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스테판 커리는 자타공인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3점 슈터다. 세계 최고 농구리그 NBA에서 3점슛 관련 기록을 전부 갈아엎었다. 통산 최다 3점슛 성공 횟수는 물론, 한 시즌 최다 기록(402개)도 커리 손 안에 있다.

커리는 188센티미터(㎝)로 농구선수 치고 비교적 단신이다. 그러나 그가 30㎝ 이상 큰 선수를 앞에 두고 던지는 3점슛은 정확하게 림을 찾아간다. 경기 중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터지는 그의 3점슛은 여전히 치명적인 무기다. 그가 던진 3점슛은 한 점 한 점이 중요한 승부처에서 흐름을 확 바꾼다.

경기 흐름뿐 아니라 리그 전체 판도도 뒤바꿨다. NBA에서 경기 당 한 팀이 시도하는 3점슛 개수는 1980년대 3개에 그쳤다. 1990년대에도 10개 안팎이었다. 그러나 ‘커리의 시대’가 열린 이후 40개를 훌쩍 넘겼다.

한때 농구의 꽃은 덩크였다. 이제 그 자리는 3점슛이 차지했다. 관중은 3점 라인 바깥에서 선수 손가락 공을 떠난 공이 골대에 꽂힐 때마다 쾌감을 느낀다. 긴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던 공이 그물을 경쾌하게 스치면서 내는 소리는 짜릿함을 자극한다.

종합주류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나라셀라(405920)는 25일 커리가 직접 만든 위스키 젠틀맨스 컷(Gentleman’s Cut)을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그래픽=정서희

스포츠 스타나 할리우드 스타가 직접 위스키를 만드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전직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디아지오와 손잡고 헤이그클럽을 선보였다. 매튜 맥커너히는 와일드 터키와 롱브랜치를 내놨다.

위스키는 오랜 시간 묵혔다 내놓는 술이다. 한번 실수하면 공들인 시간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이들은 기존에 있던 유명 브랜드 힘을 빌렸다. 위험을 감수하고 아예 맨 바닥에서 새 브랜드를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커리는 독자 브랜드를 창조하는 길을 택했다. 젠틀맨스 컷이라는 이름은 농구 코트에서 커리 본인이 보여줬던 기민한 움직임에서 따왔다. 그는 3점슛뿐 아니라 신사같이 유려한 드리블, 적재적소에 절도있게 떨어지는 패스를 자랑한다.

젠틀맨스 컷 관계자는 “2015년 창립 이후 8년이 지난 2023년에야 첫 제품이 나왔다”며 “커리 본인이 제조와 블렌딩, 숙성은 물론 포장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 위스키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위스키 생산지 켄터키주(州) 버번(Bourbon)에서 만든 버번 위스키다.

보통 이 지역 위스키는 진득하다 싶을 정도로 강렬한 달콤함, 높은 도수가 특징이다. 버번 위스키 애호가들은 짜릿하다 싶을 정도로 입안을 강하게 조이는 버번 위스키를 일컬어 ‘타격감이 좋다’고 표현한다. 농구로 치면 마치 높이 솟아올라 힘차게 내리찍는 덩크를 닮았다.

반면 젠틀맨스 컷은 커리가 던지는 3점슛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버번 위스키 제조 과정에서 옥수수 비율을 높이면 시럽 같은 달콤함이 배가된다. 커리는 옥수수 비중을 줄여 깔끔한 느낌을 강조했다. 대신 호밀을 더 많이 써 흙과 향신료 내음이 입안에 남아 감돌도록 했다.

한 모금 머금으면 달콤한 캐러멜, 고소한 견과류 풍미가 입 안을 부드럽게 맴돌다 알싸한 여운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야말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3점슛 같은 위스키다.

커리는 이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게임 체인저 증류소(Game Changer Distillery)’라는 회사를 켄터키에 세웠다. 이 증류소는 구리 단식 증류기(pot still)를 사용한다. 보통 ‘위스키 본가’ 스코틀랜드에서 쓰는 고전적인 장비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이보다 비용과 시간 면에서 효율적인 연속식 증류기가 등장하면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통상 단식 증류기에서 나온 결과물은 연속식 증류기 결과물보다 향이 복잡하고, 맥아가 가진 본연의 풍미를 잘 살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향을 뿜어내는 위스키를 좋아한다.

나는 위스키 순수주의자(purist)다.”
스테판 커리, 펜타매거진 인터뷰, 2023

나라셀라는 최근 독립법인으로 분리했던 위스키 사업 부문을 다시 본사로 편입했다. 젠틀맨스 컷은 편입 직후 처음 선보이는 제품이다.

나라셀라를 이끄는 마승철 회장 아들 마태호 나라셀라 마케팅본부 총괄이사는 직접 미국을 수차례 오가면서 독점 계약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 위스키가 와인에 집중한 나라셀라 제품군을 증류주로 다변화하는 게임 체인저가 되길 기대했다.

마태호 이사는 “젠틀맨스 컷은 널리 알려진 다른 브랜드와 견줘도 고유한 개성과 맛이 돋보이는 버번 위스키”라며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3300병은 커리가 증류소를 열고 처음 만든 첫번째 배치(batch·위스키 제조 단위)라 희귀함이라는 가치까지 더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