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남양유업(003920)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 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일부 승리를 거뒀다. 대주주의 압도적인 지분을 무력화할 수 있는 '3% 룰' 덕분에, 소액 주주들의 지지를 얻은 차파트너스가 추천한 감사가 남양유업 이사회에 입성하게 됐다.
올해 주총 시즌에 행동주의 펀드가 KT&G(033780), BYC(001460) 등의 기업들에 주주 제안을 했지만, 대부분이 부결된 것과 대조적이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일가로 인한 오너 리스크, 경영권 분쟁 등으로 인한 기업 가치 훼손과 그로 인한 주주들의 누적된 불만이 행동주의 펀드의 표 대결 승리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가 추천한 감사, 압도적 표 차이로 선임
이날 남양유업은 서울 강남구 1964빌딩에서 제59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차파트너스에서 내세운 심혜섭 법률사무소 대표를 새로운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심 감사위원 선임에 대해 주주들은 찬성에 12만표, 반대에 4만표를 던져 찬성 표가 반대 표의 3배에 달했다.
남양유업 현 경영진에서 내세운 심호근 남양유업 상근 감사 재선임 안건은 부결됐다. 하지만 그 외에는 대주주 홍원식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에서 제시한 안건들이 통과됐고,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은 부결됐다. 심 대표가 감사에 선임된 것은 유일하게 홍 회장의 뜻대로 되지 않은 안건이다.
차파트너스는 남양유업에 ▲보통주 1주당 2만원, 우선주 1주당 2만50원 배당 ▲액면가 5000원에서 1000원으로 액면분할 ▲일반 주주 지분의 50% 주당 82만원에 공개 매수(자기 주식 취득안) ▲지배 구조 전문가 심혜섭 심혜섭법률사무소 대표를 감사로 선임 등의 4가지 주주 제안을 했다.
주총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김형균 차파트너스 스페셜시츄에이션본부장(상무)은 "감사 선임 안건 외에 다른 안건은 홍 회장 반대로 부결됐는데,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결과"라며 "감사로 선임된 심 대표는 감사의 법적 권한 내에서 기업 가치에 문제를 발생시키는 거버넌스 부분을 들여다보고 회사의 상태를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 대표도 이날 주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남양유업의 기본적인 문제는 홍 회장과 일체화돼 사람들에게 브랜드 가치가 하락한 것"이라며 "홍 회장의 구설수, 사생활과 무관하게 남양유업은 모든 주주들의 회사이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홍원식 지분 무력화한 '3% 룰'...주주 공감대 형성
차파트너스가 추천한 감사가 남양유업 이사회에 입성하게 된 것은 '3% 룰' 덕분이다. 감사 선임 안건에는 '3% 룰'이 적용된다. 상법은 자산이 2조원 이상인 회사가 주총에서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하는데, 이를 통상 3% 룰이라고 한다.
3%룰은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해 소액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다. 2020년 12월 상법이 개정돼 감사위원은 선임 초기부터 3%룰을 적용해 꼭 외부 인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감사위원 분리선임제'가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현재 남양유업은 홍원식 회장이 보유한 지분 51.68%를 포함해 오너 일가 지분율이 53.08%에 이른다. 차파트너스의 지분율은 3.07%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차파트너스에서 제출한 다른 주주 제안들이 주총에서는 대주주의 반대로 부결됐지만, 감사 선임에 있어서는 홍 회장의 지분이 힘을 쓰지 못했다.
이번 남양유업 주총 감사 선임에서는 3% 룰이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한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 입장에서는 소액 주주들의 공감대를 얻으면 감사 선임 안건은 다른 주주 제안보다 관철하기 쉽다. 이미 주주들이 홍 회장 일가로 인한 오너 리스크로 지쳐있는 상황에서, 차파트너스의 주주 제안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갑질 논란, 2021년 불가리스 사태, 창업주 3세들의 마약 투약과 최근 한앤컴퍼니와의 경영권 분쟁 등의 사건으로 인해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세다. 실적도 부진하다. 영업손실은 868억원을 내, 적자폭을 11.5% 늘렸고 당기순손실은 781억원을 냈다.
행동주의 펀드가 일부 승리했지만, 주주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이날 주총이 끝나기 전 자리를 벗어나던 한 50대 주주는 "감사 선임을 제외하고는 전부 홍 회장 의도대로 결론이 났다"며 "불가리스 사태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주주들 발목 잡고 자신들(경영진)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경영권 분쟁이 있는 상황에서 홍 회장의 아들인 홍진석씨가 사내이사로 선임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