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치 위스키가 오랜 기간 세계적인 위스키로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라벨, 지리적표시제 등 10가지가 넘는 자체규정을 만들어, 까다로운 생산공정과 블렌딩을 통해 엄격한 품질관리를 거치기 때문이다. 700년 역사의 안동소주 역시, 앞으로 안동소주가 지닌 문화적 가치와 우수한 품질을 인증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고 이를 엄격히 적용해, 대한민국 대표 전통주로 소비자들의 신뢰와 인지도를 확보하고 더 나아가 세계적인 명주로 발돋음시킬 계획이다."(경상북도 이철우 도지사)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생산이 시작된 것은 1494년이지만, 안동소주는 그보다 200년 앞선다. 그만큼 우리의 증류주 기술이 유럽보다 앞섰다. 안동소주는 '세계 명주'라 부르는 스카치 위스키, 중국의 백주, 일본의 사케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전통술인데, 저평가됐다."(경상북도 이철우 도지사)
경상북도가 안동소주 세계화를 위해 총 114억원을 투자하고, 우선 2026년까지 48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경북도 관계자는 "스카치 위스키보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품질 면에서도 뒤지지 않는 안동소주가 세계인의 입맛과 정서를 사로잡을 수 있도록 안동소주 세계화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안동이라는 지역명과 한국의 대표적 증류주인 소주가 결합된 안동소주는 지역소주로 명맥이 이어오고 있는 흔치 않는 경우다. 한산소곡주, 진도홍주 등이 안동소주와 유사하게 지역명이 술과 결합된 경우다.
외국의 경우는 지역명을 내세운 사례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스카치 위스키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생산, 3년 이상 숙성 등의 규정을 지킨 위스키에만 스카치 위스키라는 이름을 허용하고 있어, '스카치 위스키'는 고급 위스키의 대명사로 통한다. 샴페인도 마찬가지다. 전세계 곳곳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지만,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에만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허용한다. 그래서 샴페인이라는 이름만 붙어도 '고급 스파클링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안동소주는 한반도 소주의 출발이 안동이라는 역사성도 갖고 있다. 수운잡방을 비롯한 여러 옛문헌 기록을 통해 '국내 증류주(소주)의 시작이 고려말 안동에서 비롯됐다'는 학설이 전통주 업계에서 큰 이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1281년 고려 충렬왕 시기에, 몽골군에 의해 증류주 기술이 전해졌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최근 한국국학진흥원이 기획하고 펴낸 책 '안동소주(저자 박성호 안동소주협회 회장-맹개술도가 이사)'의 부제는 '700년 음식 유산'이다.
그러나, 2023년 안동소주는 어떤가? 안동소주라는 이름만으로 전통주 업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증류주'로 대접받고 있을까? 현재 안동소주의 위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우선, 젊은 소비자들은 안동소주를 '꼰대술'이라며 외면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도자기병을 고수하고 있는 제품이 여전히 많은데다, 누룩향이 강하고, 탄내(소주는 열을 가해 증류하기 때문에 탄내가 날 수 있다)가 난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그러다 보니, 전통주 전문점에서도 안동소주는 잘 팔리는 상품이 아니다. 가격 역시 최근에 나온 증류식소주보다 결코 높지 않다.
안동소주의 해외 성적은 더 초라하다. 안동소주가 '세계화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스카치 위스키에 비해 그렇다는 얘기다. 스카치 위스키 총 수출은 2018년 기준 7조1400억원에 달하며,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이 위스키 투어에 참가하는 등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안동소주는 2022년 총수출액이 6억원에 그쳤다.
안동소주가 국내외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일부 양조장들이 제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주정(값싼 외국산 원료를 연속증류해 얻은 알코올 도수 95도 이상의 증류원액)을 타는 등 품질 낮은 소주들을 내놓고 있는 탓이 크다. 거기에다 증류방식도 전통적인 상압증류방식을 택하는 양조장이 있는가 하면, 감압증류방식(기압을 낮춰, 낮은 온도에서 술을 증류하는 방식)을 택한 곳도 많아, 안동소주만의 '정체성'이 없다시피한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안동소주는 '안동에 있는 양조장들이면 누구나 이름 붙이는 흔한 지역브랜드'가 돼버렸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경북도가 나서서 안동소주의 품질과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인증제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안동소주 세계화'에 앞장선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경북도는 최근 안동소주 세계화 추진단을 결성하고, 안동지역에서 술을 제조하고 있는 9개 양조장을 회원으로 안동소주협회를 새로 발족시켰다. 9개 협회 회원사로는 명인안동소주, 민속주안동소주, 안동소주일품, 명품안동소주, 회곡양조장, 유토피아, 밀과노닐다, 버버리찰떡, 농암종택이다.
경북도 이철우 도지사는 이들 중 안동지역 6개 양조장 대표들과 함께 지난 2월에는 영국 스코틀랜드를 방문, 스카치위스키협회 관계자들을 만나 양국 전통주 협회간의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안동소주협회 회원사들은 박성호 맹개술도가 이사를 초대 회장에 선출했다.
박성호 신임 회장은 농부 출신 양조인이다. 2007년 지금의 맹개마을에 정착, 3만평 밀농사를 지어오다 직접 기른 유기농 밀로 술을 빚어, 2019년 안동진맥소주를 내놓으면서 술 양조에 뛰어들었다. 안동지역 양조장 중 가장 역사가 짧지만, 반대로 제품 가격은 가장 높다. 그만큼 전통주 애호가들의 반응 역시 뜨겁다.
다음은 박성호 안동소주협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안동소주협회 설립 취지는?
"안동소주협회는 안동소주 업계 상호간의 협력과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한 마케팅을 돕는 것이 우선이지만, 무엇보다 장기적 숙제로, 안동소주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작업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안동소주의 규약 제정 및 품질인증제 도입, 나아가서 지리적표시제 시행이 안동소주협회 결성의 1차 목표다."
-지리적 표시제란 무엇인가?
"지리적 표시제는 장기적으로 브랜드 보호의 목적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안동소주란 브랜드를 가치있게 만드는 일이다. 지리적 표시제는 단순하지 않다. 특히 품질규정이나 제조방법, 사용원료나 브랜드 사용방법들까지 규정을 해야 한다. 결국 품질 면에서 최소한의 규정을 꼭 지켜야 하고, 이것이 소비자 신뢰와 브랜드 가치 강화로 이어진다. 결국 마케팅의 기본을 시작하는 일인 셈이다. 많은 제조자가 안동소주란 브랜드를 쓰고 싶어하고, 많은 소비자가 안동소주 브랜드 술을 찾게 되는 시작점에는 엄격한 지리적 표시제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
-박 회장이 언급한 지리적 표시제와 경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도지사 인증 기준'은 서로 부딪히지 않는가?
"경북도가 준비하고 있는 인증제도와 지리적 표시제는 사실 같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표시제가 도입이 되고, 그 품질 기준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안동소주란 브랜드를 남용하고 있는데, 신생 협회가 새 규정 미달이라고 기존 생산품을 금지하기는 어렵다. 그에 대한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품질 규정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는 인증을 주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쉽지 않은 길이고, 반발이 예상되는 고난의 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동소주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엄격한 원료 규정부터 전반적인 품질 관리가 곧 브랜드 관리이고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는 지름길이지 않겠나."
-안동소주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대인가?
"제비원 상표의 안동소주가 널리 알려진 것은 1923년 안동주조주식회사 덕분이다. 하지만, 여러 기록을 종합해보면 안동소주는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소주 생산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1920년까지도 안동소주 제조업자가 40여개나 됐다."
-그동안 각자도생하던 안동소주 업체들이 협회 결성을 계기로 '경쟁적 협력 관계'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안동소주 업체들은 그동안 안동소주의 유명세에 힘입어 각자의 방식으로 생산, 판매를 해왔다. 그러나, 지금 전통주 시장은 안동소주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품질 규정 없이 난립해온 안동소주는 국내외에서 저가, 저품질 경쟁에 나섰고, 브랜드 훼손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협회 결성을 계기로 지자체의 다양한 지원, 단일화된 협상창구인 협회를 통해 안동소주 위상 제고를 위한 마케팅에 기대를 갖고들 있다."
-관(경북도, 안동시) 주도의 안동소주 세계화가 지속가능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보나?
"그렇지 않다. 초기 출발점에서는 자극제와 자양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빠른 시간 안에,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세계화(수출)를 진행하고, 관은 뒤에서 돕고 밀어주는 형태가 바람직할 것이다."
-협회 회원사들은 경북도 주관으로 최근 일본과 영국 스코틀랜드를 다녀왔다. 안동소주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었나?
"스코틀랜드와 일본의 증류주 시장은 오랜 세월 쌓아온 자율규약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강력한 지리적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것은 짧은 순간에는 할 수 없지만, 이번에 얻은 교훈은 지금부터라도, 안동소주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디딤돌(교두보)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국간 협력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장 큰 성과는 우리 한국에도 제대로 된 증류주가 있고, 그 중심이 안동소주라는 걸 알리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 소주 업계는 생존을 위해 엄청난 혁신과 변혁을 꾀하고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최근 경북도가 안동소주 세계화를 위한 외부 자본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올해 주식시장에 상장을 한 와인수입 전문 주류회사가 3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돈은, 돈을 보고 움직인다. 지자체가 밀어준다고 지역의 소주산업이 금방 커지지 않는다. 반면에, 김창수위스키와 같은 젊고 혁신적인 기업은 도리어 지자체가 나서서 지역으로 끌어들이고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일부 생색내기는 있겠지만, 자본시장이 빨리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자본있는 기업이 들어와서 제대로 안동소주 시장을 키웠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기존 안동소주 제조업체들이 합치거나, 외부에서 경영권을 인수하는 등의 변화 역시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런 생태계가 조성돼, 명실상부하게 '한국의 증류주 메카'로 안동이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안동소주가 스카치 위스키보다 출발이 200년 앞섰다고 하지만, 지금의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가치를 만든 주역인 스카치위스키협회가 생긴 것은 1942년이다. 올해 발족한 안동소주협회보다 80년 앞선 셈이다. 그에 비하면, 안동소주협회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아나 다름없다. 서두르지 말고, 멀리 내다보며 안동소주 브랜드를 높이는 작업을 차곡차곡 해나갔으면 한다. 안동소주 세계화의 성공여부는 9개 회원사의 결단과 실천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