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9일부터 시작된 내년도 원유(原乳·우유의 원재료) 가격 협상으로 흰우유 가격 인상이 예고되면서 '밀크플레이션(우유 가격 상승에 따른 가공식품 연쇄 상승)' 우려에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밀 가격이 내렸으니 라면 가격도 내려야한다"는 발언에 이은 직접적인 물가 인상 제동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식품 원료에 우유의 비중이 적고, 수입산 비중이 높아 원유 가격 인상이 가공식품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크지 않다"며 식품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식품업계는 "국산 원유를 사용하는 제품이 적지 않아 원유 가격 인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입장이다.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하나로마트를 찾은 시민이 우유를 고르는 모습. /뉴스1

농식품부는 지난 20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우유 등 농식품 물가 관리 방안'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골자는 "우유와 유제품은 식품 원료로 사용되긴 하지만, 치즈와 분유 등에는 대부분 수입산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농식품부는 간담회 이후에도 밀크플레이션 우려가 진정되지 않자 설명자료를 21일 추가로 배포했다. 농식품부는 "원유가격이 인상되더라도, 흰우유 등 유제품 가격이 과도하게 오르지 않도록 간담회 등을 통해 유업계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우유, 식품 원료 비중 낮아... 그나마도 수입산 많이 써"

낙농가를 주축으로 하는 낙농진흥회는 내년도 원유 가격을 놓고 유업체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음용유(마시는 우유) 기준으로 올해보다 1L당 69~104원 오르는 1065∼1100원 범위에서 오는 8월 1일부터 적용될 가격이 정해진다.

상승폭 범위는 지난해 우유 생산비가 1L당 958.71원으로 전년 대비 13.7%(115.76원) 오른 데 따라 정해졌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구분하고 시장 상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원유 가격 결정 제도를 개편해 그나마 과거 대비 인상폭을 최대 58원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내년도 원유 가격이 최저선인 1065원으로 정해져도 전년 대비 69원 상승이다. 1L당 원유값은 ▲2018년 4원 ▲2021년 21원 ▲지난해 49원으로 상승폭이 점점 커지고 있다.

원유 가격 인상에 따른 흰우유 가격 인상이 사실상 예정돼 있지만, 정부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근거는 우유가 식품 원료에 사용되는 비중이 낮고, 식품사에서는 국산 우유 대신 가격이 싼 수입산 우유를 사용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주요 제품별 우유 사용 비중까지 취합해 공개했다. 유가공품(우유·버터·치즈·발효유 등)에서 95%, 아이스크림류는 59%로 높지만, 빵류와 과자류에서는 각각 5%, 1%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우유 가격이 1L당 180원 올랐을 때, 주요 커피전문점의 라떼 1잔당 가격 인상 영향은 53원 정도에 불과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 지난해 국산 원유 자급률이 45.7%로 최근 10년 내 가장 낮았던 점도 원유 가격 인상이 '밀크플레이션'으로 번질 가능성이 낮은 근거로 제시됐다.

김정욱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식품업계에서도 관련 제품의) 가격을 많이 올리면 소비가 줄어드는 등의 상황을 감안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농식품부가 21일 추가로 배포한 설명자료에 담긴 우유 사용 비중./농식품부

◇식품사 "국내산 원유 많이 쓴다...가격 인상, 영향 적지 않아"

식품업계는 추 부총리의 '라면 가격 저격'에 이어 밀크플레이션 제동까지 정부의 물가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국산 원유를 쓰는 제품이 생각보다 많은데,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선제적으로 발표를 해 부담이 크다는 불만이다.

유업체 한 관계자는 "제품에 국산 원유를 사용하는 비중이 크다"며 "정부의 발표는 우리 회사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발효유 등에 탈지분유를 쓰긴 하지만, 원유 가격 인상의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빵회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품사는 "원유 사용량이 정부 말대로 적어서 직접적인 원가 압박은 없으나, 케이크류에 우유가 많이 들어간다"며 "특히 생크림의 경우 100% 국내산을 사용하고 있어, 납품 단가가 인상되면 가격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스크림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아이스크림 제조사 관계자는 "아이스크림에는 수입산 탈지분유가 사용되는데, 원유랑 혼합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며 "유제품에 비해서는 원유 가격 인상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이 적을 순 있겠지만,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원유 가격이 1L당 49원 인상되자 서울우유는 우유 가격을 평균 6% 올렸고, 대형마트 기준 2710원이었던 1000㎖ 우유 가격은 2800원 후반대로 형성됐다. 당시 매일유업(267980)은 흰 우유 900㎖ 제품 가격을 2610원에서 2860원으로 9.57%, 남양유업(003920)도 2650원에서 2880원으로 8.67% 올랐다.

커피빈코리아는 올해 1월 우유가 포함된 음료의 가격을 200원씩, 빙그레(005180)는 메로나와 비비빅 등 아이스크림 가격을 1000원에서 1200원으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