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 지사를 내년 상반기 내로 설립할 예정입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배양육 원료 판매 승인이 났고, 시장도 한국보다 커서 반드시 공략해야 합니다. 캐나다 밴쿠버에 연구 시설을 확보하고 신선한 자연산 연어에서 불포화지방산 원료를 채취해 배양해보고자 합니다.”
정일두 심플플래닛 대표는 아직 배양육 규제가 정비되지 않은 한국에서의 사업 전개 방향에 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배양육 관련 규제가 마련된 해외에 먼저 진출한 뒤, 한국 시장을 두드리겠다는 목표다.
심플플래닛은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고기, ‘배양육’ 유래 원료를 개발하는 회사 가운데서도 특정 조직만을 선별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다. 소·돼지·닭·오리·광어 등의 근육, 지방, 혈관 등 원하는 조직의 영양소만 담겨있는 부분을 길러낼 수 있다.
지난 2021년 4월 창업한 이 회사는 현재까지 약 6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박희호 한양대 생명공학과 교수, 홍진기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가 정 대표와 공동 창업자다.
심플플래닛은 이 같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2023 대한민국 푸드앤푸드테크대상에서 푸드테크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 회사가 만들어낸 ‘배양육 고단백질 파우더’와 ‘불포화지방산 배양육 동물성 지방’이 전문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심플플래닛은 지난 3월 영국 식음료 산업 협력 플랫폼 푸드 포워딩(FoodFowarding)에서 발표한 더 푸드테크 500(The Foodtech 500)에 선정됐다. 푸드 포워딩은 글로벌 식품 및 식음료 산업에서 디지털 혁신과 기술 발전을 선도한 기업 500곳을 선정해 매년 발표하고 있다.
고기에서 딱 필요한 부분만 배양해 길러내고, 식품 원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심플플래닛이 다른 배양육 개발 회사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가령 식품에 필요한 단백질을 추출하기 위해 소 한마리를 통째로 도살하는 게 아니라, 단백질만 길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세포를 길러내는 배양액의 가격을 60분의 1 이하로 낮추는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를 위한 비용 절감도 심플플래닛의 저력이다.
심플플래닛은 현재 풀무원(017810), 싱가포르에 위치한 네슬레 아시아 헤드쿼터(HQ)와 계약을 맺고 육류 조직을 배양해 주기적으로 보내고 있다. 이들은 심플플래닛이 배양한 육류 조직의 안전성, 열에 대한 반응 등을 검증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달 말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심플플래닛 본사에서 만난 정 대표는 “배양육 등 대체육 산업이 한국 시장보다는 글로벌 시장이 더 크기 때문에 해외 파트너를 찾는 등 글로벌 시장 진출에 더 집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가 미국 보스턴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서울대로 진학해 화학생물공학부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며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안국약품이라는 제약회사에 들어갔다가 심플플래닛을 창업했다.
심플플래닛은 서른네살 정 대표의 네번째 창업이다. 첫번째는 고등학교 때 캐나다에서 과외 학생과 교사를 연결해주는 웹사이트 ‘코어 튜터 아카데미’였다. 이후 대학원에 다닐 때 강아지 산책을 시켜주는 스마트폰 앱 ‘아이도그워크’도 만들었다. 이후 온라인 커머스 회사인 ‘파운드 코퍼레이션’도 창업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심플플래닛 창업 계기는.
“심플플래닛은 전공과 연관이 있고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가축 사육으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 윤리적인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전엔 제가 겪는 불편을 해결하겠다는 목표로 창업을 했는데, 이번 심플플래닛은 ‘지구에 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개발한 조직은.
“소 근육을 제일 먼저 개발했다. 지난해 10월에 첫 성과를 냈다. 스타트업이다보니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의 결과물로 만들어 내야하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전에 연구를 많이 한 다음 실험을 진행했고, 창업 후 첫 성과를 내는 데에 1년 반 가까이 걸렸다.”
―육류 배양 기술에 대해 설명해달라.
“간략하게 요약하면, 일단 소·돼지·닭 같은 개체에서 손톱만큼 조직을 떼어낸다. 그 조직 안에는 여러 세포가 있을텐데, 원하는 세포만 골라내 그 세포를 대량으로 키워 생산한다. 가령 소의 근육 조직을 떼어 그 안에 있는 근육 세포를 뽑아내 이를 대량으로 키워내면 2~5㎏짜리 소 근육 덩어리를 만들 수 있다.
그 덩어리를 식품회사 같은 곳에 원료로 제공하는 거다. 이를 동결건조해 어묵이나 만두소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를 죽이지 않고도 소의 단백질을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배양육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기술을 상용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심플플래닛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세포 대량 배양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근육 세포를 키우는 데에 가장 비싼 재료는 배양액이다. 의학 연구 등에 쓰이는 소태아혈청(FBS) 배양액은 무척 비싼데, 소를 임신시키고 그 안에 있는 태아의 피를 뽑아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도 논란 거리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여러 기업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심플플래닛은 그 가운데 사람이 먹는 유산균을 키웠던 배양액을 재활용하는 방법으로 단가를 확 낮췄다.”
―유산균 배양액을 재활용하면 비용이 얼마나 저렴한가.
“뉴스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우리가 제일 저렴하다. 기존 방식으로 만드는 배양액은 1L(리터) 당 62만원인데, 우리는 1만원대 초반으로 가격을 낮췄다. 또, 우리는 완제품(고기 덩어리)보다는 식품 원료로 소량만 활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상용화가 더 쉬울 것이다.”
―북미 진출은 어느 정도 속도가 나고 있나.
“미국과 캐나다에 지사를 세울 예정이다. 미국 어느 주에다 설립해야할지 컨설팅을 받고 있다. 내년 상반기 중으로 설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업 파트너를 발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 상황인가.
“성수동에 GMP(의약품제조품질관리기준) 시설을 마련해 3000L 짜리 세포 배양 바이오 리액터를 만들기 위해 공사 중이다. 내년 1월 완공 예정이다. 그 리액터 안에서 세포가 자라날 수 있고, 완공되면 한달에 3톤 이상의 소고기 단백질 덩어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풀무원과 전략적 투자 계약에 대해 설명해달라.
“풀무원은 워낙 대체육, 대체식품에 관심이 많고 진지한 회사다. 풀무원과 국내 한정으로 이 같은 배양 세포가 식품에 얼마나 활용될 수 있을지 계속해서 실험을 하고 있다. 육류 대체 식품의 맛을 내기 위해 소금이나 양념을 많이 치면 오히려 건강에 안 좋다. 배양 원료를 조미료를 줄이면서도 본연의 맛을 챙길 수 있는 재료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향후 계획은.
“우선 배양육 기반 식품 원료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국가로부터 상용화 허가를 받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생산 규모를 확대하는 데에 내년 한 해를 보낼 것이다. 향후에는 배양육을 동결 건조한 파우더로 건강기능식품이나 알약 등으로 만들어 노년층들이 겪는 단백질 부족 등을 해소해 보고 싶다. 어머니가 단백질 식품을 따로 챙겨드시는데 흡수율이 좋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어떤 기업이 되고 싶은가.
“파타고니아 같은 회사가 되는 것이다. 환경, 지구, 자연 등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회사가 됐으면 한다. 사업적으로는 동물들의 희생 없이 다양한 상품에 심플플래닛의 원료를 제공해 지속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
◇정일두 대표는
▲미국 보스턴대 생명공학과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박사 수료 ▲안국약품 R&D기획팀 ▲코어 튜터 아카데미 창업 ▲아이도그워크 창업 ▲파운드 코퍼레이션 창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