요 소주 수출 대상국인데, 미국의 소주 수출액은 같은 기간 73% 증가했고 중국은 37% 증가했다. 가장 많은 소주 수출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은 49% 줄었다.

각종 세금 면제를 비롯해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이 57%로 인력 수급이 용이한 점, 물류 접근성이 뛰어난 점 역시 하이트진로가 베트남을 선택한 주요한 요인이 됐다. 베트남 개발 경제특구에 공장을 짓게 되면서 하이트진로는 이후 15년 동안 법인세를 절반 감면받게 됐고, 토지세는 같은 기간 동안 면제된다. 이 밖에도 산업단지 내에 근로자 주택 등이 들어서는 점, 용수 공급 시설 지원 등이 고려됐다.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기반으로 ‘진로의 대중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브랜드 인식 제고를 위해 라벨에 ‘진로(JINRO)’가 적힌 제품을 만들고, 판매 채널 역시 기존 가정 채널에서 유흥 채널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소주 해외 매출을 지난해 대비 8배 이상 큰 50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