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마리아주(Mariage)’라 칭한다. 결혼을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와 똑같다. 음식에 꼭 맞는 와인을 고르는 일은 마치 결혼처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처럼 결심하고 먹고 코르크를 딴 값 비싼 와인이라도 그날 먹는 음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불행한 결혼으로 기억된다. 그저 본전 생각만 날 것이다. 식사 자리에서 음식과 운명처럼 어울리는 와인 한 병을 만나는 일은 어지간히 전문적인 소믈리에 추천을 받아도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이 낳은 세계 최고의 소믈리에이자 동양인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소믈리에협회장 자리에 올랐던 신야 타사키(田崎 真也)는 “요리와 와인의 궁합에서 키 포인트는 향기”라고 비법을 밝혔다.

와인은 기본적으로 향을 중심으로 즐기는 음료다. 와인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된 향은 기본적으로 과일에서 비롯된 향이기 때문에 그 과일 향과 요리를 어떻게 맞출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신야 타사키의 지론이다.

그러나 와인과 음식 사이 관계를 뜯어보면 관성적으로 음식은 음식대로 요리사가 만들고, 와인은 와인대로 양조장에서 만들곤 했다. 요리사가 직접 만든 와인, 혹은 와인 양조가가 요리한 음식이라는 단어가 다소 어색한 이유다.

그래픽=이은현

하지만 여기 온전히 음식과 잘 어울리기 위해 ‘개발한’ 와인이 있다. 1930년 프랑스 파리 최고급 레스토랑 라 사마리텐느 드 뤽스(La Samaritaine de Luxe) 지배인은 샴페인 하우스 베세라 드 벨퐁(Besserat de Bellefon)의 주인 빅터 베세라에게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샴페인을 만들어 준다면 바로 1000병을 주문하겠다”고 요청했다. 이 한마디 주문이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샴페인’ 베세라 드 벨퐁을 만들었다.

샴페인은 입맛을 돋우는 산미(acdity)와 함께 화려한 기포가 피어올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와인이다. 클럽과 고급 레스토랑을 가리지 않고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로 샴페인을 꼽는 이유다.

문제는 음식과 샴페인이 의외로 상극인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샴페인의 생명과도 같은 거품이 너무 세게 피어 오르면 혀에 분포되어 있는 맛을 감지하는 미뢰가 지나친 자극에 마비돼 버린다.

애써 만든 고급 음식의 섬세한 풍미를 느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미쉐린 가이드에 오르는 일류 쉐프(chef)들은 기포가 너무 강한 와인을 선호하지 않는다. 유명 레스토랑 대부분이 샴페인은 메인 요리와 내놓는 대신, 식전에 간단한 음식들과 내놓는다.

모든 음식과 잘 맞는 샴페인을 만들고자 베세라가 도입한 방식은 ‘퀴베 데 무안(Cuvée des Moines)’이라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퀴베 데 무안은 ‘수도사의 와인’이라는 뜻이다. 베세라는 샴페인을 처음 개발했던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이 기포를 섬세하게 다듬기 위해 썼던 이 방식을 채택해 탄산의 압력이 낮고 기포가 섬세한 샴페인을 만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베세라가 만든 샴페인은 맛과 향이 튀지 않았고, 부드러운 거품이 다양한 요리와 편안한 조화를 이뤘다.

샴페인을 만들 때는 와인을 병에 담고 이스트와 당분을 넣어 한 번 더 발효시킨다. 이것을 2차 발효라 하는데, 이때 발생한 탄산을 병에 가두면 발포성 와인이 완성된다.

베세라는 부드러운 샴페인을 만들고자 2차 발효 시 당분을 적게 넣어 기포의 크기를 줄였다. 실제로 프랑스 랭스(Reims)대 물리학과에서 검토한 결과 베세라 드 벨퐁의 기포가 일반 샴페인보다 30%가량 더 섬세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기포만 섬세해서는 결코 좋은 샴페인이 될 수 없다. 베세라는 뛰어난 샴페인을 만들고자 포도부터 까다롭게 고른다. 그들은 샴페인 지방의 포도밭 중에서도 주로 특등급(Grand Cru)과 일등급(Premier Cru) 밭에서 생산된 포도를 사용한다.

베세라 샴페인은 숙성 기간이 1년 남짓인 일반 샴페인보다 서너 배 더 길다. 와인 숙성 환경도 최상급이다. 베세라 지하 숙성실은 깊이가 35m에 이르고 지하 9층까지 있다. 샴페인을 9000만 병까지 보관할 수 있는 규모다.

자연적으로 항온항습이 보장되는 조용하고 서늘한 곳에서 오래 숙성시키니 샴페인의 풍미가 깊어지고 기포도 와인에 촘촘히 배어든다. 그래서 베세라 샴페인은 잔에 따른 뒤 시간이 한참 흘러도 세밀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지난 8일 프랑스 샹파뉴 지역 와인 생산자들 모임은 올해 최고의 샴페인 하우스로 ‘베세라 드 벨퐁’을 꼽았다. 아직 국내에서는 널리 유명세를 얻지 못했지만, 함께 와인을 만드는 지역 생산자들은 이미 이 곳을 최고로 꼽을 만큼 명망이 깊다.

베세라 드 벨퐁에 따르면 현재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을 준 레스토랑 가운데 프랑스 내 170여개, 전 세계 40여개 레스토랑이 베세라 드 벨퐁을 와인 리스트에 올려뒀다.

베세라 드 벨퐁 로제 브뤼는 피노 뮈니에(Pinot Meunier)라는 포도 절반과 샤르도네(Chardonnay)와 피노 누아(Pinot Noir)를 25%씩 섞어 만든다.

신선함과 깔끔함이 매력적인 이 샴페인에는 석류나 아세로라 같은 잘 익은 붉은 과일향이 섬세한 기포에 실려 은은하게 드러난다. 오래 숙성한 효모에서 나는 구수한 빵 굽는 냄새, 흰 후추가 주는 매콤함도 가볍게 섞여 있다.

이 샴페인은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스파클링와인 10만원 이상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나라셀라가 수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