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서민 생활에 밀접한 식품과 화장품 가격이 일제히 오른다.

오른 면면을 보면 ‘서민의 술’ 소주와 맥주, 요거트, 아이스크림, 주스부터 화장품까지 범위도 넓고 품목 역시 다양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올초부터 줄곧 서민물가 안정을 강조했지만, 일선 기업에는 닿지 않는 분위기다.

3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마트 관계자가 소주를 진열하고 있다. /뉴스1

하이트진로(000080)는 다음 달 9일부터 소주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오리지널 공장 출고가를 6.95% 인상한다고 31일 밝혔다. 참이슬은 국내 소주 시장의 절반 가량을 점유하고 있어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 인상 체감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후발주자인 롯데칠성음료 ‘처음처럼’ 등의 가격 인상도 뒤따를 전망이다. 관례적으로 각 부문을 선도하는 기업이 값을 올리면 다른 기업들도 이르면 2주, 늦어도 6개월 안에 따라서 가격을 인상했다.

하이트진로는 동시에 간판 맥주 테라와 켈리 출고가 역시 다음달 9일부터 평균 6.8% 올리기로 했다.

이달 초 맥주 시장 점유율 1위 오비맥주는 맥주 출고가를 올렸다. 여기에 소주 시장 점유율 1위 하이트진로마저 소주 출고가를 올리면서 곧 일선 음식점과 주점 주류 가격에도 해당 인상분이 전가될 예정이다.

특히 주류 소비가 늘어나는 연말을 앞두고 소주·맥주 가격이 동시에 뛰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상 폭 역시 두 배로 늘게 됐다.

현재 5000원인 대중식당 소주 가격은 올해 6000원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6000원 수준인 대중식당 맥주 가격 역시 이달 인상분을 적용하면 올해 중 7000원에서 8000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소주와 맥주를 섞는 ‘소맥’을 보편적인 비율에 따라 소주 1병과 맥주 2병으로 구성하면 이제 최소 1만9000원에 달할 전망이다.

술보다 대중적인 유제품 가격도 올해 잇달아 오르고 있다. 이날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바나나우유 같은 가공우유와 쿨피스, 과일주스,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일부 품목은 다음 달 1일부터 최대 19% 뛴다.

빙그레(005180) 인기 요거트 요플레 딸기와 플레인이 1950원에서 13%가량 오른 2200원에 판매될 예정이다. 바나나우유와 딸기맛우유 등은 6%, 쥬시쿨(450mL)은 11% 오른다.

스테디셀러 아이스크림 투게더(9%), 엑설런트(10%)도 인상 대상이다. 특히 최근 젊은 층 선호도가 높은 프로틴플레인, 프로틴 딸기바나나는 3200원에서 3800원으로 19% 비싸졌다.

서울 LG생활건강 화장품 매장. /연합뉴스

식품 업계 뿐 아니라 화장품 업계도 이날 제품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LG생활건강(051900)은 다음 달 1일부터 숨, 오휘, 빌리프, 더페이스샵 같은 주요 브랜드 일부 품목 가격을 평균 4∼5% 인상한다. 이니스프리는 올해 109개 품목 가격을 평균 19.3% 인상했다.

비싼 화장품 브랜드도 예외가 없다. 로레알도 다음 달 1일부터 랑콤을 비롯해 키엘·비오템·입생로랑 제품 가격을 평균 5% 인상할 예정이다.

아모레퍼시픽(090430) 설화수는 하이엔드 라인 ‘진설’을 지난달 재단장하면서 대표 품목 진설크림(60㎖) 가격을 47만원에서 52만원으로 10.6% 올렸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서울과 경기도 420개 유통업체에서 판매하는 생활필수품 39개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 올 3분기 생활필수품 가격은 지난해보다 평균 8.3%가 뛰었다.

생필품 39개 가운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값이 내린 품목은 오로지 달걀과 식용유 두 품목 뿐이었다. 이들 품목 하락 폭도 달걀은 3.0%, 식용유는 0.3%로 28%씩 오른 케첩 등에 비하면 미미했다.

식품업계는 지난해 초부터 밀가루·식용유지류 같은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인건비 등이 올랐다는 이유로 제품 가격을 꾸준히 올렸다.

지난 2년간 3차례 이상 제품 가격을 올린 라면 업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작 성적표를 들여다보니 라면업계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라면업계 매출 1위 농심(004370)은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53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62% 증가했다. 삼양식품(003230) 역시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 2854억원, 영업이익 440억원을 기록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1.8%, 영업이익은 61.2% 늘었다.

서울시내 한 마트에서 신라면을 비롯한 라면을 판매하고 있다. /뉴스1

이들은 지난 7월 정부와 소비자단체가 밀가루가 들어간 제품과 라면 가격 인하를 요청하자 가격을 5% 가량 내렸다. 롯데웰푸드와 SPC 같은 제과·제빵업계도 대표 상품 가격 인하에 동참했다.

하지만 라면업계는 가격 인하 이후에도 여전히 역대급 실적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올해 3분기 농심 영업이익은 49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3%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오뚜기와 삼양식품 역시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뚜기는 영업이익 69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6%, 삼양식품은 영업이익 355억원으로 83.4% 증가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은 ‘제품값 인상 때는 큰 폭으로 올리더니 내릴 때는 찔끔 내려 생색만 낸다’고 지적한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농심은 지난해 9월 신라면 10.9%, 너구리 9.9% 등 라면 26개 품목 가격을 올렸는데, 올해 7월 인하 대상에는 신라면만 포함했다.

정부가 아무리 물가 억제를 외쳐도 기업들이 아랑곳하지 않으니 근본적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물가 잡기가 실효성이 있는지 여부를 지적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인위적인 방식으로 물가를 잡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시장 가격을 억제하기 보다 기업들이 생산 원가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