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와인 하면 '말벡'을 첫손에 꼽는다. 질감이 거칠고 입을 쩍 붙게 하는 타닌이 강해 레드 와인의 질감을 채우는 용도로만 소량 쓰였지만, 아르헨티나는 말벡을 가져다 자국 와인의 중심에 세웠다. 말벡만을 쓰는 '말벡 100%'의 인기도 아르헨티나에서 비롯했다.
1902년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인 니콜라스 까테나가 프랑스가 본령인 말벡을 안데스산맥이 있는 아르헨티나 멘도사 지역에 심으면서 이른바 '말벡 부흥'을 이끌었다.
높은 고도에서 강한 햇빛을 오래 받고 자란 멘도사의 말벡은 거칠지 않고 부드럽고 묵직한 맛을 냈다.
아르헨티나 멘도사 지역의 와이너리 '엘 에네미고'가 만드는 '에네미고 말벡'은 말벡 와인 중에서도 최고로 불린다. 말벡 부흥을 이끈 까테나의 4대손 아드리아나 까테나가 해발 1470m 고도의 포도밭을 정하고, 이곳에서 말벡을 길러 양조한 와인이 바로 에네미고 말벡이다.
와인 평론가로 유명한 로버트 파커는 '복합적이고, 균형 있다'는 평가와 함께 92점을 줬다. 92점은 '뛰어난 와인'이라는 의미다. 90점 이하 와인에는 점수 자체를 주지 않는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은 에네미고 말벡에 92점을 줬다. '반드시 한잔 이상은 마셔보라'는 뜻이다.
에네미고 말벡에 들어가는 말벡은 해발 1470m 고도, 그 안에서도 석회질이 많은 땅에서 재배된다. 석회질 성분은 포도에게 유효한 양분의 흡수를 돕고 당도를 높여준다. 아드리아나 까테나는 해당 포도밭을 현지 와인메이커이자 토양학자인 알레안드로 비질과 고르고 골랐다.
아드리아나 까테나는 아울러 말벡 포도나무를 조밀하게 심는 방법을 택했다. 햇빛을 오래 받고, 산맥을 넘은 건조한 바람이 많이 드는 밭에 ha당 1만 그루가 넘는 포도를 심는다. 나무 하나가 차지하는 영역이 1㎡ 이하로 경쟁에 의해 자생력이 높아지는 방법을 택했다.
수확은 포도알이 가장 단단해 농축된 맛과 향을 내는 4월에 맞춰 이뤄진다. 양조는 말벡 92%에 과실 향과 꽃향기가 특징인 카베르네 프랑(8%)을 더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후 최대 3만ℓ 와인을 담는 오크통 푸드르에서 15개월 숙성을 거쳐야 비로소 에네미고 말벡이 된다.
잔에 따른 에네미고 말벡은 짙은 루비색을 띠었다. 말벡 와인은 검붉은 색으로 인해 '검은 와인'으로도 불린다. 첫 모금에는 단맛이 치고 이후에는 자두, 체리, 초콜릿, 훈제 향이 잇따랐다. 말벡 와인이 주는 묵직함을 갖췄지만, 타닌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되레 경쾌했다.
와이너리 엘 에네미고는 아르헨티나어로 '더 에너미'(the enemy), '적'이라는 뜻이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내 안의 적을 물리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에 걸맞게 엘 에네미고는 말벡 외에도 카베르네 프랑이 주 품종인 와인, 샤르도네를 쓴 화이트 와인까지 만들고 있다.
'에네미고 카베르네 프랑', '에네미고 샤르도네' 모두 로버트 파커로부터 90점 이상을 받고 있다. 에네미고 말벡은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레드 와인 신대륙 6만원 이상 10만원 미만 부문 대상을 받았다. 2017년부터 신동와인이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