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값이 떨어졌다는데, 선물 세트 가격은 올랐네요. 별 수 없이 구매했지만 비싸네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 반포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추석맞이 한우 선물세트를 구매한 이모(36)씨는 이렇게 말했다.
명절마다 이 백화점에서 한우 선물세트를 구매한다는 이씨는 이날도 가족들에게 보내기 위해 6개의 한우 선물세트를 구매했다고 했다. 그는 "작년에는 이 정도 사면 할인을 해줬던 것 같은데, 올해는 할인도 안 해주더라"라고 말했다.
다른 백화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선물세트를 구매한 김창수(67)씨는 "물가가 많이 올랐다"면서 "앞쪽에 있는 한우 선물세트는 무려 250만원이더라. 처음에 '0′을 잘못 센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아내 말이 작년보다 3~4만원은 더 비싸진 것 같다더라"고도 했다.
실제로 한우 도매가격은 떨어지고 있지만, 주요 백화점들의 추석 한우 선물세트 가격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 백화점은 올해 '직경매 한우', '목장 한우' 등의 선물세트 가격을 평균 5~7%가량 인상했다.
이날 방문한 신세계백화점에서는 지난해 샀던 19만원짜리 한우 세트를 찾는 손님에게 점원이 "19만원 짜리는 없다. 1만원이 올라서 20만원이 됐다"고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해당 점원은 "선물세트 구성은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물가가 오르지 않았나"라고 덧붙였다.
현대백화점은 특선한우 실속세트 가격을 1만원 올렸다. 그러나 지난해 '초고가' 콘셉트로 내놓은 250만원짜리 '현대명품 한우 No.9(6.4㎏)′과 판매가가 10만원 중반에서 34만원까지 형성돼 있는 '소담세트'의 경우 작년 가격을 유지했다.
한우 도매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선물세트 가격이 오른 이유는 유류비·인건비 등이 선물세트 판매가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신세계 백화점 관계자는 "선물세트의 경우 대량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유 기간을 두고 농가별로 계약을 한다"면서 "계약 당시에는 한우 값이 지금보다는 10~15% 정도 더 비쌌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선물세트로 사용되는 고급 한우의 경우 실제 인하 폭은 5%가 되지 않지만, 인건비 등은 지난해 대비 10% 이상 올랐다"라고 했다.
올해 한우 도매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한우 '투플러스(1++)' 등급의 도매 가격은 지육 1㎏ 당 2만487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6025원 대비 4.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원쁠(1+) 등급의 경우 2만1123원으로 지난해 2만3333원 대비 9.5% 떨어졌다. 선물세트에 주로 쓰이는 1등급 한우의 경우 지난달 기준 1만7995원으로 지난해 2만1192원에서 15.1%나 떨어졌다.
그러나 올해 최저 임금은 지난해 8720원 대비 5.0% 오른 9160원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국제유가는 1배럴 당 109.73달러로 지난해 2분기 67.39달러 대비 62% 가량 올랐다.
다만, 대규모 계약이 이뤄지지 않고 인건비가 적게 들어가는 정육점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랐다. 백화점에서 구성한 선물세트 1.35㎏(한우등심·한우불고기용·한우국거리용 3종)를 정육점에서 똑같이 구성하면 백화점 판매가 보다 평균 3만~4만원 정도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대치동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현식(32)씨는 선물세트 가격이 저렴한 데 대해 "인건비도 적게 들어가고 국거리용 고기들은 계속 남는 상황이라 저렴한 편이다"면서 "다만 등심, 안심 등 구이용 고깃값은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백화점 선물 세트에 포함되는 등심, 안심 등의 부위는 소 한 마리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적은 데다, 견고한 수요가 있어 도매 가격 자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면서 "반면 설도 등의 부위는 지난해 추석 기간보다 공급이 늘어나며 가격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통상 추석을 앞두고 8만5000마리 정도의 소가 도축되지만 올 추석 기간을 앞두고는 10만여마리가 도축됐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추석을 앞두고 고물가 시대가 지속되는 한 선물세트 구매에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직접 못 가는 대신 조금 더 비싼 선물로 마음을 전하자는 작년의 분위기와는 달리, 올해에는 직접 찾아 뵙는 분위기여서 고물가 시대에 식사나 기름값도 고려해 약소하거나 실속형 선물세트를 고르는 등 소비자들이 부담을 줄이려는 경향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