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생산 작업 중 노동자가 설비에 끼어 죽거나 다치는 '끼임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10월 SPC그룹 계열사 SPL(SPC 로지스틱스) 제빵 공장에서 20대 직원이 기계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4일 대구 식품 공장에서 또다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식품 생산 현장의 안전 관리체계 자체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SPL 사고 이후 식품 공장 불시 점검도 했지만, 노동자가 설비에 끼어 숨지는 사고는 재발했다. 비락 공장에도 기기를 멈추는 '인터록'이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날 10시 40분쯤 유제품 제조업체 비락 대구공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천일물류) 소속 50대 노동자 A씨가 우유 박스를 세척실로 이송하는 리스트 설비에 몸이 끼는 사고를 당했다. 해당 근로자는 사고 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비락 우유로 알려진 비락은 발효유 전문기업 hy(한국야쿠르트)의 100% 자회사로 시유 및 분유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비락식혜를 생산·판매하는 팔도의 손자회사다. 비락 대구공장은 원유(原乳)를 이송 받아 우유를 제조하는 설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사고는 지난 10월 15일 SPC 계열사인 SPL 제빵 공장에서 20대 직원이 기계 안으로 상반신이 끌려들어가 사망하고, 같은 달 23일 SPC샤니 제빵 공장에서 40대 직원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어 절단되는 사고가 난 이후로 연이어 발생한 식품 제조 공장 사고다.
지난달에는 농심(004370)의 부산공장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와 농심 등에 따르면 지난달 2일 새벽 5시경 농심 부산공장에서 야간작업 중이던 20대 A씨가 라면 제품의 포장 전 냉각을 담당하는 설비인 '리테이너'에 끼어 팔과 근육을 크게 다쳤다.
이들 사고는 식품 산업 전반에 자리한 안전 관리체계 미흡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도 이를 막을 '인터록' 등 안전장치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끼임 사고 발생 시 이를 막을 수 있는 인터록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비락 대구공장 리프트 설비에는 노동자가 설비에 끼는 사고 시 기기 작동을 자동으로 멈추는 인터록이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사고가 발생한 SPL 제빵공장 교반기에도, 농심 부산공장 리테이너도 인터록은 모두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식품산업 전반에 안전불감증이 퍼져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식품 공장의 제조 설비는 중공업에 비해 설비의 규모가 크지 않아 대체적으로 위험하다고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서 "때문에 안전장치도 적다"고 지적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SPL 제빵 공장 사망사고를 계기로 지난 10월 24일부터 지난달 13일까지 진행한 안전 관리체계 불시 점검 결과에 따르면 식품제조업 등 2899개 사업장 중 1521개(52.2%) 덮개를 열 때 기계가 정지되는 연동장치 등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이달 2일까지 식품 혼합기 등 방호장치를 제거하고 작업할 가능성이 많은 유사 28종의 유해·위험 기계·기구와 위험 작업 등에 대한 불시 감독을 시행했지만, 재차 비락 대구공장 노동자가 식품 제조 설비에 끼어 숨지는 끼임 사망 사고를 막지 못했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제조 공장은 자체 안전 관리체계를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사업주는 안전 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반기에 1회 이상 점검해야 하지만, 비락 대구공장 역시 실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정 기계만 멈추기 어려운 자동화된 작업 환경이 끼임 사고를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비에 이물질 제거 등 조처를 하려면 전원을 꺼야 하는데, 여러 작업이 함께 돌아가는 자동화 공정이다 보니 일부 공정의 중단 자체가 안되는 구조가 고착됐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관계자는 "식품사의 공장 안전 규정을 보면 대부분 인터록 설치가 아닌 기기 문제시 도구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30만원인 인터록 가격이 아깝다기보단 사람이나 사물이 끼어 공정 전체가 멈추는 것을 우려한 조처"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1명 이상 사망, 동일 사고 6개월 이상 치료 필요 부상자 2명 이상 등 요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되고, 이조차 고용노동부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 탓이다.
이 같은 이유로 지난 11월 끼임 사고가 난 농심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서 제외됐다. 농심은 지난 2월에도 동일한 끼임 사고가 반복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SPL과 비락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SPL 조사조차 두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식품공장 끼임 사고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 동안 식품 혼합기 등 식품가공용 기계를 사용하는 사업장에서 30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6명이 사망했고, 299명이 다쳤다. 부상자 중 183명(96.3%)이 기계에 끼여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