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사람대 사람의 접촉이 당연했던 외식 분야에 코로나19를 거치며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들이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경기 침체와 구인난을 겪고 있는 식당에서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까. 식당을 예약하는 순간부터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순간까지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외식테크 산업을 조명해 본다.
"기계(무인 단말기)가 두 사람 분의 일을 해요. 인건비로 따지면 한 달에 600만원어치 일을 하는 셈이죠. 가장 크게는 종업원과 손님 사이에 있었던 소통 문제가 해결됐어요. 일 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보니 중국인 종업원이 많았는데, 우리말이 서툴다보니 손님들과 오해가 생기기도 했죠. 지금은 그런 부분이 없다보니 일손을 덜 쓰게 됐어요."
서울 종로구에서 키오스크(KIOSK·무인 단말기) 이용 매장을 운영하는 외식업체 지강플래닝 김원용 과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 10일 기자와 만나 "1대당 월 2만원 정도 사용료를 내지만, 인건비 절감분을 생각하면 월 600만원가량 남는 장사"라며 "매장 관리 역시 효율적으로 해준다"고 말했다.
가령 서울 강남에 운영 중인 한 중식당이 키오스크를 1년 정도 사용한다면 연 7200만원 정도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속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과 고물가 속에서 키오스크 같은 '외식테크'가 주요한 성공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외식테크란 먹는 것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말하는 푸드테크 중에서도 외식산업과 밀접한 기술을 뜻한다. 테이블 오더를 포함한 키오스크와 서빙로봇, 조리로봇, 원격 줄서기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 '고임금'에 떠오른 외식테크… 키오스크·서빙로봇 초고속 성장
키오스크는 외식테크 가운데 시조에 해당한다. 10여년 전 2014~2015년 무렵부터 맥도날드·롯데리아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도입을 시작했다. 이후 2010년대 후반 들어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자 이용 점포 수가 크게 확대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ERI)이 발표한 외식업체 경영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외식업체 키오스크 사용 비율은 0.6%에서 2021년 6.1%까지 늘어났다. 최근에는 테이블에서 메뉴 주문과 결제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하는 '테이블 오더' 형태로 진화했다.
KERI가 지난해 발표한 푸드테크 시장 및 정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시장 규모는 2015년 2130억원에서 평균 8.1%씩 성장해 지난해 3960억원까지 불어났다. 특히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16.4% 인상됐던 2018년에는 전년 대비 20% 성장률을 기록했다.
서빙로봇 시장 역시 키오스크 못지 않게 빠르게 성장했다. KERI는 2021년 국내 서빙로봇 도입 대수는 약 3500대였으나 2023년에는 약 1만1000대를 기록하고, 시장 규모 역시 같은 기간 9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8.2%씩 성장한 셈이다.
두 사업 분야 모두 닛케이BP종합연구소 등 세계 시장조사 기업들의 글로벌 푸드테크 시장 성장률 전망치(6~8%)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닛케이BP종합연구소에 따르면 2017년 2110억달러(약 277조5650억원)을 기록한 전세계 푸드테크 시장 규모는 2025년에는 3600억달러(약 473조58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푸드테크 시장도 2017년 이후 연평균 31.4%씩 성장해 2020년 기준 61조원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키오스크와 서빙로봇 이후 원격 줄서기 서비스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격 대기 서비스 테이블링은 월간 순 이용자 수(MAU)가 2022년 12월 기준 115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배가량 늘었다. 누적 회원 가입자도 140만명에서 330만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예약 플랫폼을 운영하는 캐치테이블도 2022년 12월 줄서기 서비스를 도입해 지난해 8월까지 65만명이 이용했다.
이러한 성장세는 외식 산업이 코로나19로 주춤하는 상황에도 이어졌다. 업황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탄탄한 사용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음식점·주점업을 운영하는 사업체 수는 80만648곳이다. 이 곳에서 일하는 종사자 수는 193만7768명에 달했다.
◇ 투자금 몰리는 외식테크 스타트업… 전문가 "성장은 필연적"
관련 스타트업들도 성공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테이블 오더 기업 '티오더'는 2019년 설립돼 2021년 7억원 규모 프리A 시리즈를 투자 유치한 이후 2022년까지 누적 131억원을 투자 받았다. 최근 해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1000억원을 목표로 시리즈B 투자를 유치 중이다. 현재까지 500억원 가량 투자 유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예약과 원격 줄서기 서비스 캐치테이블 운영사 '와드' 역시 지난해 7월 300억원 규모 시리즈D 투자를 유치했다. 2016년 설립 이후 누적 투자액은 742억원이다. 배달의민족 서빙로봇 운영사 '비-로보틱스'는 중국 치타모바일로부터 프리A 시리즈 투자로 30억원을 유치했다.
정부는 외식테크 산업을 키우기 위해 관련 기업 육성을 지원할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2022년말 농식품 분야 핵심 국정과제로 농업의 미래성장 산업화를 위한 '첨단 식품 기술(푸드테크) 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은 2027년까지 푸드테크 유니콘기업 30개 육성과 푸드테크 수출액 20억 달러 달성을 골자로 한다. 이를 위해 2027년까지 1000억원 규모의 푸드테크 전용 기금을 조성하고, 푸드테크 융복합 인재 3000명을 양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에서도 '푸드테크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이 발의돼 논의 중에 있다.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과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두 건의 법안으로, 농식품부 장관이 5년마다 푸드테크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해 연구 시설·해외 시장 진출 촉진 등에 힘써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지난달 소관 상임위원회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의결됐으나,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등과 함께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됐다. 안건조정위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이견을 조정해야하는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 설치되는 기구로 최장 90일까지 법안 심사를 한 뒤 해당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하게 된다.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 교수는 "외식분야에서 푸드테크는 이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임금 인상이 이어지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며 "비싼 기기 가격 등 문제점으로 꼽히는 부분들도 수요가 많아지면 해결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관련 산업이 더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