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은 거들 뿐."

불세출의 청춘 드라마, 스포츠 만화의 정석 '슬램덩크'가 돌아왔다.

새해 극장가와 서점가는 돌아온 농구 만화 '슬램덩크' 차지였다. 슬램덩크는 인터넷서점 예스24 새해 첫날 순위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올랐다. 20여년 전 만화를 즐겼던 30~40대가 당대의 추억을 소환한 덕분이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은 아예 '슬램덩크 도서전'을 열고, 독자 1600여명을 대상으로 '만화 속 최고의 대사' 인기 투표까지 진행했다. 앞에서 말한 '왼손은 거들 뿐'이 1위를 차지했다. 숙적 산왕공고와 경기에서 이 만화 주인공 강백호가 앙숙이자 파트너인 서태웅을 보며 읊조린 명대사다.

20여년 전 인기 만화였던 슬램덩크는 최근 '더 퍼스트 슬램덩크'라는 이름으로 26년 만에 부활했다. 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일본 만화로는 이례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관객 동원 수 100만명을 진작 넘어섰다. 소비력이 높은 3040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덕분이다.

주류업계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때를 놓칠 세라 3040 소비자들이 슬램덩크에 가진 추억을 노리고 연계한 마케팅을 강화했다. 일본 술부터 와인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슬램덩크 관련 주류'로 첫 손가락에 꼽을 만한 술은 미이노고토부키(三井の寿) 준마이 긴조라는 일본 술이다.

이 술은 만화 속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인 정대만이 캐릭터 모태가 됐다. 정대만이라는 캐릭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주연급 등장 인물이다. 먼 거리에서 정확한 3점슛을 꽂아 넣는 수려한 외모를 가진 농구선수로 여성 팬이 두터웠다.

탕아로 전락했던 정대만이 코트에 복귀하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한 "농구가 하고 싶어요"라는 대사는 '왼손은 거들 뿐'에 이어 한국인이 뽑은 슬램덩크 최고의 대사 2위로 꼽혔다.

이 일본 술은 만화 인기에 편승해 나온 술이 아니다. 만화 이전에 술이 먼저 나왔다. 보통 주류는 만화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그 이후에 파생 상품으로 관심을 얻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이노고토부키는 원작자 이노우에 타케히코(井上雄彦)가 슬램덩크를 그리기 전부터 좋아했던 술이다. 우리나라에서 정대만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던 캐릭터는 일본 원작에서 미쓰이 히사시(三井 寿)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원래 이 술을 좋아하던 작가가 술 이름 미이노고토부키에서 일본어 조사 '노(の)'를 빼고 붙인 이름이다.

주요 등장인물에 술에서 딴 이름을 붙일 정도로 원작자가 사랑했던 술이다. 정대만이라는 선수는 만화에서도, 새로 개봉한 영화에서도 등 번호가 14번이다. 14번이라는 숫자도 미이노고토부키 알코올 도수가 14도인 점에서 유래했다. 실제 술을 출시한 5월 22일은 극 중 정대만 생일이다.

그래픽=손민균

슬램덩크라는 이름을 차용한 술은 더러 있지만, 원작자가 공식적으로 슬램덩크에 대한 저작권을 허락한 술은 이 미이노고토부키가 유일하다. 이 술은 원작자 허가를 받아 병 겉면에 슬램덩크 주인공들이 뛰는 팀 '북산' 일본명 쇼호쿠(湘北) 유니폼을 새겼다.

후쿠오카현 주조조합에 따르면 이 술은 매년 봄 일본 전역 술을 모아 펼치는 '전국신주감평회'에 20회 출품해 금상을 12번 받았다.

술 맛은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면서 농구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3점슛을 닮았다. 쌀과 누룩, 물로만 만들어 잡다한 향 없이 깨끗한 맛과 향만 살렸다.

쌀 품종도 양조 전용 '야마다니시키(山田錦)'를 썼다. 이 쌀은 쌀알이 크고 단백질과 지방분 함유량이 적다. 쌀알 그 자체가 가진 본연의 순한 향과 감칠 맛이 특징이라, 밥을 지어먹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술을 빚기에 최적이다.

'영광의 시대'를 공유하고 싶다면 미국 로얄 프린스 와인이 만든 '슬램덩크'와 함께 하는 것도 좋다.

이 와인은 앞선 미이노고토부키처럼 공식적으로 원작자에 인정을 받은 술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높은 농구 골대에 슬램덩크를 하는 강렬한 꿈을 꾼다는 점에 영감을 받아 그 느낌을 살린 와인을 만들었다. 영어로 '슬램덩크 모먼트(slam dunk moment)'라는 단어는 인생 최고의 순간을 뜻한다.

금방이라도 통통 튈 듯한 농구공이 일곱개가 나란히 자리잡은 주황색 겉면을 보면 자연스럽게 만화 슬램덩크가 떠오른다.

이 와인을 만든 슬램덩크 와인즈의 대표 데이비드 그린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20년 동안 와인을 마케팅하고 판매한 사업가다. 미국 내 권장 소비자가 기준 와인 가격도 세금을 제외하고 14.99달러(약 1만85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그렇다고 품질까지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지는 않는다. 이 술을 만든 와인 메이커 마얀 코시츠키(Maayan Koschitzky)는 유명 와인 매체 와인엔수지애스트가 꼽은 '차세대 기대주'와 '와인 산업을 이끄는 40세 미만 젊은 리더'에 꼽힌 실력파다.

이전에 1병당 국내가 기준 500만원을 웃도는 미국 최고가 컬트와인 '스크리밍 이글'을 만들기도 했다. 컬트 와인이란 놀랄 만한 맛과 구하기 힘들 만큼 적은 생산량으로 열광적인 추종자를 거느린 와인을 뜻한다.

이 와인은 프티 시라와 진판델이라는 두 품종을 6 대 4 비율로 섞어 만들었다. 프티 시라와 진판델 모두 기원은 유럽이다. 하지만 현재 재배 면적은 미국이 가장 넓다. 미국만큼 프티 시라와 진판델을 잘 만들고, 이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나라가 없다. 마치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에 정착해 성공한 이민자와 같은 두 품종이다.

그런 미국에서도 이 두 품종을 거의 반 씩 섞어 만드는 와인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각 품종이 가진 개성이 너무 뚜렷해, 비율을 비슷하게 섞으면 슬램덩크 속 주인공 강백호와 서태웅이 그랬듯 입 안에서 여러 향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와인 메이커 코시츠키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상대적으로 기후가 서늘한 북쪽 해안(노스 코스트)에서 자란 과즙 많은 포도를 선별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 두 품종 사이 조화를 이뤘다. 보다 서늘한 기후에서는 포도 알맹이가 익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단 맛보다 신 맛(acidity)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 신 맛은 균형감을 이루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젭 더넉은 "세 배 가격을 내고서라도 사마실 만한 와인"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우리나라에 이 와인을 수입하는 롯데칠성음료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파는 슬램덩크 와인 양을 점차 늘려나갈 예정이다. 가격은 750밀리리터(mL) 한병에 3만원 수준이다.

브랜드 포지셔닝 전문가 김소형 데이비스앤컴퍼니 컨설턴트는 "주류 주요 소비자층으로 부상한 3040에게 '슬램덩크'는 단순히 스포츠 영웅담이 주가 되는 만화를 넘어 인생 전반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라며 "이들은 이번 영화 같은 새 스토리 라인이 나오면 그에 맞는 상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면서 적극적으로 새 서사에 참가하려는 능동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