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꼭 사야하는 와인이 있다. 이 와인에서 나는 독특하고 달콤한 과일향과 모카, 송로버섯향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바로 이탈리아 북동부 가르다 호수와 소아베 지역 사이에서 나오는 아마로네다.
더 타임즈, '아마로네, 가을에 딱 맞는 완벽한 와인'

영국 유력 매체 더 타임즈는 지난달 30일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아마로네(amarone)라는 이탈리아 와인을 뽑았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함께 매년 전 세계 와인 생산량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와인 생산 대국이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자라는 포도 품종만 3000여 종에 달한다. 이렇게 다양한 포도로 만든 무수한 와인 가운데 '가을과 가장 잘 맞는 와인'으로 아마로네를 콕 집어 선택한 것이다.

아마로네는 샤토 무통 로칠드나 샤토 라투르처럼 특정 와인 브랜드 이름이 아니다.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 인근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지역에서 특정 방식으로 만드는 와인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발폴리첼라는 라틴어로 '포도주 저장고가 많은 계곡(Valley of many cellars)'이라는 뜻이다. 으레 라틴어에서 유래한 지역명이 그렇듯 이 지역 역시 2000년 전부터 와인을 만들었을 정도로 역사가 길다.

단지 역사가 길뿐만 아니라 와인을 만드는 방법도 독특하다. 발폴리첼라 지역에서는 4세기 무렵부터 포도가 완전히 익은 11월 중순 가장 잘 익은 포도를 직접 손으로 선별해 수확한 후 바람이 잘 통하는 볏짚이나 대나무 채반 위에 올려놓고 4~5개월 동안 바짝 말린다.

아파시멘토(Appassimento)라 불리는 이 방식은 세심한 손질이 필요한 까다로운 공정이다. 자칫 온도나 습도 조절을 잘못하면 기껏 고른 좋은 포도에 곰팡이가 슬거나, 세균이 옮겨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손민균

이 지역 생산자들은 1600년 넘게 이 방식으로 건포도를 만들어왔다. 이렇게 포도를 말리면 와인은 수분은 줄어들고, 줄어든 수분만큼 당도가 높아진다. 자연히 이 포도로 만든 와인 향과 맛도 이전보다 짙어진다.

오랜 건조 기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생명력이 긴 포도를 키우려면 비가 적게 내리고 사계절 내내 햇볕이 강렬하게 들어야 한다. 발폴리첼라는 강우량이 적고 일조량이 풍부할 뿐 아니라, 이름처럼 계곡 지형이라 충분한 바람이 사시사철 분다. 포도를 말리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인 셈이다.

다만 이렇게 말린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싱싱한 포도로 만들 때보다 와인 생산량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말리는 과정에서 수분이 날아가면서 질량이 줄 뿐 아니라, 세심히 관리를 해도 일부는 상하거나 와인을 만들 만큼 충분히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로네는 이전에는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이 와인을 마실 여력이 충분한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발폴리첼라에서 15킬로미터(km)만 가면 나오는 베로나 지역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였기 때문에, 이 와인은 셰익스피어가 유럽에 명성을 떨쳤던 17세기 이후에는 '달콤쌉싸름(bittersweet)한 사랑'을 표현하는 와인의 대명사로 꼽혔다. 더 타임즈를 포함해 여러 영국 매체들이 가을에 마셔야 할 와인으로 아마로네를 꼽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지방 유명 와인생산자 마시(Masi)에서 대나무 채반 위에 포도를 말리고 있다. /마시

이전에 귀족 와인이었던 아마로네는 19세기에 들어와 포도 재배 기법이 현대화되고, 와인의 밀봉이나 장기 보관 관련 기술도 고도화되면서 일반 와인 소비자들도 즐길 수 있을 만큼 가격이 낮아졌다.

일반적인 적(赤)포도주 알코올 도수가 13~14%인 데 비해 아마로네는 말린 포도가 가진 높은 당분 때문에 도수가 15~17%까지 올라간다. 높은 알코올 도수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 같지만 실제로 맛을 보면 진하고 묵직한 첫인상 뒤로 건포도의 달콤함을 감추고 있어 의외로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여러 아마로네 생산자 가운데서도 마시(Masi)는 7대째 가족 경영을 하고 있는 유서 깊은 와이너리다. 특히 코스타세라 아마로네는 마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와인으로 100% 말린 건포도로만 와인을 만든다.

마시는 대나무로 만든 건조대 위에 포도송이를 놓고 말리는데 이 기법은 밀짚을 주로 사용하는 다른 생산자들에 비해 통기성이 좋아 포도가 더 잘 마르는 경향이 있다.

마시 관계자는 "와인이 가진 풍미가 진한 편이기 때문에 따로 음식을 곁들이지 않고 파마산, 페코리노, 고르곤졸라 같은 숙성 치즈만을 안주 삼아도 충분히 즐기기 좋다"며 "마시기 2~3시간 전에 미리 병을 열어서 공기와 충분히 접촉을 시킨 다음 다른 와인보다 1~2도 정도 높은 온도로 마시면 더 풍성한 향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코스타세라 아마로네는 2022 구대륙 레드와인 부문 대상을 포함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3회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레뱅드매일이 유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