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주업계 1위 하이트진로가 올 들어 부쩍 와인 수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를 넘나들며 새로 들여오기 시작한 와인이 40종류를 넘는다.

이전까지 하이트진로는 생산량이 수십만병을 넘나드는 유명 와이너리 와인 수입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족끼리 운영하는 소규모 와이너리, 엄격한 친환경 방식으로 포도를 키운 소위 ‘내추럴 와인’처럼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와인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들 와이너리는 생산량은 적지만 그만큼 개성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길게는 수 세기 수 세대에 걸쳐 독특한 포도 재배 기법이나 양조 기술을 쌓은 곳이다. 대량 생산한 와인에 비하면 호불호(好不好)가 갈리는 편이지만, 우리나라 와인 시장에서도 무난한 와인에 질린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이트진로 와인 관련 매출은 지난해 442억원을 기록했다. 10년 전 2013년 53억원에 비하면 8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팬데믹 기간이었던 최근 3년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2020년 245억원이었던 와인 관련 매출은 3년새 2배 가까이 급성장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하이트진로 ‘본업’에 해당하는 소주 출고량은 2017년 이후 2021년까지 매해 줄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펴낸 2021년도 주류산업정보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주 출고량은 와인이 급성장한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도리어 5.6% 감소했다. 맥주 역시 2013년 이후 8년 내내 출고량이 뒷걸음질 쳤다.

그래픽=손민균

하이트진로 와인 수입 역사는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이트진로는 1997년 5월 당시 계열사였던 하이스코트에서 와인 사업을 시작했다.

하이스코트는 주로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 지방에서 많이 팔릴 만한 대중적인 와인을 들여와 팔았다. 이후 하이트진로는 2012년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하이스코트를 흡수합병했다.

하이트진로 와인 사업에 본격적인 변화는 2016년부터 시작했다. 그해 하이트진로는 와인 사업을 키우기 위해 유태영 신동와인 대표를 와인 담당 임원으로 영입했다.

이후 하이트진로는 기존에 취급하던 ‘마트와인’ 중심 포트폴리오에 본격적인 프리미엄 와인을 더했다. 스페인,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와인 제품군을 두텁게 다듬은 것도 이 무렵이다.

올해부터는 여기에 내추럴 와인 부문을 강화했다. 내추럴 와인은 인위적 개입 없이 만들어진 자연주의 와인이다. 양조 과정에서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 효모로 발효한다. 원활한 유통을 위해 필수라고 알려진 이산화황 보존제도 최소화하거나, 아예 넣지 않는다.

이달 4일 하이트진로가 수입하기 시작한 ‘클로즈리 생호크’, 지난달 출시한 ‘고요 가르시아 비아데로’가 대표적인 예다.

하이트진로는 앞서 올해 2월 한주 간격으로 프랑스 알랭 좀므의 유기농 와인 10종과 스페인 라 콘레리아 디스칼라 데이의 유기농 와인 5종을 잇달아 들여왔다.

유태영 하이트진로 와인 부문 상무는 지난해 열렸던 하이트진로 그랜드 테이스팅에서 “신상 와인은 지역다양성을 고려해 다양한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을 포함했다”며 “동시에 높은 품질과 가성비에 중점을 두고 수입을 검토했다”고 말했다.

현재 하이트진로는 11개국에서 600여개 브랜드를 국내에 수입·유통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당분간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은 신선한 브랜드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전망이다. 이를 통해 2026년 국내 5대 와인 수입사 반열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우리나라 와인 수입사 시장은 유일하게 2000억원대 매출을 기록 중인 신세계엘앤비를 필두로 금양인터내셔날과 아영FBC, 나라셀라(405920)가 1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뒤를 따르고 있다.

한국소믈리에협회 관계자는 “와인업계 다른 중견 수입사들은 경기 침체나 와인 시장 위축 같은 이유를 들어 새 브랜드를 들여오는 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사실상 올해 국내 시장에 들어온 주요 와인 브랜드들은 런칭을 하이트진로가 이끄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