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매화, 복숭아꽃, 국화꽃, 연꽃, 장미, 찔레, 귤꽃, 아카시아, 동백꽃, 라일락, 진달래, 라벤더꽃, 칡꽃, 히비스커스, 금잔화, 차꽃, 수레국화, 목련, 살구꽃.

겨울 동백꽃부터 가을 국화까지 모두 20가지의 꽃을 넣은 술을 아는가? 그 술 이름은 ‘화전일취 백화 18′다. 화전일취는 ‘꽃 앞에서 우리 모두 취하세’라는 의미다. ‘꽃 향기 풍성한 술에 취하자’는 뜻이 아닐까도 싶다. 18은 알코올 도수를 말한다. 그런데, 이 술을 만든 양조장 대표의 정성이 예사롭지 않다. 스무가지나 되는 꽃을 직접 다 길렀고, 계절에 맞춰 꽃잎이 만개했을 때 손으로 하나하나 땄다. “꽃잎은 오전 10시반에서 오전 11시 사이, 늦어도 11시반 전에는 따야 한다. 이 시간에 꽃잎이 가장 활짝 피기 때문이다. 봄 한철 이렇게 꽃잎을 따다 보면 손등이 햇빛에 탄다.”(지시울양조장 유소영 대표)

강원도 춘천에 있는 지시울양조장의 신상 술인 ‘화전일취, 백화’ 빚기는 꽃잎 따는 것부터 시작된다. ‘화전일취, 백화’는 이 양조장이 지난 7월 서울 강남의 코엑스에서 열린 주류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인 술이다. 쌀을 원료로, 소줏고리에 내린 전통소주를, 발효 중인 약주에 첨가한 과하주다. 소주를 탈 때 20종의 말린 꽃잎도 함께 넣는다. 과하주는 ‘여름에 빚어 마시는 술’ 혹은 ‘여름이 지나도록 맛이 변하지 않는 술’이란 뜻으로, 무더운 여름철에, 술이 상하지 않도록 약주(쌀 발효주)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를 섞은 술을 말한다.

지시울양조장 유소영 대표가 양조장 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쌀, 누룩, 물 외에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은 프리미엄 전통주다. /박순욱 기자

도수 낮은 술에 도수 높은 술을 섞어 술 변질을 막는 술 제조법은 ‘세계 공통’이다.

스페인의 셰리와인, 포르투칼의 포트와인같은 주정강화 와인도 과하주와 제법이 일치하는데, 제조 시기는 우리가 다소 앞선다. 셰리와인, 포트와인 역시 발효가 끝난 일반 와인에 도수 높은 브랜디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이다. 당시 국가간 무역 수송수단인 배에 장기간 실어도 술이 상하지 않은 것은 높은 알코올 도수 덕분이다. 맥주, 와인처럼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은 장기간 상온에 방치하면 상할 우려가 높다. 맥주의 경우는 알코올 도수도 높였지만, 쓴맛을 내는 홉을 많이 넣어 술 손상을 막았다. 인디언 페일 에일(IPA) 맥주의 탄생 배경이다.

지시울양조장의 ‘화전일취, 백화’는 제조법(발효 중인 약주에 소주를 넣어, 약주보다 달고, 도수가 높은 술)으로는 과하주이지만, 재료로 보면 ‘백화주’다. 조선시대 처음 만들어진 술, 백화주란 ‘100가지 꽃을 넣은 술’이란 뜻으로 꼭 100가지 꽃이 아니더라도, 많은 꽃을 넣은 술을 백화주라 했다.

지시울양조장의 ‘화전일취, 백화’에는 20종의 말린 꽃을 넣었다. 요즘도 술 교육기관에서 옛 문헌을 토대로 백화주를 빚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지시울양조장처럼 상업양조장에서 백화주를 출시한 경우는 거의 없다. 술에 꽃잎을 넣더라도, 꽃향기를 제대로 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술에 꽃을 넣은 술은 전세계를 통털어서 봐도 흔치 않은 술이다.

그런데 백화주의 시장 반응은? 한마디로 대박이 났다. 지난 7월 주류박람회에 첫선을 보인 ‘화전일취, 백화’는 진작부터 ‘없어서 못 파는 술’로 등극해, 전통주점에서 서로 가져가겠다고 난리라고 한다. 그러나, 생산량이 많지 않아 맛을 본 행운아(?)들은 아직 많지 않다.

그래서 ‘화전일취, 백화’를 양조장까지 달려가, 맛을 봤다. 첫 느낌은 한마디로 ‘꽃밭’이었다. 백화주를 조금 입에 머금고 있으니. 한때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았던 만화책 ‘신의 물방울’이 떠올랐다. 와인 한모금 들이키면 세상이 갑자기 온갖 꽃이 피어있는 꽃밭으로 둔갑하는 순간을 그 만화책은 흔하게 묘사했다. 조금 과장이긴 하지만, 화전일취 백화주를 마신 순간이 딱 그랬다.

그런데, 20종이나 술에 넣었다는 꽃 중에서 딱히 도드라지게 향과 맛이 느껴지는 꽃은 없었다. 꽃향기를 잘 맡지 못하는 탓이겠지만, 특정 한두개 꽃을 지나치게 많이 넣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지시울양조장 유소영 대표는 “모란, 매화, 연꽃 비중이 다른 꽃보다는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모란, 매화 향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곡물 자체의 은은한 꽃향에 실제 꽃향들까지 더해져, 술 한모금 마시니, 마치 꽃 한웅큼을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았다. 입안 전체에 퍼져 있는 꽃향의 여운도 짧지 않았다.

‘화전일취, 백화’를 만드는 지시울양조장은 춘천에 있다. 양조장이 있는 옛지명(지시울)을 따서 양조장 이름을 지었다. 춘천에서 생산되는 멥쌀로 밑술을 만들고, 찹쌀로 덧술을 만들어 이양주로 술을 빚는다. 술 이름은 모두 ‘화전일취(꽃 앞에서 우리 모두 취하세)’다. 막걸리(화전일취 12도), 약주(화전일취 15도), 과하주(화전일취 백화 18도), 그리고 증류주(화전일취 38도, 52도 2종류)가 있다. 화전일취 술들은 모두 밑술과 덧술 재료인 멥쌀, 찹쌀, 누룩, 정제수 외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술 재료와 똑같다. 감미료 같은 첨가물은 일체 넣지 않았다.

지시울양조장 봄날의 야외 모습.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지시울양조장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양조장은 재료뿐 아니라, 술 빚는 방법 역시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던 그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는 사실이다. 옛 문헌에 나와있는 제법 그대로 백화주를 만들어 상품화했고,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소주고리 방식으로 술을 증류해 소주를 만든다.

‘소주고리’란 소주를 고아내는 증류기를 말하는 것으로, 발효주(술덧)를 솥에 넣고 끓여서 증발해 나오는 알코올 성분을 식혀서 흘러 내리게 하는 전통 증류기다. 허리가 잘록한 눈사람같이 생긴 그릇의 위와 중간, 아래가 다 뚫려 있으며 허리 위에 긴 코 같은 대롱이 달려 있어 이를 통해 증류원액이 흘러나온다. 제주에서는 이를 ‘고소리’라고 불러 고소리로 내린 술, 고소리술이 지금도 시판된다.

국내에 증류주를 출시하는 양조장은 즐비하지만, 흙으로 만든 소주고리로 증류하는 양조장은 극히 드물다. 대개는 동증류기 혹은 스테인레스 증류기를 사용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화요처럼 감압증류(증류탱크 안의 공기를 빼내 낮은 온도에서 술을 증류하는 방식으로 맛과 향이 깔끔, 담백하다)가 대세 아닌가. 감압증비는 거의 다 스테인레스 재질로 만든다.

그러나, 지시울 양조장은 조상들이 술을 내렸던 방식인 상압증류(일반 기압에서 술을 증류하는 방식으로, 깊고 다양한 향을 내는 반면, 탄내가 날 수도 있다)를 채택했을 뿐 아니라, 상압증류 설비도 현대식 동증류기, 스테인레스 증류기가 아닌 전통방식인 소주고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여느 양조장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왜 소주고리를 사용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소영 대표는 “소주고리를 쓰는 것은 동증류기 등을 사용한 것보다 술맛과 향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소주고리로 술을 내렸기 때문”이라며 “지시울양조장의 정체성은 철저히 전통방식 그대로 술을 빚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시울양조장은 유소영 대표 자택 지하에 차려져 있다. 차로 한시간을 달려온 기자를 먼저 반긴 것은 가정집의 포근함이었다. 정원이 넓어 갖가지 꽃나무들이 집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과하주 ‘화전일취 백화’에 들어가는 꽃잎들이, 저 나무들에서 나오는 듯 해서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양조장은 발효실이 2개로 분리돼 있었다. 온도를 25도 안팎으로 유지하는 주발효실과 온도를 16도로 낮춘 후발효실을 따로 두었다. 주발효실은 효모의 활동이 왕성하도록 온도(25도)를 높인 것이고, 후발효실은 알코올발효가 천천히 진행되도록 온도를 낮췄다. 온도가 낮으면 효모의 활동이 주춤해지고, 발효가 더디게 진행돼, 향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균들이 술에 잘 스며든다. 그래서 지시울양조장의 술 항아리들은 주발효실과 후발효실을 옮겨다니며 발효가 진행된다. 유소영 대표는 “효모증식이 활발해야 하는 발효 초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후발효실에서 발효가 진행하도록 하기 때문에 전체 발효 기간은 100일 정도 된다”고 말했다. 발효가 끝나면 다시 저온 숙성을 두달간 거친다. 그래서 화전일취 술들은 거의 6개월 걸려 완성된다. 시간이 익히는 술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양조장 대표가 술을 빚게 된 계기가 감동이다. 친정아버지 생신 때 직접 빚은 술을 맛보여 드리려고 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2014년부터 지금의 춘천 집에서 살았는데, 술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18년 봄이다. 춘천은 고향이다. 친정 집이 여기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친정 아버지는 평생 내 인생의 멘토같은 분이시다. 서른살 될 때까지도 항상 내 판단의 기준이 아버지였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긴 대화를 자주 했다. 아버지가 나를 강 건너 춘천 시내로 초등학교부터 유학보내셨는데, 주말에 집에 가면 늘 아버지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거의 7~8시간씩. 5학년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모든 주제를 놓고 얘기했다. 아버지는 단 한번도 ‘그러면 안돼’, ‘틀렸어’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늘 다 들어주시고 나서는 ‘너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내가 판단하기에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내게 주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둘째 아들이 대학에서 가면서였다. 둘째가 운동을 전공했는데, 6년 동안 춘천에서 서울로 운동과외를 시켰다. 그래서 체대에 입학시켰다. 둘째가 대학 입학하고 나니, 나도 한시름 놓았다. 여자는 결혼하면 대개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지 않나. 그런데 막내가 대학을 가니까 좀 여유가 생겼다. ‘좋은 엄마 역할’에서 졸업을 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는 게 잘 사는 것일까? 고민할 틈이 생겼다.

지시울양조장의 제품들. 앞쪽 2종은 소주, 뒤쪽은 왼쪽부터 화전일취 백화 18(과하주), 화전일취 15(약주), 화전일취 12(막걸리). /박순욱 기자

내가 오랫동안 자식을 위해 공을 들였던 것처럼, 반대로 아버지도 자식인 나를 위해 얼마나 애쓰셨을까? 그런 생각이 그제사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내가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잘 해드린 게 없었다. 아버지 생신이 동짓달이다. 그래서 아버지 생신 때 내가 만든 술을 대접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해 봄부터 술을 배웠다. 서울을 오가며 2018년 4월부터 시작했다. 아버지 친구분들을 생신 모임에 다 모시더라도 얼추 한동이 분량의 술을 빚으면 되겠다 싶었다. 그러면,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시겠다 싶었다.”

유 대표의 술 스승은 서울 효자동에 있는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다. 박 소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주 전문가다. 20여년간 국내 전통주 및 가양주에 대한 문헌 및 현장 조사와 발굴활동에 힘써, 수백 종에 달하는 전통주를 복원하는 공로를 세운 ‘전통주 대부’다. 풍정사계로 유명한 화양 이한상 대표를 비롯해, 박 소장에게서 술을 배워 전통주 양조장을 창업한 이들이 많다. 박 소장 제자들은 박 소장이 지은 ‘물에 가둔 불’이란 공동 브랜드를 자신들이 만든 술에 표기하고 있다. 박 소장은 몇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유 대표는 스승으로부터 누룩을 시작으로, 밥알이 동동 뜨는 동동주 만드는 것부터 배웠다. 박 소장이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거의 다 이수하는데, 거의 3년 걸렸다. 양조장 설립은 2020년 8월이었다. 이제 2년 조금 지난 신생양조장이다.

그런데, 궁금했다. 그가 아버지를 위해 빚은 술은 무엇이었을까?

“2018년 친정 아버지 생신 때 빚어서 내놓은 술은 석탄주(너무 맛있어 목 안으로 삼키기가 아쉽다는 술로, 밑술을 죽으로 하는 것이 특징)였다. 이양주로 빚은 약주다. 박록담 소장님은 ‘술의 기본은 약주’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 술을 정말 좋아하셨다. ‘술에 잡미가 전혀 없다’고 했다. 이전에 아버지가 드시던 술(가양주)은 술을 공개적으로 만들지 못하던 시기라, 서둘러 만들어야 했다. 정부가 가양주를 허용한 것은 1995년부터다. 당시 밀주로 만들던 술들은 누룩도 굉장히 많이 들어갔고, 엿기름을 고아 도수를 의도적으로 높였다. 신맛도 강했다고 한다. 그런 옛날 술들과 자식인 내가 이제 만든 술은 차원이 다르다고 칭찬하셨다.”

부모님께 술을 맛보여 드리려고 술을 배웠을 뿐, 상업양조는 생각지 않았던 유소영 대표에게 양조장을 차릴 것을 권한 건, 스승인 박록담 소장이다. ‘화전일취’라는 술 이름을 지어준 이도 박 소장이다. 화전일취는 조선 헌종 때 정학유가 지은 가사 ‘농가월령가’에 나오는 표현으로 ‘님도 꽃이요, 꽃도 꽃이니, 꽃 앞에서 함께 취하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술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스승이 평범한 주부인 제자에게 양조장을 차리라고 했을까?

지시울양조장 입구. 유소영 대표 자택 지하실이 양조장이다. /지시울양조장

“선생님은 ‘술 맛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했다. 약주도 그랬고, 나중에 소주고리로 내린 소주도 맛 보시고는 똑같은 칭찬을 했다. ‘가장 스탠다드(배운 대로 잘 따라하는) 스타일의 제자’라고 하셨다.”

‘화전일취’라는 이름을 박 소장이 지어준 배경도 유 대표에게 물어봤다.

“우리가 술을 따질 때, 향이 좋은 술, 맛이 좋은 술, 색이 좋은 술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으뜸은 향이 좋은 술이라고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꽃을 넣진 않았지만 향이 좋은 술을 빚어라’는 의미에서 화전일취 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걸로 이해했다. ‘꽃향기가 나는 술을 빚어라’는 의미 아니겠나. 굳이 꽃을 넣지 않더라도, 쌀로 빚은 순곡주에도 얼마든지 꽃향이 날 수 있다. 화전일취 이름을 받은 것은 양조장 설립 전인 2019년 1월이었다.”

유 대표가 만든 화전일취 막걸리와 약주에는 꼭 집어 무슨 꽃이라고 말하긴 쉽지 않지만, 꽃 향기, 과일 향기가 난다. 꽃을 직접 넣지는 않았지만, 곡물이 누룩에 버무려 100일간 천천히 저온 상태에서 발효되면서 우러나는 향들이다. 그리고 마침내, ‘화전일취’ 이름에 가장 걸맞는 백화주 ‘화전일취 백화 18′를 올 7월에 세상에 내놓았다. 20여종의 꽃잎을 넣은 가향주(술에 독특한 향을 내기 위해 꽃잎이나 식물 잎을 넣은 술)를 출시한 것이다. 그런데, 백화주는 정말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꽃잎들은 내가 다 직접 기른 것이다. 대개 봄꽃이 많아, 봄에 집중적으로 활짝 핀 상태에서 손으로 하나하나 딴다. 여름, 가을꽃들도 더러 있다. 딴 꽃잎들은 충분히 말린 다음에 보관해두었다가, 과하주 만들 때 사용한다. 발효 중인 약주에 소주를 넣을 때 말린 꽃잎을 같이 넣는다. 그래서, 내가 만든 백화주는 과하주다.”

지시울양조장의 히트 상품 '화전일취 백화 18'에 쓰이는 꽃 말리기. 20종의 꽃을 계절별로 따서 말린다. /지시울양조장


지시울양조장 술의 또다른 특징은 산미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단맛은 살짝 있다. 단맛이 도드라지는 정도는 아니다. 유 대표는 “산미가 적고 향이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세미, 침미, 방랭 이 3가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첫번째, 세미는 쌀 씻기다. 우리 선조들은 ‘백세’라고 했다. 100번 쌀을 씻어라는 얘기다. 그런데 요즘은 도정 기술이 좋아, 그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유 대표는 지금도 거의 ‘백세’를 한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란다. 배운대로 술 빚는 게 유 대표의 장기다.

두번째, 침미는 쌀 불리기다. 침미는 계절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대개 8~9시간 한다고 한다. 요즘 대부분의 양조장은 4시간 정도 침미를 하는 편이다. 도정이 워낙 잘 돼있고, 또 오래 불리는 게 안 좋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 대표는 배운대로 8~9시간 침미를 한다.

마지막이 방랭이다. 발효 도중의 온도관리다. 발효제인 효모는 온도가 25도 안팎에서 가장 활동이 왕성하기 때문에, 효모활동을 억제하려면 발효조 온도를 의도적으로 낮추어야 한다. 유 대표는 급히 온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발효조를 얼음물에 ‘중탕’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소주고리에 관한 질문을 했다. 지금껏 양조장을 많이 가봤지만 소주고리 증류기를 고집하는 양조장은 이곳이 처음이다.

“소주고리 역시 그렇게(우리 선조들은 전통 소주를 소주고리에 내렸다)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굉장한 철학을 갖고 있는 건 아니고, 배운 술이 이것(소줏고리 증류)이기 때문에 지금도 소줏고리 증류를 할 뿐이다.

술에 대한 접근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현대적 방법을 써서, 쉽게, 빨리, 맛있는 술을 그것도 많이 만들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전통주를 만드는 방법은 옛날 사람들이 했음직한 바로 그 방법이다. 우리 양조장의 정체성이 바로 그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내가 추구하는 방식의 술이라는 게, 현대적인 방식으로 빨리, 쉽게, 많이 만들 수 있는 게 없다. 옛날 선조들이 했음직한 제조방식을 가능하면 훼손시키지 않으려 한다. 동증류기보다 좀 더 힘이 들더라도 옹기로 만든 소줏고리로 증류하고 있다.

물론, 전통적인 방법으로 증류한 이 술이 가장 좋고, 맛있는 술이라고는 얘기할 수 없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화전일취 원주(술덧)가 갖고 있는 특성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증류방법이 소줏고리라고 생각한다.”

지시울양조장 유소영 대표가 소주고리 증류기를 설명하고 있다. 이 양조장 소주는 사진에서 보는 소주고리로 내린다. /박순욱 기자

사실 우리 조상들도 지금처럼 구리(동)로 만든 증류기가 있었다면 소주고리를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동증류기가 소주고리보다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조사에 따르면, 동 증류기로 내린 증류원액은 과실향, 아로마 향이 나는 반면, 토기로 만든 소주고리 증류액은 풀향이 나고, 톡 쏘는 맛이 강하다고들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 대표는 소주고리를 고집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증류방식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화전일취 증류주는 38도, 52도 두 종류가 있다. 화전일취 증류주의 특징은 무엇일까?

“꽃향이 난다는 분들이 많다. 시음하신 분들은 향이 굉장히 좋다고들 한다. 52도 치고는 부드럽다. 목넘김이 깔끔하다. 이런 반응이 많다. 하지만, 탄내가 느껴진다는 지적도 있다. 상압증류이기 때문에 탄내를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다.”

지시울양조장은 소주고리를 사용할 뿐 아니라, 현대식 양조설비 자체가 거의 없다. 그래서 모든 술 공정이 유 대표 혼자의 팔과 다리 힘으로 이뤄진다. 술항아리들은 바퀴 달린 판을 깔고 있어 그나마 이동이 수월하다.

“고두밥 냉각기나 자동 교반기(발효 중인 술을 저어주는 기계)를 둘 정도로 생산량이 많지도 않다. 내가 추구하는 술은, 직접 손으로 빚어야 제맛이 난다고 생각한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만든 술과 가장 가깝게, 솔직하게 만든 술이라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