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주문하면 로봇이 조리하고, 테이블로 서빙한다. 사용된 재료는 식물성 원료를 활용한 고기다. 상상 속 장면 같지만,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온 풍경이다. 외식업계의 인력난과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까지 겹치며 음식의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조선비즈는 음식과 결합한 기술, ‘푸드테크’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푸드테크를 활용한 현장을 취재하고, 푸드테크를 이끄는 전문가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서울시 성수동의 차(茶) 전문점 ‘슈퍼말차’. 이곳에선 예열한 다완(찻사발)에 가루차를 담아 올리면 ‘ㄷ’자 모양 로봇이 ‘격불’한다. 격불은 차선(칫솔)으로 거품을 내 차의 맛을 끌어올리는 행위다. 빠르되 부드러워야 해 ‘장인의 일’로도 불리는 격불을 로봇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말차 성수점에 있는 격불 로봇. /힛더티 제공

‘푸드테크’라는 이름으로 음식에 깃든 기술이 이제 카페 등 일상 곳곳으로 완전히 스며들고 있다. 로봇을 통해 음식을 서빙 받는 일은 놀랍지 않은 일이 됐다.

최근 급격하게 상승한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 대안으로 로봇이 떠오르면서다. 최근에는 콩 단백질 분리 기술을 쓴 대체육이 등장해 ‘맛있게’ 채식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됐다.

◇ 사람일 대신하는 로봇…하루 50마리 치킨 튀긴다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로봇을 활용한 푸드테크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정했다. 지난 4월에는 음식을 나르는 서빙로봇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내고 서빙을 넘어 손님 맞이와 주문을 로봇에 넘겼다.

우아한형제들이 로봇을 내세운 이유는 외식업계에서 인력난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노동 강도가 높고 근무 환경이 열악해 외식업계에 대한 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는데, 최근 수년간 큰 폭으로 오른 최저임금도 영향이다. 음식점주는 월 30만원 로봇 렌털료를 내면 음식을 나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식음료 분야 기업들은 이미 로봇을 도입해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로보아르테는 지난 8월부터 ‘롸버트 치킨’ 브랜드로 가맹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시간당 50마리의 치킨을 로봇이 사람 대신 튀겨낸다. 슈퍼말차의 운영사 힛더티는 매장을 경기도 동탄점 등 6곳으로 확장했다.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금융 서비스에 디지털 기술이 융합된 핀테크(금융+기술)가 금융권 혁신을 일으켰다”면서 “음식과 결합한 기술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 식품 생산 방식 전반의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푸드테크는 2014년 즈음부터 회자되기 시작했다. 미국 등 해외를 중심으로 푸드테크가 식품의 생산부터 유통, 배송, 소비 등 식품사슬 전반에 대한 혁신 기술로 받아들여지며 투자가 늘면서다. 동시에 연평균 7%씩 시장이 성장, 지난해 기준 2720억 달러(약 380조원) 시장이 됐다.

그래픽=손민균

◇ 식물에서 단백질 추출…마트·편의점도 대체육 판매

국내 푸드테크는 인건비 감축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최근 대체 식품으로까지 시장이 커지고 있다. 대체 식품은 식물이나 곤충에서 단백질을 추출(분리)해 가공하는 기술을 활용한 먹거리다. 식물 추출 단백질을 쓴 식물성 고기·계란·유제품까지 나오고 있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를 중심으로 환경과 동물 보호 등을 이유로 식물성 대체육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대체 식품 산업은 더욱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채식비건협회에 따르면 국내 비건 인구는 2008년 15만명에서 2018년 150만명으로 10배 늘었다.

CJ제일제당(097950)이나 신세계푸드(031440) 등 식품 제조사는 이런 흐름를 반영해 대체 식품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기술 개발과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식물성 식품 전문 브랜드 ‘플랜테이블’을 내고 떡갈비, 스테이크 등을 출시했다. 2025년까지 매출 2000억원을 낸다는 목표다.

신세계푸드는 지난해 7월 대체육 ‘베러미트’를 론칭한 이후 SK텔레콤(017670), SK하이닉스(000660) 등 기업 구내식당과 스타벅스에 자체 개발한 돼지고기 대체육 슬라이스 햄을 납품하고 있다. 가공육 캔햄과 맛과 식감이 유사하고 상온으로 유통, 보관할 수 있는 런천 캔햄도 출시했다.

음식 제조사들이 푸드테크를 활용해 출시한 비건 식품은 일상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서는 소고기, 돼지고기와 함께 대체육을 판매하는가 하면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말 채식 전문 브랜드 ‘그레인그레잇’을 선보였다. CU도 대체육 김밥 등을 판매하고 있다.

신세계푸드가 대체육 '베러미트'로 만든 샌드위치. /신세계푸드 제공

◇ 20조원 국내 푸드테크 시장...200조원으로 성장 전망

국내 푸드테크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로봇과 대체 식품을 넘어 식음료 시장 전반으로 기술 활용 시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 급식 업체 아워홈은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날씨와 계절, 요일, 기업별 메뉴 선호도 등을 분석해 당일 특정 메뉴가 얼마나 나갈지 분석한다.

식음료업이 주된 사업 부문이 아닌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푸드 테크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SK그룹은 특히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직접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대체 식품 예찬론을 펼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달에도 세포 배양 연어살 사진을 올리고 “단백질, 비타민과 칼슘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대체 우유를 활용한 ‘발효 단백질 바닐라 아이스크림’ 도입도 준비 중이다.

한화그룹 역시 김동관 부회장이 대체 식품을 신성장 동력에 올렸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대체육 스타트업 뉴에이지미츠에 투자했다.

올해는 미국 최초 세포배양 생산 공급업체인 핀레스푸드와 국내 배양육 스타트업 다나그린에 11억원을 투자해 지분 3.76%를 확보했다.

국내 푸드테크 산업이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도 성장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경환 성균관대 글로벌창업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0월 ‘대한민국 식품대전’에서 “국내 푸드테크 시장은 현재 약 20조원 규모 수준이지만, 160조원인 국내 외식업 시장과 110조원에 달하는 식재료 유통 시장과 결합해 약 2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타트업 투자사인 퓨처플레이의 류중희 대표는 “후라이드 치킨의 등장에는 일정한 온도로 기름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 콩에서 기름을 분리하는 기술 등이 작용했다”면서 “먹는 행위와 관련한 산업의 가치사슬 전반의 성장이 기술에 기대며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