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특급호텔이 일식당 운영을 두고 고심에 빠졌습니다.

일본 정부는 24일 오후 1시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했습니다. 도쿄전력은 하루에 오염수 약 460톤을 바닷물로 희석해 방류하는 작업을 17일간 진행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달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밝혔습니다. ‘방류에 따른 방사선 영향이 미미하다’는 결론도 덧붙였습니다.

특급호텔 일식당은 불안합니다. 이들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이미 방사능 오염수 문제를 한차례 겪었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 이전 일본산 어패류 수입 금액은 2억1200만달러(약 2843억원)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대지진 직후 방사능 누출 공포가 불거졌습니다. 이후 수입 금액은 3년 만에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수입 중량은 더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2010년 8만1800톤에서 2013년 3만1400톤으로 3년 만에 60%가 감소했습니다. 호텔에서 쓰이는 일본산 고급 해산물 대신 저렴한 가공용 해산물 위주로 들어온 탓입니다.

당시 횟감용 생선에서 시작한 일본 식자재 기피 현상은 금새 건어물과 농산물로 이어졌습니다. 2020년까지 일본산 어패류는 우리나라 시장에서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판이 뒤바뀌었습니다.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식집 스시 오마카세(맡김차림)가 유행하면서 일본산 어패류도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지난해 일본산 어패류 수입 금액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래픽=손민균

‘스시 본고장’ 일본에 버금가는 스시를 우리나라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된 건 삼성을 등에 업은 신라와 신세계(004170)가 운영하는 웨스틴조선 두 호텔 공이 큽니다.

‘스시 오마카세’를 유행시킨 우리나라 주요 일식당 요리사 대부분이 이 두 호텔 출신입니다. 서울 신라호텔 아리아께와 웨스틴조선호텔 스시조에서 수련한 뒤 독립해서 이름을 날리는 스시 요리사가 무수히 많습니다.

한때 특급호텔 일식당에서는 쌀과 물을 제외한 다른 식재료는 전부 일본에서 들여왔습니다. 얼만큼 일본산 식재료를 많이 쓰는지 여부가 일식당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였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수련한 요리사들은 암묵적으로 일본산 재료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는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이 관습을 깼습니다. 사고 직후 아리아께는 일본산 식재료를 쓰지 않겠다고 못 박았습니다.

2012년 신설한 식재료 구매팀은 제주도와 완도, 강원도 양양과 경상북도 포항을 돌아다니면서 일본산을 대체할 국산 식재료를 찾아냈습니다. 참다랑어처럼 우리 바다에서 잡히지 않는 생선들은 스페인이나 미국 같은 먼 국가에서 들여옵니다.

올해 여름 아리아께 메뉴판을 보면 스페인과 모로코산 다랑어를 제외한 모든 어패류가 국내산입니다.

반면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는 일본산을 꾸준히 이용합니다.

지난달 저녁을 기준으로 성게 알은 홋카이도, 와사비는 시즈오카산(産)을 씁니다. 김 역시 일본에서 최고급 재료를 공수합니다. 성게 알과 와사비, 김은 일식당에서 가장 비싼 3대 재료로 꼽힙니다. 여기에 계절에 따라 오징어 같은 제철 식재료도 일본산이 손님 상에 오릅니다.

그동안 스시조가 선보인 일본산 식재료 덕에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일본에 가지 않고도 현지 맛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4일 원전 오염수 방류 이후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더 이상 성게 알과 김, 와사비 같은 핵심 원재료를 일본산으로 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웨스틴조선호텔은 자연히 우리나라나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를 수배해 이전과 최대한 비슷한 재료를 구해야 합니다. 특급호텔 일식당에서 사용할 만큼 선도 좋은 재료는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웨스틴조선호텔을 운영하는 조선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 안전 기준에 적합한 수산물을 사용 중”이라며 “매일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식재료를 들여올 때마다 추가적인 기준 수치를 관리 감독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리아께나 스시조 같은 특급호텔 일식당은 최근 한때 ‘예약 대란(大亂)’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제 가만히 있어도 예약이 차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수산업계는 수산물 소비 감소를 예정된 수순으로 봅니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 4월 소비자 525명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92.4%는 ‘원전 오염수 방류 이후 수산물 소비를 줄이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아리아께는 1979년, 스시조는 1985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모두 업력이 40년을 넘나듭니다. 내로라 하는 특급호텔 일식당들이지만, 12년 만에 돌아온 오염수 공포는 달갑지 않습니다.

미리 대비를 한 곳도, 그렇지 않은 곳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각자 도생으로 어떻게든 줄어든 손님 발길을 돌려 세워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일식당의 진짜 저력을 보여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