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통술 양조장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세속을 피해 초야에 묻혀 술을 빚는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양조장은 외딴 곳에 숨어 있었다. 경기도 동두천시 쇠목길 325-2. 양조장 주소다.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이 있어서 망정이지, 주변에 참조할 만한 건물들도 없었다. 이쯤되면 멀리서 온 기자를 별로 반기지도 않는, 퉁명스런 표정의 양조장 대표가 기다리고 있는 게 맞았다. "번잡스런 도심을 피해서 술 빚는데 전념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 양조장을 차렸다"는 얘기를 양조장 대표에게서 들은 게 이곳을 찾기 이틀 전이었다.
그러나, 반전이었다. 사람이 그리워서였을까? 김용완 양조장 대표는 말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입에다 오토바이(?)를 단 것 같았다. 독특한 헤어스타일의, 도인같은 풍모에 입담이 청산유수였다. 명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본인을 '양조장 대표'가 아닌 '한국술 연구장(President)'라고 적었다. 연구장은 무슨 뜻일까? 한국술을 연구하는 대표라는 뜻일게다. 그는 지금껏 3000번 정도 술과 누룩을 빚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상업용 술을 내놓은지는 몇년 안되니, 그동안은 끊임없이 연구 차원에서 술을 빚어온 셈이다. '한국술 연구장'이라는 명함 속 직함에서 한국술을 꾸준히 연구해온 그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통술은 '한국전통술계승원'의 준말이다. 그러나, '한 통의 술'이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한통술은 양조장이면서 한국술 연구소, 또 한국술 교육기관을 겸하고 있다. 김용완 대표는 "이곳에서 전통술 교육을 받은 이수생이 포천시 공무원을 포함해 300명쯤 되고, 이중 100명은 아직도 이래저래 연락이 닿고 있다"고 말했다. 양조장의 정확한 이름은 한통술이노베이션이다.
그는 누룩 전문가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25년간 누룩을 연구해왔다. 자신이 만드는 술에 들어가는 누룩을 직접 빚을뿐 아니라, 외부에 누룩을 판매할 준비도 하고 있다. 대형 누룩실을 갖춘 제2양조장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대로 누룩을 빚어, 한국술을 만드는 양조장은 우리 양조장이 최고일 것'이라는 자부심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아직 '믿거나 말거나'다. 그가 만드는 누룩은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누룩을 사가는 양조장도 별로 없는 듯했다.
그러나, 누룩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진심이었다. 그는 "일제에 의해 끊어졌던 전통술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술 복원의 핵심은 바로 누룩이라고 했다. "한국술이 살아나려면, 맛과 품질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선, 제대로 된 누룩을 연구하고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양조장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공장 누룩'을 사서, 사용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김용완 대표의 '누룩사랑'은 우직해보였다.
양조장을 둘러보기에 앞서 황토방으로 만든 누룩실을 먼저 들렀다. 누룩이 놓여져 있는 칸마다 짚 위에 구절초 줄기가 깔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김 대표는 "누룩을 띄울 때 짚을 많이 깔아두는 것은 짚에 자연에 존재하는 미생물들이 많기 때문이고, 구절초 줄기를 두는 것은, 공기 소통 역할과 함께 구절초 꽃향을 누룩에 입히기 위해서"라고 했다. 양조장 한켠에서 직접 구절초를 재배하고 있다.
김 대표가 만드는 술에 쓰이는 누룩은 향온곡과 설향곡이 대표적이다. 구절초꽃술, 연꽃담은술은 향온곡, 최근에 나온 막걸리 백구는 설향곡을 쓴다. 향온곡은 녹두를 30%나 쓴다. 그밖에 보리와 찹쌀을 비슷한 분량으로 넣어 완성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보리를 그냥 쓰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보리의 3분의 1은 찌고, 3분의 1은 볶고, 나머지 3분의 1은 생보리를 쓴다고 한다. 녹두 역시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살짝 찐 다음에 껍질을 벗겨 바싹 말린 뒤에 사용한다.
올해 5월에 출시된 막걸리, 백구에 쓰이는 설향곡은 누룩으로 누룩을 만든다. 50일 걸려 만든 이화곡 누룩 50%에, 우리밀 50%를 섞은 뒤 다시 50일 걸려 누룩을 만들어 완성한 게 설향곡이다. 다른 누룩은 50일 정도면 만드는데, 설향곡은 두배인 100일 걸려 만든다. 김 대표는 "누룩으로 누룩을 만들면, 당화력이 좋아지고, 술맛이 부드러워진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든 막걸리 백구는 신제품이지만, 판매율 1등을 자랑한다. 시나몬(계피)차를 양조용수로 사용한다.
그가 한국에서 술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전통술 연구 및 교육기관인 한국전통술계승원을 2011년 포천에 설립하면서였다. 그러나, 김용완 대표의 술 빚기 경력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중국 칭따오에서 한국 전통술 양조장을 차려, 한국에 건너온 2011년까지 13년 동안 중국에서 한국술을 생산, 판매했다. 김 대표는 "주류 면허를 중국의 시, 혹은 성 단위(그러니까 지방정부 단위)에서 받은 한국인은 간혹 있었지만, 중국 중앙정부로부터 주류면허를 받은 한국인은 내가 최초"라고 말했다. 그가 만든 술은 중국 전역은 물론 일본, 미국으로도 팔려나갔다.
그후, 2011년 중국 사업을 접고, 귀국한 그가 터를 잡은 곳이 경기도 포천이었다. 지금의 동두천 양조장으로 이전하기 전, 10년 동안 인근의 포천에서 술을 빚고 고문헌 속의 전통술을 연구했다. 그러나, 상업용 술을 내놓은 것은 한국에서 술을 빚은지 거의 10년이 지나서였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꽃향 때문이었다. 그가 출시한 구절초꽃술과 연꽃담은술은 쌀을 기본 재료로 만든 꽃술이다. 구절초와 연꽃이 부재료다. 부재료이긴 하지만, 술맛을 결정짓는 결정적 재료이기도 하다. 김 대표의 얘기다.
"꽃술을 완성하는데 무려 10년이 걸렸다. 시행착오를 가장 많이 거친 부분은 꽃의 향미를 살리는 것이었다. 구절초나 연꽃을 많이 넣는다고 술에 꽃향이 많이 나는게 아니다. 술이 발효와 숙성을 거치면서 향이 변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꽃향 내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이, 꽃술이라고 하면, 꽃이 활짝 폈을 때 나는 향이 날 거라고 여긴다. 이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숱하게 실패를 거친 뒤에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고문헌을 뒤져봤더니, 연화주(연꽃술) 제조법이 나와있더라. 실제 연꽃을 넣어서 술을 빚는 방법도 있지만, 개똥쑥, 도꼬마리(열매에 갈고리 모양의 가시와 짧은 털이 있는 국화과의 식물)를 넣어 술을 빚어도 연꽃향이 난다고 돼 있었다.
그래서 나는 두가지를 다 쓴다. 연꽃도 넣고, 개똥쑥, 도꼬마리도 넣는다. 개똥쑥, 도꼬마리는 탕수용으로 물 끓일 때 넣고, 연꽃은 2차 담금 때 넣는다(연꽃담은술은 삼양주). 개똥쑥, 도꼬마리를 넣어 끓인 물을 식혀서 누룩과 쌀을 넣어 밑술을 만든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연꽃향의 술을 만드는데 10년이 걸렸다."
구절초꽃술 역시 구절초를 물에 넣고 끓여 이를 식힌 뒤 누룩과 쌀을 넣어 밑술을 만든다. 포천시 '시화'이기도 한 구절초는 쑥과에 속하는 식물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어 예로부터 아이 낳는데 어려움을 겪는 여인들이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김 대표는 "한통술은 유해균이 없어, 냉장온도로 보관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좋아지는 술"이라고 말했다.
한통술이 만드는 꽃술은 모두 포천 고시히까리 쌀을 쓴다. 멥쌀에는 아밀로오소(녹말 성분) 성분이 많고, 찹쌀에는 아밀로펙틴(녹말 성분의 일종으로, 아밀로펙틴 성분이 많은 쌀은 술을 빚을 때 빨리 익는다) 성분이 많다. 고시히까리 쌀은 멥쌀이지만, 찹쌀에 많은 아밀로펙틴 성분이 많은 게 특징이다. 쌀값은 비싸지만, 술은 잘 되는 게 고시히까리 쌀이다. 한통술 김용완 대표는 "대개 양조장들이 어느 지역쌀을 쓰는가는 중요하게 여기지만, 정작 쌀의 성분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쌀이 갖고 있는 단백질 성분이나 아밀로오소 성분이 어느 정도인지를 자세히 알아야만, 그에 맞는 술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완 대표가 만드는 한통술의 특징은 숙취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막걸리든, 와인이든 모든 발효주는 숙취성분이 생기게 마련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세트알데히드, 퓨젤오일 같은 숙취성분이 생긴다. 발암물질로 알려진 포름알데히드도 발효 과정에서 생긴다.
술이 발효하면 알코올과 탄산이 주로 생기는데, 숙취성분들은 이 탄산을 타고 공기순환을 한다. 그런데, 김 대표는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숙취성분들을 감자를 넣어 없앤다고 한다. 감자라니? 감자가 숙취성분들을 흡수라도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감자는 농산물 중 글루텐이 많이 포함돼 있다. 끈적끈적한 점성물질이 글루텐이다. 감자 속의 이 글루텐 성분이 술 발효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숙취성분들을 흡착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발효(2차담금)할 때 감자를 껍질 벗겨, 덤성덤성 토막 내 덧술에 넣어두면 숙취성분을 머금은 탄산이 감자에 달라붙게 된다. 김 대표는 "술 발효가 끝났을 때, 감자만 밖으로 꺼내 버리면 술에 있던 독성물질들이 거의 제거가 된다"고 말했다.
숙취 없는 술? 술꾼들의 로망이다. 전날 술을 진탕 마셔도 다음날 아침 가뿐하게 일어나는 것. 그런데 정말 숙취성분이 없는 술이 있다면, 모든 술이 다 그랬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김용완 대표도 숙취 성분을 제거하는 노하우를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 '숙취성분 제거 기술을 특허내자'는 주변 얘기도 적지 않았지만, 국민건강에 기여하자는 취지에서 이 기술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한다. 조만간 나올 김 대표의 책에도 자세히 기록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감자 말고도 글루텐 성분이 많은 농산물을 사용하면 된다"며 "다소 비싸긴 하지만 점액질이 많은 마에는 글루텐이 감자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