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경기도 고양시에 조리가 안된 찌개를 전문으로 한 밀키트 업체를 문 열었던 이종훈 씨는 최대한 빨리 사업을 정리하고 싶단 생각에 권리금도 없이 매장을 내놨다.

그는 “5분 거리에 100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있어 매출은 꾸준히 늘었지만 야채 신선도 관리가 쉽지 않고 마진율은 너무 낮아 차라리 빨래방이나 스터디 카페를 할 걸 하는 생각에 땅을 쳤다”며 “하루 10시간을 일하는데 손에 쥐는 건 얼마 없어 빨리 정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밀키트 업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만 전국에서 70여개 매장이 매물로 나왔고 연 매출 80억원 규모의 밀키트 전문업체도 인수합병(M&A) 대상자를 찾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의 밀키트 판매대. / 연합뉴스

3일 국내 최대 상가매물 중개업체인 점포라인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 밀키트 전문 매장 70여개가 매물로 나왔다.

이들의 평균 업력은 1년에 불과하다. 올해 초 매장을 열었다가 반년 만에 폐업을 준비중인 사업주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외출 자제 분위기로 내식이 늘면서 밀키트 시장이 급성장하자 전문 매장을 열었다가 올 들어 장사가 안돼 급매물로 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온라인 창업 플랫폼 마이프랜차이즈(마이프차)에 따르면 밀키트 가맹점 수는 2020년 10개에 불과했으나 올해 1000개로 급격히 증가했다.

밀키트 전문점은 소자본 창업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영업공간이 협소해도 상관없고 무인 운영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밀키트 전문점의 평균 창업비용은 5000만~6000만원으로 다른 음식점 프랜차이즈가 수억원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적다.

연 매출 80억원 규모의 밀키트 전문 제조업체는 최근 M&A 시장에서 인수 대상자를 찾고 있다. 이 회사는 제조공장을 보유해 대형사에 납품을 전문적으로 하다가 자체 브랜드 상품을 출시하며 사업을 급속히 확장했지만, 매출이 늘수록 수익성이 악화되자 고심 끝에 사업을 정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밀키트 전문 제조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식품 대기업과 레스토랑, 대형마트 등 유통사가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출시하는 등 경쟁이 과열돼 가격이 너무 낮게 형성됐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식 특성상 야채가 많이 들어가는 찌개류는 원가율이 95%에 이르는 제품도 있다. 수입산 원재료를 쓰는 제품은 수입 물가가 오르고 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까지 상승하는데도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

밀키트 시장점유율 기준 상위업체로 꼽히는 프레시지와 마이셰프 조차 작년 기준 각각 529억원, 112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국내 투자은행(IB)업계의 한 관계자는 “밀키트 업체를 인수하려고 수억원을 내고 외부 컨설팅까지 받았으나 사업성이 도저히 안된다고 판단해 접었다”며 “국내 식품 대기업들이 밀키트 사업을 대폭 확장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