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주 모던 한식 레스토랑 나미에서 현지인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다. /유진우 기자

미국 켄터키는 익숙한 명칭의 지역이다. 유명한 치킨 프랜차이즈 이름(KFC)에도, 추억 속 소시지 이름에도 들어간다.

지난 20일 미국 남부 켄터키주(州)의 중심 도시 루이빌을 찾았다. 이 도시에는 약 60만 명이 산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안양시나 경상남도 김해시 정도 규모다.

켄터키는 미국 여러 주 가운데 면적이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하다. 켄터키가 대한민국보다 4% 정도 크다. 다만 인구는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전체 주를 통틀어 450만 명이 채 살지 않는다.

아시아계 인구 비율도 낮다. 켄터키주 인구 가운데 85%가 백인이다. 아시아계 비율은 1.5%에 그친다.

그러나 그들의 입맛은 그렇지 않았다. 루이빌 도심에서 약 30분을 이동해 쇼핑몰이 몰린 세인트앤드루스 지역을 돌아보니 곳곳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들어선 식료품점 트레이더조(Trader Joe’s) 제품 진열대에는 고추장(Gochujang) 수백 개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미국 켄터키 트레이더조 매장에서 팔고 있는 고추장 소스. /유진우 기자

트레이더조는 한국 김밥 열풍의 발원지다. 미국 42개 주에 560여 개 매장을 둔 트레이더 조는 지난해 11월 냉동 김밥 제품을 출시했다가 2주 만에 전 매장에서 모두 팔리는 성과를 거뒀다.

이날 고추장과 김밥뿐 아니라 파전, 떡볶이, 김치, 한국식 불고기 같은 제품은 소비자 눈길이 가장 잘 닿는 진열대 요지에 놓였다.

인근 프랭크포트 지역에는 지난 3월 한국식 치킨 전문점 CM치킨이 새로 문을 열었다. 트레이더조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이 지역은 켄터키에서 성수동 같은 ‘핫한’ 지역이다.

매장 앞에는 이른 저녁 시간에 해당하는 오후 5시에도 방문객 12명이 줄을 서 대기했다. 한편에는 미국식 배달의민족에 해당하는 우버이츠와 도어대시 기사 대여섯 명이 배달할 음식을 기다렸다.

켄터키는 익히 알려진 대로 KFC 본점이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 토박이라면 누구나 프라이드치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문을 연 지 80~90년이 넘은 치킨 전문점 역시 즐비하다. KFC를 세운 커넬 샌더스가 문을 연 할란 샌더스 카페가 대표적이다. 샌더스는 1930년 켄터키 코빈 지역에서 처음 프라이드치킨을 팔기 시작했다. 이후 1952년 유타에 프랜차이즈 1호점을 열며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갔다.

수십 년째 루이빌 지역에서 음식 전문 가이드를 하는 제레미 허버드 루이빌푸드투어 창업자는 “2~3년 전 켄터키에서 한국 음식이라면 월마트에서 사는 김치나 트레이더조에서 사는 냉동식품이 전부였다“며 “엔데믹 후 넷플릭스 같은 미디어에서 한국식 치킨을 여러 번 보여주자 미국 음식 애호가(foodie) 사이에서 ‘우리가 모르는 치킨이 있다고?’ 같은 호기심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켄터키 프랭크포트 CM치킨에서 선보이는 한국식 파닭과 오이지, 양념 단무지. /유진우 기자

CM치킨에서 가장 잘 팔리는 메뉴는 파닭과 마늘 간장 치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도록 사랑받던 메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그간 찾아보기 어려운 색다른 맛으로 한 자리를 차지했다.

미국 대도시에서 거세게 일던 한식 파인 다이닝 바람 역시 이제 켄터키 같은 조용한 도시로 옮겨붙었다. 파인 다이닝은 정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급 외식업장이다.

미국 유력지 USA 투데이는 매년 미국 전역에서 최고 레스토랑 50여 곳을 선정한다. 지난해 켄터키에서는 2곳만 이 리스트에 들었다. 이 가운데 한 곳이 모던 한식 레스토랑을 표방하는 ‘나미(Nami)’다.

나미는 미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한국계 스타 셰프 에드워드 리가 열었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지난해 백악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부부 국빈 만찬 메뉴를 요리했다. 나미는 지난해 문을 열었지만, 1년 만에 이 작은 도시에서 한 달 전에 예약이 다 차는 레스토랑으로 올라섰다.

그는 나미에서 한국적인 음식을 선보인다. 입맛을 돋우는 전체로는 새우만두나 떡볶이, 김밥을 내놓는다. 김치는 단감과 비트를 양념으로 해 직접 만든다.

켄터키 루이빌 한식 레스토랑 나미에서 선보이는 등심 정찬. /나미 제공

주요리는 영어 대신 한국어 고유명사로 표기한다. 비프 숏립이라는 표현 대신 갈비(kalbi)라고 쓰고, 포크 벨리는 삼겹살(sam gyup sal)이라고 적는다.

주요리를 즐긴 후에는 한국처럼 밥이나 면을 내놓는다. 30여 분간 주문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벽안의 외국인 대다수가 능숙하게 자장면 혹은 고기 비빔밥을 발음했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가격대가 높은 레스토랑은 여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지난해 한식과 한국 문화 인기가 폭발적으로 커지는 모습을 보면서 현대적인 한식 레스토랑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대표적인 미국 음식들에 한국의 맛이나 양념이 살짝 가미되는 것으로 여전히 익숙하지만 전혀 새로운 음식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