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침대(003800) 창립자인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이 별세했다.
에이스침대는 27일 안 회장이 전날(26일) 오후 11시쯤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4세.
안 회장은 1930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1951년 1·4후퇴 당시 부모와 떨어져 월남했으며, 부산에 있는 미군 부대에서 잡역부 생활을 하던 중 침대를 처음 접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방송국에 기자재를 납품하면서 가구점에 자주 드나들었음에도 침대가 없는 것을 보고 '시장을 개척해보자'고 결심해 1963년 서울 금호동에 '에이스침대 공업사'를 설립했다.
이후 손수 나무를 깎고 강선을 감아가면서 1년여 만에 스프링을 찍어낼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해 '한국 1호 매트리스 스프링 제조기기'를 만들었다. 또 침대 프레임에 사용하기 위해 도막이 강하고 값이 저렴한 '아미노알키드'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75년 12월 금호동 공장이 전기 누전으로 인한 불로 전소되면서 1976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으로 공장을 이전해 1977년 에이스침대 공업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해 지금의 에이스침대를 만들었다.
이후 표준화와 품질관리를 위해 '품질관리실'을 만들고, 1977년 침대 품질 검사 시설을 갖췄다. 1978년에는 경기 성남으로 공장을 이전한 뒤 품질관리 1등급 업체 지정과 KS마크 인증을 받았고, 1991년에는 JIS 마크를 획득했다.
안 회장은 1992년 침대 기술의 독립화와 한국화를 목표로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나섰고, 2006년에는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침대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국제 공인 시험 기관으로 인정받았다.
에이스침대를 대표하는 캐치프레이즈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도 이 시기 만들어졌다.
에이스침대는 '지금의 에이스침대를 만든 건 최초와 최고를 향한 굳은 신념과 도전정신이었다. 침대는 과학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았던 것은 내 손으로 직접 강선을 꼬아가며 개발한 침대가 곧 우리나라 침대 산업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라는 생전 안 회장의 말을 인용해 "안 회장의 자부심과 진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김영금씨와 아들 성호(에이스침대 대표), 정호(시몬스침대 대표), 딸 명숙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