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국 와인 생산자들 사이에서는 ‘당신 와인은 미국와인 같지 않다’라는 반응이 찬사였던 시기가 있었다.

미국와인이라면 응당 농도가 짙고, 포도를 과하게 짜내서 선 굵은 남성다움만 남아있다고 여기던 시기였다. 많은 미국 생산자들이 미국와인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프랑스 와인을 모방했다. 미국와인이 가진 개성을 오롯이 알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미국와인은 세계시장에서 이 선입견과 싸우고 있다.

미국 위스키는 미국와인과 다른 길을 걸었다. 처음부터 곁눈질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미국 연방 주류법은 미국에서 만드는 술 가운데 위스키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주류를 엄격하게 정의한다.

미국 위스키는 옥수수, 호밀, 밀 같은 곡물을 원료로 알코올 95% 미만으로 증류해 만들어야 한다. 맥아(몰트)를 주로 사용하는 스코틀랜드 위스키와는 첫 단추부터 다르다.

증류를 마친 원액은 불로 그을린 새 참나무통에서 숙성한 다음 알코올 40% 이상으로 만들어 병에 담는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보통 새 참나무통보다 포트와인, 쉐리와인을 담았던 참나무통에 넣어 익히는 방식을 선호한다.

“버번으로 불리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미국 내에서 생산해야 하고, 둘째 옥수수가 51% 이상 첨가돼야 한다. 셋째 내부를 훈제한 새 참나무통에서 2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

좋은 위스키는 35%가 재료에서, 65%가 숙성에서 온다.”
에디 러셀 와일드 터키 마스터 디스틸러

반듯하게 끝까지 채워 올린 파란 셔츠에 점잖은 군청색 재킷, 하얗게 센 머리로 느리게 말을 하는 목사 같은 남자.

에디 러셀이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위스키 생산지 켄터키주(州) 버번(Bourbon)에서도 단연 최고라 불리는 마스터 디스틸러(증류책임자·위스키의 맛을 결정하는 사람)다.

그는 이달 아들 브루스 러셀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부자(父子)가 동시 방한(訪韓)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디 러셀은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유명 버번 위스키 브랜드 와일드 터키(wild turkey)를 이끌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버번은 1960년대 미국에서 보드카가 대유행하며 몰락 위기에 처했다. 생존이 급박한 버번 증류소들이 앞다퉈 보드카 모방 위스키를 출시하던 뒤숭숭한 시기, 에디의 아버지 지미 러셀은 시류에 편승하는 대신, 오히려 버번 본연 맛을 끌어올리는 데 역량을 쏟는다.

그러곤 트렁크에 와일드 터키를 잔뜩 실은 차를 몰고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주류 판매장이 아무리 작더라도 일일이 들러 홍보했다. 그가 그렇게 기울인 노력이 결국 오늘날 버번 전성기를 이끌었다. 켄터키 여러 증류소의 마스터 디스틸러들은 그를 ‘버번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전설을 아버지로 둔 부담에 대해 묻자 에디 러셀은 “아버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르치기 보다 궁금한 점이 있어 물어보면 ‘네가 직접 해봐’라고 하며 항상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다”며 “가업을 이어받는다고 그 어떤 특혜도 주지 않았고, 반대로 더 혹독하게 훈련시켰다”고 말했다.

에디 러셀은 1981년 다른 직원과 똑같이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40년이 넘게 아버지 증류소에서 일하고 나서야 마스터 디스틸러 자리를 물려 받았다.

“아버지는 러셀 가문 이름을 잇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시려 했던 것 같다. 브랜드 발전은 개인 영감을 따라간다. 좋은 위스키를 만들려면 마스터 디스틸러가 계속해서 테이스팅 노트를 개선해야 한다. 오랫동안 위스키 만드는 일을 지켜보면서 아버지와 나는 와일드 터키가 초기에 내세웠던 3~5가지 향보다 훨씬 많은 향을 찾아냈다.”

에디 러셀은 같이 방한한 브루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훈련을 시킨다고 말했다. 2010년 증류소에 합류한 브루스 러셀은 현재 위스키 원액 품질을 관리하는 블렌더(blender)로 일한다. 이들 각기 다른 세대 3명은 한 팀으로 뭉쳐 9년, 12년, 14년 그리고 15년 숙성 버번 배럴을 골라 새 위스키를 만들었다. 곧 국내에 한정 출시하는 와일드 터키 제너레이션즈(Generations)다.

그래픽=정서희

1대 지미 러셀과 2대 에디 러셀, 3대 브루스 러셀 경력을 모두 합치면 120년이 훌쩍 넘는다. 위스키 종주국이라 하는 스코틀랜드에서도 3대가 같은 증류소에서 일관된 경력을 이어가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

브루스 러셀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서로 추구하는 스타일은 달랐지만, 수십년 동안 쌓은 기술을 통해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지켜냈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서 내 색깔을 보여주려면 아직 훨씬 많이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오전 인터뷰 내내 맞은 편에서 한 젊은 여성이 혼자 앉아 위스키 테이스팅 세트와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고 마시는 장면을 지켜봤다.

브루스 러셀은 “벤앤제리 아이스크림과 와일드 터키 위스키는 에디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라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애호가들이 개성있는 방식으로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점이 한국 위스키 시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에디 러셀 역시 한국 소비자에게 위스키를 격의 없이 편하게 즐기라고 조언했다.

“아버지는 물을 조금 섞고, 얼음 하나를 넣어 마셨습니다. 저는 콜라에 와일드 터키 위스키를 섞어 마시길 좋아합니다. 무엇을 섞든지 좋은 위스키를 사용한다면 버번 위스키가 가진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