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한 강물, 물풀이 무성한 곳에 사는 시커먼 가물치를 본 적이 있는가? 방송이나 유튜브의 온갖 먹방 프로그램을 돌려봐도 가물치는 등장하지 않는다. 우선 식용으로 거의 먹지 않는 게 가물치다. 토종 민물고기인 가물치는 피로 해소나 산후조리용 보양식으로 이용된다. 약으로 쓰이는 생선이니, 요리로 내놓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생긴 것은 또 얼마나 섬뜩한가? 몸 전체는 검은 빛이다. 특히 등쪽은 검은 빛이 진하고 배쪽은 그나마 희거나 노란색을 띤다. 한마디로 ‘비호감’ 물고기다. 덩치도 작지 않다. 성어가 되면 보통 길이가 50cm가 넘고 1m가 넘는 것도 있다.

기자가 별 이해관계도 없는 가물치 ‘흉’(?)을 이렇게 오랫동안 보는 이유는 어릴 적 기억도 한몫한다. 여섯일곱살 때였던 것 같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엄마는 가물치를 산 채로 가마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급히 참기름을 두른 뒤 솥뚜껑을 닫았다. 푸더덕 푸더덕 하는 소리가 났고, 엄마는 들썩거리는 솥뚜껑을 온힘 다해 누르고 있었다. 열기에 못견딘 가물치가 뛰쳐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순간은 끔찍했다. 가물치의 처절한 몸부림이 끝난 건 한참이 지나서야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들지도 못하는 가마솥 뚜껑을 들썩거릴 정도의 힘,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가물치는 어린 아이 눈에는 왠지 불쌍하다기보다는 무서웠다. 내가 본 가물치는 그때가 거의 다였다. 요즘도 전통시장을 가면 가물치가 있겠지만, 흔하지는 않다. 온갖 보양식이 지천에 깔려 있으니, 보신하겠다고 굳이 가물치를 찾는 사람도 많지 않을 테니까.

다농바이오 한경자 대표가 독일 코테사의 상압 증류 설비 앞에 서 있다. 코테 증류기는 세계 최고급 증류설비다. 상압증류는 일반 대기 상태에서 증류하는 것으로, 다양한 향을 내는 장점이 있다. /박순욱 기자

그런데, 세상에 소주 이름이 ‘가무치’라니? 가무치는 가물치를 뜻한다. 이름만 연상해도 흙냄새, 비린내가 날 것 같다. 보통 술이름은 안동소주(지역명), 지란지교(사자성어), 송화백일주(원료로 쓴 식물이름) 같은 게 익숙한데, 민물고기에서 술 이름을 따온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정말 가무치를 술 이름으로 내놓은 양조장이 충북 충주에 있다. 양조장 이름은 다농바이오. 다양한 농산물을 원료로 술을 빚겠다는 의미다. 바이오는 술의 발효를 도와주는 미생물을 의미한다. 100% 충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만을 술 원료로 사용하는 지역특산주 양조장이다. 가무치는 충주산 쌀과 물, 발효제로만 빚어 증류한 소주다.

다농바이오는 2020년 7월에 양조장 법인을 설립했지만, 첫 제품 ‘가무치 25(알코올 도수 25도)’를 출시한 것은 올해 2023년 2월이다. 다농바이오 한경자 대표는 이름을 가무치로 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가무치는 한국의 토종 담수어인 가물치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을 정했다. 가물치는 강한 생명력과 적응력, 그리고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가진 물고기다. 제품 ‘가무치’는 가물치라는 생명체의 이러한 내재가치에 의미를 두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이들의 삶을 응원한다.”

가물치가 가진 생명력, 적응력, 강인함 이런 이미지를 소주 ‘가무치’에 담고 싶었다는 게 한경자 대표의 설명이다. 토종 물고기 이름을 내세워, 외국산 원료로 만든 ‘짝퉁 국산 술’을 물러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럼, 가무치 소주의 맛은 어떨까? 향도 궁금했다. 우선, 다농바이오측의 설명 자료를 보자.

‘가무치 소주는 잔에 따르는 순간부터 피어오르는 고소한 향을 가진 술이다. 그 속에 섬세하고 부드러운, 신선한 향들을 가지고 있다. 입에 들어오면 무게감 있고 오일리한 질감들이 퍼지며 마지막에는 쌀에서 오는 기분좋은 달콤함이 잔잔하게 남아있게 된다. 천천히 음미하면 다양한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역동적인 술이다.’

충북 충주의 지역특산주 양조장 다농바이오의 소주 제품 가무치 25(왼쪽 2개 제품), 가무치 43. /박순욱 기자

다음은 전통주 전문가의 시음기. 전통주 홍보 플랫폼업체인 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의 평가다. 최근 나온 가무치 43의 평가도 함께 소개했다.

“가무치 25의 경우, 바디감도 중간 이하에 마시기 편하고 깔끔하다. 반주로 음식과 즐기기 좋겠다. 가무치 43은 반대의 캐릭터다. 진한 농축미와 강렬한 킥이 있고, 후미는 맵고 칼칼하다. 얼음이나 물을 타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분이나, 증류주 자체의 맛을 즐길 분에게는 가무치 43을 추천한다.”

실제로 마셔본 가무치 25도는 한마디로 부드러웠다. 대개 상압증류(일반 대기압에서 술덧을 끓여 증류하는 방식)로 내린 술은 향이 풍부한 장점은 있지만, 탄내가 날 수 있다. 그런데 가무치는 상압증류로 내렸지만, 탄내는 전혀 없으면서, 바닐라 향 같은 곡물 특유의 달콤함이 느껴졌다.

가무치 43은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전이라, 아직 시장의 반응을 볼 수 없지만, 올 2월에 나온 가무치 25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출시한지 1년도 안됐지만, 국내 증류식 소주 시장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아직은 찻잔 속의 태풍처럼 느껴지지만, 곧 전국을 강타할 태풍급 바람으로 격상할 것 같다’는 네티즌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첫 제품을 내놓은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 양조장 다농바이오를 전통주 업계가 주목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3억원이 훨씬 넘는 최고급 독일산 코테(KOTHE) 증류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농바이오의 증류설비는 9단 다단식 증류기 2개(듀얼)가 한 세트로 돼 있다. 18단인 셈이다. 국내 어느 양조장 증류설비보다 크기(높이)나 가격면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다농바이오 가무치 제품들이 숙성되고 있는 항아리들. 증류 후 평균 6개월 정도 숙성 후 병입한다. /박순욱 기자

국내 증류설비는 중국산이 많다. 미국, 유럽산보다 가격이 저렴한 장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독일산 증류설비는 세계 최고가 장비로 알려져 있다. 증류주 후발주자인 다농바이오가 이렇게 비싼 증류기를 설치한 이유를 물었다.

“술 양조 기술도 축적돼 있지 않은 우리 양조장이 기존 증류주 전문 양조장과 차별화하는 방법은 증류설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설치한 독일 코테 증류기는 상압식 증류기다. 100도 가까운 온도(실제 알코올은 78.4도쯤부터 끓기 시작한다)에서 술덧을 끓이기 때문에 고온에 의한 다양한 향기성분이 술에 배여 있다. 그래서 술맛이 풍부하고 화려하다는 장점이 있다. 향도 잘 우러나고 무엇보다 목넘김이 부드럽다. ‘한국 전통주 시장에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세계 최고급 증류기를 들여왔다. 코테 증류기가 국내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흔하지는 않다. 앞으로 여러 양조장에서 코테 증류기를 들여와 국내 증류주 시장이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으면 한다.”

다농바이오 한경자 대표가 술을 숙성하고 있는 오크통들을 소개하고 있다. 현재 시판 중인 가무치 제품들은 항아리 숙성 술이지만, 머지 않아 오크 숙성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박순욱 기자

실제로 본 다농바이오 증류설비 외관은 압도적이었다. 재질이 구리(동)라서, 조명을 받은 설비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동증류기는 증류과정에서 나오는 유해물의 일종인 황화합물을 흡착하는 효과가 있고 증류원액이 순하고 숙성된 맛이 난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위스키 양조장들을 비롯해 고품질 증류주를 생산하는 업체에서 많이 쓰는 증류설비다.

게다가 9단 증류기는 이곳 다농바이오에서 처음 봤다. 여러번 증류하는 효과를 가진 다단식 증류기는 여러 양조장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이곳 다농바이오 양조장처럼 9단이나 되는 다단식 증류기는 국내 어느 양조장에서도 갖고 있지 않다.

증류설비에서 단수를 높이는 것은 순도 높은 알코올을 얻기 위함이다. 하지만, 단수를 높인다고 고품질의 증류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5단, 9단 이런 식으로 단수를 올릴수록 좋은 향들은 오히려 나오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스코틀랜드의 최고급 몰트 위스키를 생산하는 증류소들은 다단식 증류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알코올 도수를 올리기 위해 증류를 두번 한다. 원재료가 갖고 있는 향기를 증류과정에서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서는 다단식이 아닌 단식(1단) 증류기가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옥수수 같은 곡물을 사용하는 그레인 위스키 증류소들은 다단식 증류기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다농바이오의 9단 듀얼 상압증류 설비로 만든 가무치 25의 향은 어떨까? 알코올 도수를 낮추기 위해 적지 않은 물을 탔는데도, 바닐라, 배 같은 달콤한 향들이 느껴진다. 한경자 대표는 “고소한 향이 일품인 가무치 제품 자체가 ‘다단식 증류기가 다양한 향의 증류주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견해가 틀렸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가지 의문은 남는다. 9단 다단식 증류기를 통과한 알코올은 1단 증류기보다 알코올 도수가 월등히 높다. 그래서 증류원액의 알코올 도수는 64~67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왜 다농바이오는 다른 양조장처럼 40도 안팎의 제품 대신, 물을 많이 타야 하는 25도 제품을 먼저 내놓았을까? 증류주는 통상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고급 제품으로 치며, 가격도 알코올 도수에 비례해서 비싸다. 증류식 소주치고는 도수가 낮은 편인 가무치 25를 먼저 내놓은 까닭을 한경자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최고급 증류기로 내린 가무치 소주를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접해봤으면 하는 생각에서 가격이 착한 25도 제품을 먼저 출시했다. 사실, 높은 도수 제품 만드는게 훨씬 쉽다. 물을 적게 타도 되니, 증류원액과의 맛 차이도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도수 제품은 가격이 알코올 도수에 비례해서 높기 때문에 소비력 있는 사람들만 마실 수 있다. 그래서, 우선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무치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낮은 도수의 가무치를 먼저 내놓은 것이다.

한가지 걱정했던 점은 도수를 낮추기 위해 물을 꽤 많이 타야 하는데, 이럴 경우 술에 물맛, 쓴맛이 도드라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가무치 25도 제품은 첨가한 물에서 비롯되는 쓴맛보다는 쌀 본연의 단맛이 더 느껴져 소비자들 반응이 아주 좋다.”

다농바이오는 최근 두번째 제품으로 가무치 43을 내놓았지만 한경자 대표의 눈은 더 먼곳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가무치는 25도, 43도 모두 항아리 숙성 제품이다. 하지만, 다농바이오의 미래 먹거리는 따로 있다. 오크 숙성 소주다. 다양한 오크통에서 이미 숙성 중인 증류주 양도 어마어마하다. 한 대표 소개로 가본 오크 숙성실에는 크고 작은 오크통 350여개가 소주 원액을 품고 잠을 자고 있었다. 앞으로 매년 오크통을 100~150개씩 더 들여오겠다고도 했다.

다농바이오 양조장이 갖고 있는 350여개의 오크통 중 하나인 포트와인 오크통. 그외에 쉐리와인 오크통, 버번 오크통, 프랑스와인 오크통들도 있다. /박순욱 기자

“이곳에 있는 오크통은 크게 네가지다. 미국 버번 오크통, 포르투갈 포트와인 오크통, 스페인 쉐리 오크통, 그리고 프랑스와인 오크통까지 있다. 이중에는 이미 숙성을 2년 정도 한 술을 담고 있는 오크통도 있고, 지난 8월에 갓 증류한 술을 담은 오크통도 있다. 다양한 오크통에 술을 숙성하는 이유는 하나다. 우리가 만드는 쌀소주에 가장 적합한 오크통을 찾기 위해서다. 오크통 숙성을 통한 부케 향과 쌀 본연의 아로마 향을 종합적으로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오크통이 확인되면, 그 오크통을 집중적으로 더 들여올 것이다. 오크 숙성 가무치는 술 이름도 달리 정할 것 같다.”

다농바이오는 오크 숙성 가무치 외에도 다양한 농산물로 술을 빚을 작정이다. 아직 제품화하지는 않았지만, 인삼이 들어간 진 증류주, 사과(즙)를 고두밥과 같이 발효해서 증류한 술도 숙성 중에 있다.

“쌀이 많이 나는 한국과 일본은 술 원료로 쌀을 많이 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해마다 작황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시세 또한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작황 여건에 따라 쌀 말고도 여러 농산물을 술 원료로 활용할 생각이다. 쌀 값이 비싸면 그해는 쌀 수매를 줄이는 대신, 사과를 같이 발효해서 사과향이 나는 소주를 만드는 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