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업계 3위 남양유업이 1964년 고(故) 홍두영 전 명예회장 창업 이후, 60년 만에 오너 경영을 끝내고 새출발 할 계기를 맞았다. 그간 대리점 밀어내기 갑질, 불가리스 사태 등 '오너 리스크'로 타격을 받았던 신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4일 대법원은 홍원식 남양유업(003920) 회장 일가와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 사이 주식양도 소송에서 한앤코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지난 2년여간 이어진 남양유업 경영권 분쟁이 끝을 맺었다.
홍 회장은 2021년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시기 '불가리스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77.8% 저감시켰다'는 남양유업 허위 발표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어 5월 27일 한앤코와 본인과 가족이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3.08%를 3107억원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석달 무렵 지난 9월 1일 돌연 한앤코에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홍 회장은 '주식 양도 이후 홍 회장 본인이 남양유업 고문직을 수행하고, 부인이 운영하는 외식사업 브랜드(백미당) 경영권을 보장한다'는 합의안을 한앤코가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대법원은 1·2심 재판부에 이어 홍 회장 측 주장을 일축하고, '이런 합의안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한앤코 입장을 받아들였다. 판결에 따라 홍 회장은 2021년 5월 맺은 계약대로 일가가 보유한 회사 주식 전부를 한앤코에 양도하고 회사를 떠나야 한다.
남양유업은 오너 일가가 법정 다툼을 벌이는 지난 2년 동안 경영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식품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새 주인 한앤코는 우선 지배구조 개선에 팔을 걷어붙일 전망이다.
앞서 2021년 남양유업 지분 인수 발표 당시 한앤코는 "투자 회사 최초로 도입한 집행임원제도를 남양유업에 적용해 지배 구조를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행임원제도는 의사 결정과 감독 기능을 하는 이사회와 별도로 전문 업무 집행임원을 독립적으로 구성해 집행부 책임 경영을 높이는 제도다.
남양유업은 '불가리스 사태' 이전에도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씨 마약사건 등 홍 회장 일가에 관한 여러 불미스러운 일로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아울러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밀어내기 갑질 사건 이후 모든 신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당시 남양유업이 지역 대리점들에 물량을 대량으로 밀어낸 결과, 이 사건은 '대기업 갑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면서 전국적인 소비자 불매운동을 촉발했다.
이후 경쟁사 비방 댓글사건 같은 악재가 생길 때마다 불매운동이 재차 일어나면서 남양유업 대리점주와 주주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봤다. 홍 회장은 이런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안일하게 대응해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는 평가를 들었다.
다만 자산가치가 높은 부동산과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오너리스크가 사라지면 소비자 선호도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남양유업은 현재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사거리에 신축 사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상당수 층이 공실로 비어 있는 상태로, 건물 자산가치만 2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한다. 이와 별도로 중앙연구소를 포함해 세종, 경주 등 전국에 6개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보유 순현금 역시 최근 3~4년간 이어진 영업적자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400억원 이상 남아있다.
남양유업이 기존에 추진하던 신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남양유업이 보유한 제품력, 브랜드를 활용해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남양유업은 최근 주력 사업이었던 조제분유와 우유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점을 감안해 건강기능식품과 케어푸드 같은 신사업을 확대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한앤컴퍼니는 기업 인수 후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기업 가치를 제고했다"며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고, 신사업을 중심으로 제품군을 재편해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면 남양유업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양유업 역시 이날 판결 직후 조속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종결로 당사의 조속한 정상화가 이뤄지길 바란다"며 "남양유업 구성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