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베이샌즈(MBS)의 입점 요청도 있었죠. 다만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일년 내내 더운 날씨로 쇼핑몰이 발달한 싱가포르에서 현지 쇼핑몰 운영사가 최근 먼저 손을 내미는 빵집이 있다. 바로 SPC그룹의 베이커리 전문점 파리바게뜨다. 올해만 두 곳의 쇼핑몰이 입점을 제안, 입구 목 좋은 자리에 입점을 확정했다.
작년 6월 싱가포르 중심지에 있는 대형 쇼핑몰 래플스시티몰이 자사 쇼핑센터 1층, 그 중에서도 입구와 맞닿은 핵심 매장의 간판을 파리바게뜨로 바꿔 달았다. 이는 싱가포르 식품·외식업계를 흔든 사건이 됐다. 이전까지 이 곳엔 세계 1위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었다. 파리바게뜨가 스타벅스를 제치고 이 곳을 따낸 것이다.
지난 9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하나 리(Hana Lee) 동남아 지역 총괄 CEO(최고경영자)는 “현지 시장에 맞춰 거의 모든 것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파리바게뜨 싱가포르 법인에 합류했다.
싱가포르인인 리 CEO는 맥도날드 싱가포르 법인의 브랜드·마케팅 매니저를 시작으로 현지 식품 기업 커먼웰스 캐피탈 등에서 20년 넘게 일한 식품산업 전문가로 통한다. 2012년 싱가포르 진출 이후 실적 악화를 겪었던 SPC그룹이 현지화를 목표로 리 CEO를 발탁했다.
특히 2014년부터 SPC그룹 파리크라상 글로벌 부문을 맡아 파리바게뜨 글로벌 진출을 주도한 허진수 파리크라상 사장이 2019년 직접 싱가포르를 찾아 리 CEO를 뽑았다. 리 CEO는 “허 사장과 매달 한번 이상은 사업 현황 회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리 CEO는 파리바게뜨의 사업 구조부터 바꿨다. 포장 중심이었던 파리바게뜨의 사업 구조를 매장 내 취식으로 변경했다. 특히 쇼핑몰에 작은 규모로 입점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매장 규모를 키우고, 아이온몰이나 래플스시티몰에는 플래그십(대형) 매장을 냈다.
리 CEO는 “싱가포르는 쇼핑몰에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발달했는데, 파리바게뜨는 빵을 포장해 가는 한국 방식이 그대로 적용됐다”면서 “매장 내 좌석 비치를 늘리고 새로 문을 여는 매장은 일단 대형화·고급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운영 방식도 완전히 바꿨다. 취급 품목을 줄여 매장 운영을 개선하는 대신 샌드위치, 케이크 등 파리바게뜨를 찾은 고객을 오래 붙들어 놓을 수 있는 전략을 수립했다. 또 직원 교육을 진행 커피 등 음료와 베이커리 직군의 구분 없이 일할 수 있는 구조를 짰다.
리 CEO는 “매번 새로운 매장의 문을 열 때마다 해당 매장의 운영 데이터를 모아 부족한 점을 개선했다”면서 “가령 케이크의 매장 입구 배치는 파리바게뜨의 케이크 제품의 인기가 높고, 이 경우 매장 매출이 는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운영되는 파리바게뜨 매장 수는 14개(작년말 기준)다. 2019년 10개(공항점 제외)와 비교해 4곳이 늘어난 수준이지만, 이 기간 싱가포르의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203개에서 189개로 줄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고객 발길이 크게 줄어들면서다.
리 CEO는 “코로나19 기간을 오히려 기회로 봤다”면서 “매장 제품을 모두 개별 포장으로 변경해 배달에도 빠르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래플즈시티몰, 베독몰, 티옹바루몰의 입구 매장을 선점한 파리바게뜨의 하루 방문 고객은 2021년 대비 53% 늘었다.
재무 구조도 개선됐다. 2019년 93억원을 넘어섰던 당기순손실은 2020년 78억원으로 2021년 37억원으로 꾸준히 감소, 작년 6억원대로 떨어졌다. 특히 2019년 213억원 수준이었던 매출은 2021년 400억원대를 거쳐 지난해 약 670억원으로 200% 넘게 증가했다.
싱가포르의 성장을 이끈 리 CEO는 현재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동남아 지역 전체의 매장 확대 및 사업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에 현지 기업과 설립한 합작법인에 이사로 참여하고, 지난해에는 베트남 지역 통합 법인장에도 올랐다.
리 CEO는 “베트남은 파리바게뜨가 동남아 진출 첫 번째 지역으로 정했던 곳이지만, 호치민과 하노이 두 곳에 법인을 둬 운영 효율이 떨어졌다”면서 “또 최근엔 마스터프랜차이즈(MF) 확장 전략을 정했는데, MF 접근이 현지 시장 대응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 CEO는 올해 말레이시아로의 확장도 추진한다. 지난 1월 말레이시아에 첫 번째 매장을 낸 데 더해 공장 건설에도 나섰다. 한국에서 휴면 반죽을 들여와 현지에서 제조 판매하는 방식이 제품 품질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비용면에서 부담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싱가포르에 인접한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 연면적 1만 2900㎡ 규모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리 CEO는 “파리바게뜨 최초의 할랄 휴면 반죽 제조 시설”이라면서 “품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용은 낮추는 동남아 지역 핵심 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바게뜨는 동남아를 넘어 중동, 서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진출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하나 리 CEO의 공식 직책은 동남아 지역 총괄이지만, 두바이, 인도 등도 담당하고 있다. 그는 “2030년까지 600개 매장을 내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