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수입 주류 가격 인상 도미노가 올 초에도 이어지면서 국내 주류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위스키부터 맥주, 보드카, 진, 데킬라, 와인에 이르기까지 오른 품목도 다양하다. 일부 품목은 가격이 한 번에 40%나 뛰었다. 배후에는 '마실 사람은 어차피 값이 올라도 마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11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디아지오에서 독립한 윈저글로벌은 올해 3일부터 주력상품 '윈저'와 W시리즈 일부 제품 출고가를 16%까지 올렸다. 가장 비싼 윈저 21년산(500mL)은 7만7780원에서 9만200원으로 15.9%가 올랐고,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하는 윈저 12년산(500mL)도 2만4288원에서 2만6620원(9.6%)으로 인상했다.
윈저글로벌은 가격 인상을 알리는 공문에서 "지난 수개월 동안 지속된 주요 원부자재 및 인건비 급등과 국제 물류비용 상승을 더는 감당하기 힘들다"며 "19년 이상 고연산 숙성 제품의 글로벌 수급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어 불가피하게 공급가를 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디아지오코리아 역시 지난달 1일부터 위스키와 맥주 등 53개 제품 출고가를 일제히 인상했다. 디아지오 간판 상품 조니워커 블루라벨(750mL)은 출고가 기준 25만5398원에서 28만9040원으로 약 15% 올랐다. 상대적으로 숙성 기간이 짧은 레드와 블랙(500~750mL) 가격 역시 10~15% 상승했다.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싱글몰트 위스키 라가불린은 8년산과 16년산이 최대 20% 뛰었다. 이외에도 세계 판매량 1위 리큐르 베일리스(17%)와 보드카 스미노프 그린애플·레드(25%), 데킬라 돈홀리오 블랑코·아네오(25~40%) 등 내로라하는 수입 주류값이 무더기로 비싸졌다. 디아지오는 8개월 전인 지난해 4월에도 이미 조니워커를 포함한 위스키 가격을 5~10% 정도 인상했다.
주류 가격 인상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전례 없는 유동성(자금) 공급 정책으로 주류 시장에도 인플레이션 여파가 몰아친 탓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물류비가 급증한 것도 한몫했다. 수입 주류를 들여오는 글로벌 주류 기업들은 이구동성으로 '원액 가격이나 공장 가동 비용, 인건비, 물류비가 많이 올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FTA(자유무역협정)와 원화 가치 상승 같은 가격 인하 요인이 있을 때는 가격을 낮추지 않았으면서, 가격 인상 요인이 생겼다고 바로 값을 올리는 것은 비상식적인 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가령 위스키는 브렉시트 직전 체결한 한·영 FTA로 관세율이 30%에서 현재 0%로 줄었다.
지난해 10월 1달러당 최고 1442원까지 뛰었던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도 올해 들어 1240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4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해당 주류를 판매하는 글로벌 주류 기업들은 인건비와 물류비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와중에도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
영국런던증권거래소 공시 자료에 따르면 디아지오는 2022년 6월 기준 수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늘었다. 순익률은 17%를 차지했다. 1만원어치를 팔면 1700원이 남는다는 뜻이다. 제조업체 평균 순익률이 대개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디아지오는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은 지난 1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올렸다. 범위를 지난 5년만 놓고 보면 배당 수익률은 2.59%로, 올해 삼성전자(005930) 배당 수익률과 맞아떨어진다.
페르노리카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기간 페르노리카는 순익이 3억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보다 78% 넘게 뛴 수치다. 페르노리카 순익률 역시 12%를 웃돈다. 페르노리카의 국내 법인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지난해 6월 기준 당기순이익 294억원을 전부 본사에 현금 배당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수입 주류사들은 10년 전에도 가격 인상 계획을 졸속으로 발표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적을 하자 스스로 인상 계획을 철회한 전례가 있다"며 "한국 시장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일 년 사이 두 차례 이상, 그것도 10%가 넘게 올리는 것은 배짱 영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