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소비자들은 흔히 칠레산(産) 와인을 '가격 대비 만족도가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 와인에 조금 못 미치지만, 대신 저렴한 가격에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와인이라는 뜻이다. 칠레에서 와인 업계가 처음 태동한 것이 19세기 후반이었는데, 130년이 지나도록 이런 인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들여온 와인을 국가별로 나눠보면 칠레산이 가장 많았다. 칠레산 와인 시장 점유율은 21%로 프랑스(19%), 이탈리아(18%)에 앞선 1위다.

재밌는 것은 금액으로 보면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에 이은 4위로 순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전체 와인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 정도다.

시장 점유율은 20%가 넘는데, 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그친다는 의미는 그만큼 칠레 와인은 저렴한 와인 위주로 국내에서 팔리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칠레산 와인이라고 마냥 가격 대비 만족도를 강조한 와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명한 와인 평론가들은 종종 산지와 생산자 등 와인에 대한 정보를 가리고 순수하게 와인의 맛과 향, 질감으로만 평가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이라는 시음회를 연다. 칠레 와인은 2010년 중반 이후 이런 유명 평론가들 심사에서 연이어 만점을 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와인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에게 2010년대 후반부터 만점 행진을 이어가는 칠레 와이너리가 '콘차이 토로(Concha y Toro)'다.

콘차이 토로(Concha y Toro)는 칠레 황금기에 살았던 정치가 돈 멜초 데 콘차이 토로(Don Melchor de Concha y Toro)와 사학가 마르께스 드 까사 콘차(Marques de Casa Concha)가 칠레 중북부에 포도밭을 일구며 시작한 와인 명가(名家)다. 두 설립자 이름을 딴 돈 멜초와 마르께스 드 까사 콘차를 포함한 칠레 최고급 와인을 생산한다.

지난 6일 우리나라를 찾은 마르셀로 파파 콘차이 토로 수석와인메이커를 만나 칠레산 와인이 최근 연이어 좋은 평가를 받은 비결을 물었다. 파파는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채 "칠레 '푸엔테 알토' 지역은 프랑스 보르도나 이탈리아 볼게리, 미국 나파 같은 최고급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래픽=편집부

"결국 와인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땅과 기후입니다. 칠레는 온난한 데다 일조량이 많고 비가 적게 내립니다. 그 덕분에 짙은 향과 강한 농축미를 가진 포도를 재배할 수 있어요. 포도 관리와 생산량 차원에서 놓고 보면, 프랑스 보르도 지역 같은 유럽 본고장 와이너리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게 없다는 겁니다. .

저는 1999년에 콘차이 토로에 합류했는데, 저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이 밭뙤기 별로 수령이 다른 포도나무에서 나온 열매를 섞어가면서 칠레 와인의 장·단점을 과학적으로 연구했어요. 25년이 넘는 연구 기간 동안 품종이나 구획에 따른 밀집도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고 그 덕분에 저희도 좋은 평가를 받는 고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겁니다."

1병 당 100달러(약 12만원)를 넘는 고급 와인 시장은 와인 본고장 유럽은 물론, 투자 목적으로 와인을 사들이는 전 세계 수집가(collector)들을 상대로 한 경쟁이 아주 치열한 분야다. 파파가 집중하는 푸엔테 알토 지역에서 나오는 와인들 역시 평균 판매가가 우리나라 기준으로 병당 11만원에서 최고 40만원을 웃돈다. 이 때문에 장래에 가치가 더 오를만한 와인만 포함하는 '투자 등급'에 속하기도 한다.

와인 전문 투자사 컬트 와인즈의 올리버 스타우브 최고 투자 책임자는 "칠레는 지속적으로 높은 품질의 와인을 선보이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도 매력적인 지역"이라며 "특히 푸엔테 알토 지역에서 탄생한 수상 경력의 와인들은 투자자에게 높은 투자 수익과 함께 더욱 향상된 품질을 제공하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와인 평론가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는 일이 와인을 만드는 와인 메이커에게 결코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첫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쳐도, 이후 한 번이라도 점수가 깎이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적인 평가 점수가 90점대 중반을 웃도는 고급 와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1점에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잦다.

파파는 "꾸준히 좋은 평가가 쌓이면서 이제 평론가들이 칠레 와인에 가졌던 편견이 사라졌고, 푸엔테 알토 지역은 기후가 일정하기 때문에 어느 해에 갑자기 점수가 떨어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며 "다만 일반 소비자들이 가진 편견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들 소비자가 생각을 바꾸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콘차이 토로는 병당 30만원을 웃도는 칠레 고급 와인에 지갑을 열기 꺼리는 소비자를 위해 지난해 11월 '마르께스 데 까사 콘차 헤리티지(Marques de Casa Concha Heritage)'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래픽=편집부

파파가 직접 만든 이 와인은 10만원 수준으로, 같은 지역에서 나온 돈 멜초나 알마비바 같은 와인에 비하면 가격이 약 3분의 1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수령이 낮은 포도나무에서 자란 열매를 사용하고, 주요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포도를 사용해 가격을 낮췄다.

파파는 "새 참나무통 사용 비중을 줄여서 포도 과실이 가진 신선함을 강조했기 때문에 입안을 조이는 타닌감이 적다"며 "좋은 와인들이 구조감과 복잡한 향을 충분히 갖추려면 산 다음에 몇 년간 셀러에서 숙성을 해야 하지만, 이 와인은 사자 마자 바로 따서 마셔도 같은 특징을 느낄 수 있게끔 만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