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달라. 휴동(休動) 중이라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지난 4일 오전 찾은 농심(004370) 부산공장 삼락공장동은 조용했다. 평소라면 한창 수출용 신라면을 생산하느라 분주해야 했지만 오가는 직원은 커녕 공장 설비가 돌아가는 소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공장 내부에 전등은 켜져 있었지만, 휴동 전 생산된 제품을 옮기는 지게차와 공장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만 눈에 띄었다.

삼락공장동에선 지난 2일 11시간여의 야간 근무를 이어가던 20대 여성 근로자의 팔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났다.

'재래식 사고'로 불리는 끼임 사고로 80여명의 근로자 주야 맞교대로 하루 86톤(t)의 수출용 라면·스낵을 만드는 공장이 멈춰섰다. 삼락공장동은 6일까지 휴업했다.

4일 부산 사상구 농심 부산공장 삼락공장동의 모습. /양범수 기자

농심의 부산공장은 크게 사상공장동과 삼락공장동으로 이뤄져있다. 지난해 기준 7만317t, 약 6690억 원어치의 수출용 라면·스낵을 만드는 농심의 최대 수출용 기지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사고는 지난 2일 오전 5시 4분쯤 라면 제조 공정에서 일하던 20대 여성 A씨가 라면 완제품 포장 작업 전 라면을 식히는 '리테이너'에 끼이면서 발생했다.

12시간 맞교대 근무자인 A씨는 전날(1일) 오후 6시에 출근해 11시간째 일하던 중 사고를 당했으며, 어깨가 골절되고 근육이 손상됐다. A씨는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처치를 받았으며, 현재는 대구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당초 농심은 A씨가 사고를 당한 공정은 유탕 처리된 면을 기계가 자동으로 위로 올리며 열기를 식히는 것으로 '무인 공정'이라 사고가 날 수 없다며 사고 경위에 대해 의아해 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등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A씨는 작업 막바지 리테이너에 이물 등을 빼내려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사고 발생의 원인 중 하나로 농심의 근무 제도를 지적한다. 농심 공장은 주야 맞교대 근무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연장근로시간까지 더하면 하루 최대 12시간 근무가 가능한데, 이러한 형태의 근무 방식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혜은 한림대 의학과 교수는 "52시간제를 지키고 있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문제만 없을 뿐, 야간노동과 안전사고와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는 다수 있고 야간노동이 사고율을 높인다는 보고도 있다"고 했다.

그는 "야간 노동을 하시는 분들의 근로시간은 주 40시간보다 더 짧아져야 하고, 야간노동 중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새벽 5~6쯤이 인간의 생체리듬상 주의력이 가장 떨어질 때"라면서 "주야 맞교대 근무는 3교대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기업이 노동자들의 생체리듬을 고려해 주의력이 떨어질 시간대에는 안전 관리를 강화한다든지 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일 농심 부산공장 사상공장동이 분주하게 가동되는 모습. /양범수 기자

가동을 멈춘 삼락공장동과 달리 하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30m가량 떨어진 사상공장동은 하얀 수증기와 소음을 내뿜으며 바삐 돌았다.

농심이 지난 3일 황청용 농심 경영관리부문장(전무) 주재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고 안전조치 안을 잠정 확정한 것과 별개로 주야 맞교대 노동자들은 분주했다.

오후 12시쯤 사상공장동 앞에서 만난 푸른 작업복 차림의 한 농심 관계자는 지난 2일 사고와 관련해 묻는 말에 "잘 모른다"고만 답하며 자리를 피했다. 사상공장동은 지난 2월 똑같은 설비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공장이다.

농심 측은 잇따른 사고에도 '안전조치 강화' 만을 대책으로 내세웠다.

두 사고 모두 문제가 발생한 설비에는 사람의 신체나 사물이 끼었을 때 기기의 작동을 자동으로 멈추는 끼임 방지 센서인 '인터록'이나, 돌아가는 리테이너에 옷이나 신체가 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문 등의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부산북부지청은 지난 3일 사고가 발생한 설비를 비롯해 농심 부산공장 설비의 안전 상태를 점검했고, 안전장치가 미흡한 설비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다.

북부지청에 따르면 농심 부산공장에 있는 9대의 리테이너 가운데 안전문이 설치된 설비는 3대에 불과했다. 인터록이 설치된 설비는 1대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북부지청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 설비에 재발을 막기 위해 안전문과 시건장치를 설치해 시정하라고 했다"면서 "애초 농심에 안전조치 계획서 제출을 요구하려 했으나, 자체적으로 안전진단을 한 뒤 결과를 보고하겠다고 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농심은 이에 사고가 난 공장 설비를 비롯해 전국에 라면을 만드는 설비가 있는 6개 공장 전체를 대상으로 안전 점검을 시행하고, 고용노동부가 시정조치한 부분을 포함해 전반적인 안전 강화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농심은 또 휴동 기간 동안 삼락공장 직원 80여명에 대해 유급휴가를 지급하고, A씨와 같은 시간대에 근무한 직원들을 상대로는 심리치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사고가 발생한 설비는 사고자 구조 과정에서 일부 파손돼 2주가량 더 휴동키로 했다.

농심 노동조합 측은 이러한 회사의 대책 마련에도 우선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우선은 피해자 치료가 먼저인데다, 전날(3일) 사측과 공장 전반적인 안전점검을 마쳐 6일까지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안전 보강이 되면 그 설비는 처음 운용하게 되는 것이니 추후 상황을 지켜보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더 요구할 것"이라고만 했다. 사고에 대해 묻는 말에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농심의 이러한 조치가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근무 형태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다, 제도적인 문제도 있다는 것이다.

정진우 교수는 "노동자들이 설비에 이물을 제거하거나, 설비를 정비할 때는 무조건 설비 작동을 멈추도록 돼 있는데, 설비를 한번 멈추면 모든 공정이 중단되기에 규정대로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인터록 부착 등 안전 조치는 필요하지만, 설비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작업자들이 정비·청소 등의 작업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마련하는 등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안전 작업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부산북부고용노동지청. /양범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