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식품기업에 속하는 3조 클럽 가입사가 올해 새로 선임하거나 재선임한 사외이사 10명 중 6명은 유관기관 관료 출신으로 나타났다. 주로 법조계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출신이 강세를 보였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매출 상위 10개 식품 관련 상장사 신규·재선임 사외이사 15명 가운데 60%에 해당하는 9명은 전직 관료 출신이었다.

사외이사는 회사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방만한 경영을 감시하고 기업 방향성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올해 식업계가 새로 선임하려는 사외이사 명단을 보면 그 회사가 어느 방향으로 가려는지 유추할 수 있다.

식품업계가 관료 출신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일이 비단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판사 출신 법조계 인사를 중용하는 모습이 유독 두드러졌다.

CJ제일제당(097950)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김용덕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김 변호사는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출신 법조 인사다.

그래픽=손민균

롯데웰푸드(280360) 역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일하는 황덕남 변호사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을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반대에도 통과시켰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는 이번 롯데웰푸드 주총을 앞두고 황 변호사 사외이사 선임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의결권 자문사는 투자자들에게 주총 안건을 설명하고, 투자자 입장에서 유리한 선택지를 권고하는 역할을 한다.

ISS는 “황 후보가 롯데웰푸드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지배구조에 중대한 문제를 가져온 사내이사(신동빈 회장)를 이사회에서 축출하려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주주에게 최선의 이익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황덕남 변호사는 롯데웰푸드 사외이사 다섯명 가운데 유일한 판사 출신 법조계 인사다. 지난해 롯데웰푸드에서 사외이사로 일하면서 롯데웰푸드 ESG위원장을 지냈다.

롯데웰푸드는 “황 후보가 과거 법관을 역임한 바 있어 앞으로 여러 방면에서 경영과 법률 자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농심(004370) 역시 서울 중앙지방법원장을 역임한 판사 출신 변동걸 사외이사를 이번 주총에서 재선임했다.

판사 같은 고위 법조계 출신 사외이사는 공직을 떠난 지 오래 지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적으로 선임에 제한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 경험과 인맥 등을 이용해 정부부처나 규제당국 등에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어 매번 논란을 빚었다.

같은 맥락에서 주요 식품 기업들은 그동안 감독기관에 해당하는 공정위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를 발탁하길 선호했다.

올해 롯데웰푸드가 새로 선임한 신영선 사외이사는 공정위 부위원장 출신이다. 동원F&B(049770) 김성하 사외이사 역시 공정위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일부 회사는 기업 경영 차원에서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특정 부문 전문 인사를 사외이사로 뽑았다.

SPC삼립(005610)은 식품의약처 위해정보과장, 세계보건기구 자문관을 지낸 이임식 사외이사를 재선임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SPC그룹은 2018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17개 식품공장에서 식품위생법 위반 사례 총 128건이 적발된 전례가 있다.

롯데칠성(005300)음료는 주요 식품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학계 출신 인사로 신규 사외이사진을 채웠다. 이번에 새로 선임한 이상명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국전략경영학회장을 거쳤다. 같이 사외이사에 오른 김희웅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경영정보학회를 이끌고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식품 기업이 공정위나 식약처, 국세청 출신 인사 또는 법원 출신 인사를 동시에 사외이사 자리에 앉히는 것은 애초 대주주와 경영진을 견제한다는 사외이사 제도 취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