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스포츠계에서 세계 최고 선수를 가리는 자리다. 미식계에도 올림픽이 있다. 세계 최고 식당을 뽑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W50B)’이다.

W50B는 ‘미쉐린 가이드’에 대한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2002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했다.

1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쉐린 가이드는 오랜 세월 쌓인 평가를 바탕으로 외식업계에서 명성이 높다. 하지만 별을 받는 식당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이 때문에 빠르게 변하는 외식업계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미쉐린 가이드는 월급을 받는 전문 평가자(인스펙터)가 암행 평가로 식당 별 개수를 정한다. 반면 W50B는 요리사·음식 기자·외식업자 같은 세계 각국 음식·외식 전문가 1000여명이 투표로 매년 순위를 정한다.

2013년 시작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A50B)은 W50B 지역 리그다. 말하자면 올림픽이 아닌 아시안게임이다. 아시아 W50B 투표위원 300여명이 W50B와 별도로 아시아 최고 음식점을 가린다. 아시아 각국 외식 현장에서 일하는 ‘선수’들이 직접 선정에 참여하니 매년 순위 변동이 크고 역동적이다.

올해 A50B는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에서 열린다. 유치 과정에 서울특별시와 농림축산식품부까지 나섰다.

이번 A50B를 책임지는 윌리엄 드루 2024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총괄 기획자는 지난 21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서울은 2015년을 기점으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리스트에 점점 더 많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며 “서울이 미식 분야에서 매우 흥미로운 도시로 입지를 잡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드루는 A50B 레스토랑 선정 투표 시스템을 총괄한다. 선정 투표 과정은 A50B 공신력을 뒷받침해주는 핵심 콘텐츠다.

그에 따르면 투표는 A50B 레스토랑 아카데미 소속 회원만 참여할 수 있다. 이 아카데미는 아시아 지역 저명한 셰프, 레스토랑 경영자, 푸드 저널리스트나 비평가, 여행을 자주 다니는 미식가 등을 가려 뽑는다. 올해 투표에는 성비를 고려해 318명이 참여했다.

드루는 “투표자들은 지난 18개월 동안 식사 경험을 바탕으로 투표한다”며 “각 투표자는 10개 투표권을 가지며, 소속 국가 뿐 아니라 국외 레스토랑에도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 국가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결과를 위해 드루는 아시아 대륙을 6개 구역으로 나눠 투표를 진행한다. 새로운 시각이 요구되는 만큼 투표 인원 25%는 매년 바꾼다.

‘최고의 레스토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 규정하는 기준은 없다. 전문가 개인 판단에 맡긴다. 다만 기본적인 투표 규칙은 모두가 지켜야 한다. 그는 “본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익명성을 유지해야 하고, 자신이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투표할 수 없다”고 말했다.

A50B가 가진 경쟁력은 318명이 10표씩 총 3180표를 행사하는 다양성이다. 모든 사람 입맛은 다르다. 훌륭한 레스토랑 경험에 대한 생각도 저마다 엇갈린다. 음식 맛이나 서비스는 레스토랑이 갖춰야 할 기본이다.

그러나 인테리어나 분위기, 가격이 적당한지 여부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최고의 레스토랑’에 대한 정의는 주관적입니다.

우리는 318명 전문가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최고’를 정의합니다.

그들 투표를 취합하기만 하면 됩니다.
윌리엄 드루

드루에 따르면 최근 W50B나 A50B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레스토랑은 ‘배움에 배고픈 젊고 재능 있는 셰프들’이 이끄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과거 온 대륙을 여행하면서 전 세계 멘토들에게 요리 기술을 익혔다. 지금은 다시 본인 요리 정체성을 찾아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와 본인 식당을 열었다.

드루는 “젊고 재능 있는 셰프들은 전통 요리 기술과 레시피를 되살리는 데 대한 자부심과 관심이 높다”며 “식재료 공급에 있어서도 최대한 현지 재료를 사용하여 맛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한국도 외식 산업 발전 측면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며 “한국 셰프들은 전통적인 한식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말했다.

“한식이 가진 매력이 뉴욕, 싱가포르, 코펜하겐 같은 해외 도시들까지 퍼지고 있습니다. 한식에 대한 글로벌 인지도 또한 급상승하는 중입니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을 넘어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한식 레스토랑이 리스트에 오르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와 한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는 반증입니다.”

지난해 A50B 17위에 오른 메타는 싱가포르에 자리 잡았지만, 김선옥 셰프가 주방을 총괄하는 한식당이다. 83위 내음(Nae:Um) 역시 한석현 셰프가 칼자루를 쥔 싱가포르 한식당이다.

그래픽=손민균

지난해 A50B에선 일본이 식당 10곳을 50위 안에 올렸다. 국가 별로 분류하면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태국과 싱가포르가 9곳으로 공동 2위를 차지했다. 4위는 5곳을 넣은 홍콩이었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4곳을 등재해 공동 5위에 올랐다. 이어 인도(3곳), 필리핀(2곳), 대만·베트남(각 1곳)이 뒤를 이었다.

드루는 “2015년을 기점으로 서울은 A50B 리스트에 점점 더 많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며 “서울이 미식 분야에서 매우 흥미로운 도시로 입지를 잡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A50B 행사 이후 서울이 흥미로운 ‘미식 핫스팟’으로 세계적인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미식가들이 전통 시장 길거리 음식부터 서울 고급 레스토랑과 바까지 다양한 미식을 경험할 예정입니다. 다양하고 혁신적인 도전을 하는 레스토랑들 행보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