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한 혐의로 5일 구속됐다.

허 회장은 국내 제과·제빵업계 1위 기업 SPC 오너다. 허 회장이 구속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그가 추진했던 해외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SPC와 파트너십을 맺고 영업하던 6200여개 가맹점 역시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새벽 2시 7분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허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허 회장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SPC그룹이 2019년 7월~2022년 8월 자회사 PB파트너즈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에게 탈퇴를 강요하고, 따르지 않으면 승진 인사에서 불이익을 준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PB파트너즈는 파리바게트 가맹점에서 일하는 제빵 및 카페 기사 등 인력을 고용·관리하는 회사다.

허 회장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임삼빈)가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지 약 6개월 만에 구속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부터 진행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허 회장은 관련 혐의를 부인했지만,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앞서 허 회장 측은 검찰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피의자에게 충분한 진술 기회와 방어권도 보장하지 않았다”며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반면 검찰은 허 회장이 혐의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강제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지난달 18·19·21일 세 차례 허 회장에게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허 회장은 업무상 이유와 건강 문제를 이유로 출석일 변경을 요청하며 지난달 5일 한 차례만 직접 출석했다. 이 조사는 허 회장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면서 1시간 만에 중단됐다. 그러자 검찰은 지난 2일 병원에 입원해 있는 허 회장을 체포해 신병을 확보했다.

그래픽=손민균

허 회장에 앞서 황재복 SPC 대표 역시 같은 혐의로 지난달 22일 구속기소됐다. 황 대표는 허 회장 지시를 받아 사측에 우호적인 한국노총 조합원 확보를 지원하고, 노조위원장이 사측에 부합하는 인터뷰나 성명을 발표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허 회장과 황 대표가 동시에 구속되면서 SPC그룹에 오너 부재 리스크는 현실로 닥쳤다. 지난달 2일에는 SPC 공동대표였던 강선희 대표가 취임 1년 만에 돌연 사임했다. 판사 출신 강 대표는 그동안 그룹 법무와 대관, 홍보 등 대외 업무를 지휘했다.

SPC는 강 대표 사임에 이어 황 대표 구속, 허 회장 구속까지 이어지는 사상 초유 ‘대표 부재’ 사태를 맞았다.

특히 SPC는 이번 사태로 허 회장이 이끌던 글로벌 사업에 제동이 걸리는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허 회장은 1994년 회장에 오른 이후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했다. 2015년 SPC그룹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허 회장은 “2030년까지 연 매출 20조원, 전 세계 매장 1만2000개를 보유한 ‘그레이트 푸드 컴퍼니(위대한 식품기업)’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SPC그룹 대표 브랜드 파리바게뜨는 지난달 기준 미국, 중국, 프랑스 등 10개국에 555개 매장이 진출해 있다.

SPC에 따르면 허 회장이 검찰 출석 요구에 일정 조정을 요청한 이유도 해외 사업 때문이었다. 허 회장은 체포 직전까지 이탈리아 현지 진출을 위해 이탈리아 커피 전문 브랜드 ‘파스쿠찌’와 양해각서(MOU) 체결에 공을 들였다. SPC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말레이시아 같은 이슬람권 국가 할랄 시장 공략을 추진하고 있었다.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같은 SPC 가맹사업 브랜드를 운영하는 소규모 가맹점주에게도 경영 공백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허 회장은 파리바게뜨, 파스쿠찌 같은 주요 가맹점이 속한 파리크라상 최대주주다. 파리크라상 지분 63%를 가지고 있다.

황 대표는 SPC 대표 뿐 아니라 파리크라상 대표까지 맡았다. 두 사람이 모두 구속되면서 가맹점 사업 관련 의사 결정 지연이 점주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커졌다.

가맹점주들은 가뜩이나 내수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시기에 허 회장 구속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훼손까지 감당해야 한다. SPC 브랜드 가맹점주들은 앞서 2022년과 지난해 경기도 평택 SPL 제빵 공장과 샤니 제빵공장서 벌어진 직원 사망 사고·부상 사고 이후 불매운동으로 곤욕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