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은현

SPC그룹이 매출 7조원 시대에 접어들었다. 허창성 창업주가 1945년 빵집 상미당을 설립한 뒤 사상 처음이다.

SPC그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재료 값이 오르는 가운데 해외 매장을 확대하고 퀵커머스 등 신사업을 키우며 올해 매출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포부다.

경영 일선에 본격 나선 오너 3세 형제간의 승계 경쟁도 치열해졌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SPC그룹은 작년 매출 7조923억원을 기록했다. 그룹 매출이 2018년 6조1625억원, 2019년 6조5126억원, 2020년 6조4897억원으로 3년간 정체됐다가 이른바 '마의 벽'으로 불렸던 6조원대를 뚫은 것이다.

그룹 영업이익은 2018년 1332억원, 2019년 1429억원, 2020년 1343억원에서 작년 1877억원으로 늘었다.

계열사 SPC삼립(005610)이 작년 매출 2조9470억원, 영업이익 658억원을 기록하며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SPC삼립은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7248억원, 13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 30% 늘었다.

올해 2월 선보인 포켓몬빵이 지난달 기준 4400만개 판매되는 등 베이커리 부문 매출이 꾸준히 늘고 간편식(HMR)도 성장세로 전해진다.

SPC삼립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식자재 유통 계열사 SPC GFS는 작년 매출 1조6834억원을 기록했다. SPC그룹 내부에선 "파리바게뜨, 쉐이크쉑 등 모든 사업이 흑자"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회사 측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재료 값이 오르고 있는데 하반기에도 성장세를 이어가며 매출 7조원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중기 목표"라고 했다.

SPC그룹은 오너 일가가 지주사인 파리크라상을 지배하고 파리크라상이 외식 브랜드(파리바게뜨·쉐이크쉑·파스쿠찌·라그릴리아 등)와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파리크라상 지분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63.31%를 갖고 있다. 허 회장의 장남 허진수 SPC그룹 사장(20.33%), 차남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12.82%), 허 회장의 배우자 이미향 여사(3.54%)가 지분을 보유하며 아직 3세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파리크라상은 SPC삼립(40.66%), SPC GFS(100%), SPC네트웍스(100%), 설목장(92%), SPC팩(70%) 등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SPC삼립은 허영인 회장(4.64%)과 허진수 사장(16.31%), 허희수 부사장(11.91%)이 나눠서 지배하고 있다.

허영인 회장은 허창성 창업주의 차남으로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두 아들에게 경영 수업을 하며 능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재계에 전해진다.

장남 허진수 사장은 올해 처음 지주사인 파리크라상 사장에 올랐고 차남 허희수 부사장은 수년간의 공백을 깨고 마케팅 계열사 섹타나인에 복귀했다.

허진수 사장은 코로나를 뚫고 해외 매장을 확대하며 그룹 매출을 키우고 있다. 국내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은 연 2% 이내로 신규 매장을 출점해야 하고 동네 빵집과 500m 거리 제한이 적용돼 성장이 쉽지 않다.

파리바게뜨는 2004년 중국을 시작으로 미국, 프랑스, 베트남 등 8개국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세계 인구 24%를 차지하는 무슬림을 겨냥해 말레이시아에 할랄(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 인증 공장을 짓고 2030년까지 동남아시아에 매장 600개 이상을 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파리바게뜨는 현지 기업인 버지야 푸드 그룹과 합작 법인으로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2023년부터 빵과 케이크, 소스류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허진수 사장은 "2500조원(2조달러)에 달하는 할랄 푸드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라며 "과감한 투자로 해외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허희수 부사장도 섹타나인에서 퀵커머스와 메타버스 등 신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섹타나인은 지난 4월 배스킨라빈스·쉐이크쉑 등을 도보로 배달하는 플랫폼 해피크루를 선보였다.

인공지능 기술로 가장 근처에 있는 배달원에게 주문을 자동으로 연결해주며 배달원 한 명이 한 건의 배송만 가능하다.

자영업자는 별도 배달 대행 가맹비 없이 이용한 건에 대해서만 비용이 청구돼 배달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서울 서초·강남·송파 등 15개구를 시작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섹타나인은 최근 메타버스 스타트업인 하이퍼클라우드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하이퍼클라우드는 가상·증강현실 솔루션 및 콘텐츠 개발 업체로 딥러닝(심층 학습), 융합 센서 관련 기술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에 매장을 비추면 가상 이미지를 합성해 보여주는 게 대표적이다.

섹타나인은 이번 투자를 통해 증강현실과 메타버스를 접목한 차세대 플랫폼을 개발할 계획이다. 섹타나인 측은 "연내 위치정보기술(GPS) 기반의 증강현실 마케팅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허 회장이 아직 보유 지분을 아들에게 나눠주지 않은 상황이라 현재로선 후계 구도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며 "허 회장도 차남인데 회사를 물려받았고 형이 운영하다 실패한 회사를 살려 성공시켰기 때문에 경영 능력이 뛰어난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