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는 아는 사람으로. 조직 안정에 초점. 성과에는 보상.’

CJ그룹이 16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는 2024년 정기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CJ그룹이 해를 넘겨 임원 인사를 실시하는 건 지난 2017년 이후 처음이다. 통상 임원 인사는 11~12월 사이 이뤄졌다.

이재현 CJ(001040) 회장은 장고(長考) 끝에 ‘아는 사람’을 구원투수로 불러 들였다. 이날 임원 인사를 보면 강신호 CJ제일제당 새 대표는 4년 만에 다시 복귀했다. 신영수 CJ대한통운 새 대표 역시 CJ제일제당(097950)에서 생물자원사업본부장을 거쳤다.

당초 CJ그룹 계열사별로 성과에 따른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니 이 회장은 ‘조직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 인사 대상은 총 19명으로 2020년 이후 최소폭이다.

강신호 CJ제일제당 신임 대표(왼쪽)와 신영수 CJ대한통운 신임 대표.

◇올리브영 공정위 과징금 등 경영 불확실성 확대...인사 두달 늦어져

CJ그룹은 2023년 정기임원 인사를 예년보다 두 달 빠른 10월에 단행했다. 2022년말 이 회장은 향후 3년 동안 새 중기전략과 실행안을 각 계열사에 주문했다. 이 중기비전을 속도감 있게 실행하기 위해 예년보다 빠른 인사를 단행했다. 계열사 CEO 또한 대부분 유임됐다.

반면 2024년 정기임원 인사는 예년보다 두 달 느린 2월에야 이뤄졌다. 다른 경쟁사들이 한창 임원인사를 진행하던 시기, CJ그룹은 CJ올리브영 리스크를 겪었다.

당시 올리브영이 갑질을 했다는 혐의가 인정될 경우, 부과할 과징금은 최대 5800억원에 달했다. 전·현직 대표가 관련된 공정위 건은 CJ그룹 주요 리스크 중 하나로 떠오르며 경영 불확실성을 키웠다. 이는 계열사 실적이 계속 부진한 가운데, 바로 인사에 손 쓰지 못한 주요 이유로 꼽힌다.

그룹 핵심 계열사 CJ제일제당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4.7% 감소한 17조8904억원, 영업이익은 35.4% 줄어든 8195억원을 기록했다. CJ ENM(035760)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 146억원을 기록해 이 회사 전신인 CJ오쇼핑과 CJ E&M이 2018년 합병한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다.

◇이재현 회장, 결국 안전한 선택...강신호 대표 부회장 승진

재계에서는 기존 인재 풀과 다른 곳에서 후임자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려 인사가 늦어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 회장은 안전한 선택을 했다. CJ제일제당 신임 대표이사에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이사를 내정했다. 강 대표는 본래 CJ제일제당에 훨씬 오래 몸 담았다.

강 대표는 1988년 그룹 공채로 입사해 CJ그룹 인사팀장과 CJ프레시웨이(051500) 대표이사,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 대표 등을 거쳤다. 2021년 CJ대한통운 대표를 역임하기 전까지는 CJ제일제당 대표를 지냈다. 지난 2021년 정기인사에서 CJ대한통운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이후 주요 사업부문 구조를 혁신하고 조직문화를 체질부터 개선해 2023년 사상 최대 영업이익 4802억원(연결기준)을 달성하는 등 재임 기간 중 대한통운 성장을 이끌었다.

강 대표는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CJ그룹에서 공채 출신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 대표가 있던 CJ대한통운 대표이사 자리에는 신영수 CJ대한통운 한국사업부문 대표가 취임한다. 신 대표 역시 CJ제일제당에서 본부장을 지냈다. 이 회장이 오래 경영 능력을 지켜본 사람이다.

그는 신규 브랜드 ‘오네(O-NE)’를 성공적으로 론칭하는 등 택배·이커머스 부문에서 미래형 사업모델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신 대표가 맡았던 CJ대한통운 한국사업부문 역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당초 성과가 부진한 계열사 수장들은 이번 인사에서 물갈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나왔다. 이 회장은 매년 인사에서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을 지향했다. 올해 역시 임기와 상관없이 실적이 저조한 계열사 대표들에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원칙을 적용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인사 규모도, 변화 폭도 예년보다 작았다. 새로운 외부 영입도 없었다. 글로벌 식품 사업을 이끌며 승계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이 회장 장남 ‘CJ가(家) 4세’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도 변동 없이 그대로 머물렀다.

반면 CJ그룹 미래 성장을 이끌어갈 신임 경영리더에는 19명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1월 이재현 회장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성과를 격려한 CJ대한통운과 CJ올리브영에서 각각 6명, 4명이 나왔다.

CJ는 이번 인사에서도 ‘하고잡이’ 젊은 인재들을 리더로 과감하게 발탁했다. 하고잡이는 ‘뭐든 하고 싶어 하고, 일을 만들어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회장은 ‘뛰어난 창의력을 바탕으로 즐겁게 일하고 최고 성과를 내며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한다.

1980년대생 6명, 1990년생 1명을 포함해, 나이나 연차에 관계없이 성과만 있다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CJ그룹 철학을 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