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이 “500억달러(약 66조원) 규모의 라면 시장을 뒤흔든 여성”이라며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 대표이사 부회장을 주목했다.

WSJ은 6일(현지 시각) 김 부회장의 이력과 그가 주도한 불닭볶음면의 탄생 비화를 담은 약 9000자 분량의 기사를 실었다. 김 부회장은 삼양식품 창업자인 고(故) 전중윤 전 명예회장의 며느리로, 삼양식품이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자 1998년 삼양식품에 입사해 남편인 전인장 전 회장을 돕기 시작했다.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이 지난9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누디트 익선에서 열린 '삼양라면 60주년 기념 비전선포식'에서 변경된 그룹 공식명칭을 소개하고 있다. /뉴스1

WSJ에 따르면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미국 코스트코와 월마트, 앨버슨 등 대형 마트에 진출해있다. 이런 성공은 소비자들이 조리가 쉽고 저렴한 음식을 찾으면서 라면 시장이 세계적으로 급성장한 것을 배경으로 한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전 세계 라면 시장은 5년 전보다 52% 증가해 지난해 약 50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작년 코스피가 19% 상승하는 동안 삼양식품의 주가는 70% 뛰었다. 또 삼양 제품을 포함한 한국의 라면 수출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닭볶음면 성공의 중심에는 김정수 부회장이 있다.

극도로 매운 라면에 대한 아이디어는 김 부회장이 고교생 딸과 함께 주말을 맞아 서울 도심을 산책했던 2010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극적인 맛으로 유명한 한 볶음밥 집에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것을 발견한 뒤 안으로 들어서자 손님들이 그릇을 깨끗이 비운 것을 목격한 것이다.

자신과 딸의 입에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매운맛에 대한 열정을 확인하자 라면 버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곧바로 김 부회장은 근처 슈퍼마켓으로 뛰어가 비치된 모든 매운 소스와 조미료를 3개씩 사 각각 연구소와 마케팅팀으로 보냈고 나머지 하나는 집으로 들고 왔다.

최적의 맛을 찾는 데는 몇 달이 걸렸다. 식품개발팀은 개발에 닭 1200마리와 소스 2t을 투입했고 전 세계 고추를 연구하고 한국 내 매운 음식 맛집도 찾아갔다. 김 회장은 “처음 시제품을 시식했을 때 (매워서) 거의 먹지 못했지만, 오래 먹다 보니 갈수록 맛있고 익숙해졌다”고 했다. 일반 불닭볶음면의 매운 정도를 나타내는 스코빌지수는 4404로, 타바스코소스보다 두 배 맵다.

2012년 출시 후 유튜버들이 먹방에 나서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K팝 스타 BTS와 블랙핑크가 소개하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김 부회장은 기업 경영 경험은 없었지만, 시아버지인 전 전 명예회장과 회사의 사업 문제를 놓고 자주 대화를 했었다. 이후 저렴한 대파와 팜유를 찾기 위해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지를 뛰어다녔다. 김 부회장은 “당시는 절박감만 있었다”고 회고했다.

월마트는 불닭볶음면이 프리미엄 라면 중 판매량 우수 제품 중 하나라고 밝혔다. 삼양 측에 따르면 코스트코는 일부 서부 해안 지점에서 판매 테스트를 거친 뒤 올해 미 전역에서 파는 걸 검토하고 있다.

기업 경영 분석업체 CEO스코어의 김경준 대표는 “삼양은 거의 망한 회사였었다”면서 “삼성과 LG, 현대 등 대부분 대기업을 창업주의 남성 상속자들이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며느리로서 기업을 회생시킨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