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왜 요즘 증류식 소주 같은 전통주에 열광하는 줄 아십니까?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익숙한 이들은 옷이든 술이든 음식이든 자랑하고픈 니즈가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전통주 중에는 맛도 맛이지만, 우선 시각적으로 눈길을 끄는 용기 디자인이 돋보이는 제품들이 많아요. 희석식소주인 참이슬, 처음처럼도 마시지만, 이런 술들을 SNS에 올리지는 않죠.”
국내 대표적인 전통주 유통기업인 부국상사 김보성 대표는 최근 화제를 모은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 열풍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 대표는 “원소주는 술맛이 아주 뛰어나기보다는 셀럽(박재범)이 만든 소주라는 점에서 젊은층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며 “셀럽들이 전통주 만들기에 잇따라 참여하는 것은 전통주 시장 활성화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15년 전, 국내 처음으로 전통주 전문 유통기업인 보국상사를 설립, 전국의 호텔과 전통주점, 보틀샵 등에 전통주를 공급하고 있는 김보성 대표는 경남 창녕의 양조장 우포의 아침과 협업해, 최근 증류식소주 ‘의리남’을 내놓았다. 그와 이름이 같은 배우 김보성의 ‘의리’ 캐릭터를 활용한 제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16.5도로, 일반 희석식소주와 비슷하다. 하지만 95% 알코올 도수의 주정에 물을 다량으로 탄 희석식소주는 아니고, 쌀을 원료로 발효주를 만든 뒤 이를 증류한 증류식 소주다. 대개 증류식소주 원주 도수가 45도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물은 꽤 가미했다고 볼 수 있다. 시장의 반응은 사실, 아직 뜨겁지 않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아랑곳 않는다. “다음에는 포항의 ‘폭탄주 이모’와 콜라보한 포항쐐주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탄주 이모는 유튜브를 통해 쏘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맛깔나게 타는 동영상을 올려, 화제가 된 여성을 말한다.
김 대표는 현재 온-오프를 넘나들며 전통주 유통사업을 펼치고 있다. 우선 전국의 호텔, 주점 등에 전통주를 공급하는 도매사업(오프라인)을 하면서, 롯데백화점 5곳, 서울 홍대점 등 우리술상회 오프라인 소매 매장 10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같은 이름의 우리술상회 온라인 전통주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다. 롯데아사히주류, LG상사 트윈와인에서 술 유통 경력을 쌓아온 김 대표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먼저 하는 편’이라는 성격대로 남들보다 앞서 전통주 유통사업에 발을 담갔다. 그게 15년 전이고, 지금은 회사가 매년 20~30% 매출이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김보성 대표와의 인터뷰 장소는 우리술상회 홍대점. 이곳은 바를 겸하고 있어 현장에서 구매한 술을 마실 수도 있다.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가 영업시간. 김 대표는 “홍대상권에 매장을 연 이유는 전통주가 젊은 층에게 어떻게 어필하는지 잘 알 수 있는 안테나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년 10월에 문을 연 이곳은 현재 320종의 술을 취급하고 있다. 젊은층이 좋아하는 수제맥주, 수입와인도 몇종 있지만, 지역특산주, 민속주 등의 전통주가 대부분이다.
-박재범의 원소주 열풍에서 보듯, 젊은 세대의 전통술 관심이 뜨겁다. 이들에게 전통주(증류주)는 ‘탄내 나고 고루한 술’이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최근 호감도가 크게 상승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박재범이라는 셀럽이 워낙 인지도가 높아 젊은층의 니즈를 자극한 것 같다. 원소주 자체의 맛보다는 박재범의 개인 브랜딩이 워낙 잘돼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15년 전에 내가 전통주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안동소주, 문배주, 이강주, 한산소곡주 대부분의 패키지가 도자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 변했다. 젊은층이 선호하는 유리병 등으로 용기를 바꾸었다. 우선 시각적으로 한번 마셔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접근성이 편해졌다. 전통주의 다양성 역시 개성 강한 MZ세대와 잘 맞는 것같다.”
-증류식 소주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첫번째가 재료의 다양화를 꼽는다. 원료부터 소주가 다양해지고 있다. 가성비 좋기로 소문난 ‘서울의 밤’은 매실을 베이스로 한 리큐르다. 오미자 증류주, 딸기 증류주도 있다. 예전에는 90% 이상이 쌀을 원료로 한 증류주였다.
두번째는, 증류식 소주의 재미있는 용기 패키지를 들 수 있다. ‘금설’은 금이 들어간 증류식 소주다. 식용 금이 들어가 있다. 쌀이 원료이긴 하지만, 금 가루를 넣어서 포인트를 준 거다. 버튼을 누르면 바닥으로부터 불이 들어온다. 마시기도 전에 우선, 시각적 재미가 있다. 젊은층은 물론 연세 드신 분들도 다 좋아한다. 이런 술들은 SNS에 자랑하고 싶은 젊은층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소주는 아니지만 ‘인어교주해적술’에는 식용 펄이 들어가 있어 흔들면 마치 파도가 이는듯하다. 파티할 때 젊은층이 굉장히 좋아하는 술, 분위기를 띄우는 술이다.
식당도 맛집 외에 요즘에는 멋집이 유행하는 것처럼, SNS를 선호하는 젊은층 사이에는 재미있는 요소가 들어있는 술들이 인기를 끈다. 인스타 등을 통해 플렉스하고 싶은 술들, 펀한 술들이 인기다. 하지만, 기존의 희석식소주나 맥주는 이런 니즈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병당 5000원이 넘는 프리미엄 막걸리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는?
“15년 전 사업 시작할 때 막걸리 붐이 대단했다. 지역막걸리들이 서울 진출하고, 막걸리 전문점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길 때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프리미엄 막걸리 존재는 거의 없었다. 복순도가, 자희향 같은 1세대 고급 탁주가 그나마 있었다.
지금은 가격이 1만원 이하인 준프리미엄 막걸리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아주 하이엔드가 아니라, 중간 가격대 막걸리들이 인기다. 재료, 패키지 등에서 다양한 막걸리들이 나왔다. 소비자들도 장수, 지평막걸리 외에도 좋은 우리 막걸리들이 많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막걸리가 나오면 다소 비싸더라도, 한번 마셔보겠다는 젊은 소비자들이 많다.”
-국내 주류 시장 전체는 다소 주춤한 반면, 전통술 시장 신장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향후 전통술 시장 전망은?
“2017년 7월, 전통주 온라인 판매 허용은 전통주 시장의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대형마트는 한정적 공간 안에서 상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전통주를 많이 취급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은 공간적 제약이 없다. 수많은 전통주들이 온라인으로 구매가 가능해졌다. 그래서 젊은층들이 좀더 쉽게 전통주에 접근하게 됐고, 양조장들도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 접근이 쉬웠다. 온라인 판매를 계기로 전통주 시장이 커졌다. 시장 규모가 커지다 보니 판매하는 술들도 점차 다양해졌다. 술이 다양하니까 또 젊은층이 좋아하게 되고, 이런 식으로 소위 선순환 구조가 가능해졌다.
온 시장이 커지는 것도 주목할 현상이다. 주류시장은 온 시장, 오프 시장으로 나뉜다. 온 시장은 병 뚜껑을 직접 따는 시장이다. 예를 들어, 주점, 식당 등이 온 시장이다. 오프 시장은 테이크아웃하는 시장이다. 편의점, 백화점, 대형마트가 그것이다. 예전에는 전통주가 도자기병으로 돼 있다보니, 직접 마시기보다는 선물용으로 주고받았다. 그래서 오프 시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감각적인 디자인 제품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온 시장이 많이 발전하고 있다. 구매자가 직접 술을 선택해서 마시는 업소용으로도 많이 팔린다는 얘기다. 양조장들도 이제는 선물용이 아닌 업소용(직접 소비자가 마시는) 컨셉에 맞는 제품, 패키지에 주목하게 됐다.”
-15년전에 전통주 전문 유통기업인 부국상사를 창업한 계기는?
“2005년, 롯데아사히주류에서 주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당시에 스카치블루, 바카디, 그리고 와인을 취급했다. 그러다, LG상사 트윈와인으로 옮겼다. 남들이 안해본 걸 하는 것을 선호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전통주 사업을 하게 됐다. 주위에서는 “네가 잘했던 맥주, 와인 사업을 하지, 왜 전통주를 하냐”고 말렸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왜 전통주는 인기가 없을까? 매장에서도 보이지도 않고’ 궁금했다. 그나마 전통주를 취급하는 마트도 종류가 너무 적었다. 안동소주, 문배술, 이강주, 화요, 복분자, 매취순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인터넷 자료 검색을 해보니까 명인 술들이 많았다. 그래서 주말마다 무작정 전국을 돌아다니며 명인, 무형문화재 분들을 만났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지역특산주도 많지 않았다.”
-원소주 외에도 셀럽, 연예인을 앞세운 전통술 신제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전통술 외연 확대에 긍정적이라고 보나?
“아주 긍정적이라 본다. 술도 음식이고 문화다. 외국의 경우에는 배우, 스포츠스타 등 셀럽이 직접 하는 술들이 엄청 많다. 본인의 양조장을 갖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런 경우가 없었는데, 박재범이라는 셀럽이 들어왔고, 여러 셀럽들이 술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는 걸로 안다. 저와 이름이 같은 배우 김보성의 ‘의리남소주’도 같은 경우다. 기존 양조장들도 셀럽과 콜라보 형태를 통해 신제품을 내놓음으로써 양조장을 키울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장악한 소주시장, 오비와 하이트가 양분한 맥주시장 체제에 균열이 보이고 있다. 아직 비중은 낮지만, 증류식 소주와 수제맥주가 그 틈을 비집고 치고 올라오고 있다. 대량생산으로 만드는 술 소비에 한계가 온건가?
“96학번인 내가 대학시절에 유행했던 술이 오이소주, 체리소주였다. 이런 칵테일 소주가 유행했다. 소주 자체의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오이, 체리 같은 부재료를 즉석에서 넣은 술들이 인기였다.
요즘 세대들은 소주, 맥주도 좋아하지만, 다양성을 더 좋아한다. SNS를 통해 새로운 술을 접하게 되면 일단 맛을 보고 싶어한다. 와인도 이전에는 유명와인이 잘 나갔다면, 요즘엔 라벨이 예쁜 와인들이 잘 나간다. 이런 추세를 부추긴 것이 SNS다. 인스타그램에 예쁜 술을 마신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비주얼적인 술의 판매를 이끈 것이 SNS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천편일률적인 공장형 술들은 젊은층이 SNS에 올릴 여지가 없다.”
-개성있는 소비가 새로운 주류문화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영업 현장에서 느끼는 정도는?
“홈술, 혼술 영향으로 개성있는 술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요즘엔 새로운 술이 나오면 우선, 제품명과 용기 패키지가 예쁘면 맛을 떠나, 그냥 먼저 사는 경우가 많다. 젊은층은 맛도 중요하겠지만 시각적, 보여지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그래서 양조장 대표를 만나면 이런 점들(시각적으로 관심을 끄는 제품을 만들어라)을 강조한다. 새로 출범하는 지역특산주들은 소비자 접근을 빨리 하려고 할텐데, 역사, 전통같은 스토리텔링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재미, 펀을 강조하는 제품이 어필하기 쉽다고 권한다. 젊은층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좀더 캐주얼한 술을 만드시라고 말한다.
원료적인 것도 많이 얘기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증류식 소주가 쌀 베이스인데, 쌀로 만든 약주, 쌀로 만든 소주, 정말 많다. 그래서 우선 원료의 차별화를 하라고 권해드린다. 남들과 다른 차별화 포인트가 있어야 유통업자인 나도 팔 자신이 생긴다. 젊은 양조인들은 내 말을 잘 받아들인다.”
-막걸리를 제외한 전통술 시장 비중은 전체 술 시장의 1%가 아직 안된다. 전통술 시장이 장차 기존 주류 시장 규모의 몇 퍼센트까지는 커질 거라고 보나?
“내 바램은 기존 술시장의 10%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근거로 우선 채널의 다양성을 든다. 전통술이 선물 위주였다가 온라인, 온시장까지 진출하지 않았나. 앞으로 새로 진입할 시장이 무궁무진하다.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클럽도 있고, 유흥주점도 아직은 미개척 시장이다. 업소의 성격에 맞는 맞춤형 전통술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기본적으로 백화점에 나가는 술과 마트에서 파는 술은 같지 않다. 편의점용 술도 약간은 다르다. 유통채널을 잘 연구하면 그에 걸맞는 술을 개발할 수 있다. 이제 시작이다. 아직 갈길이 먼 만큼 잠재력도 크다.”
-부국상사의 비즈니스를 소개해달라.
“부국상사는 전국의 호텔, 전통주전문주점, 바틀샵 등 외식업장에 전통주를 공급하는 도매 유통회사다. ‘우리술상회’ 온라인 전통주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다. 안동소주, 이강주 등을 직접 구매해서 온라인(우리술상회)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오프라인 매장 우리술상회는 롯데백화점 5개 매장이 있고, 이곳 홍대점도 우리술상회다. 아크앤북 3개 점포에도 규모는 작지만 우리술상회가 들어가 있다. 오프라인 매장이 10개에 달한다.”
-양조장 협업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의리남 소주는 경남 창령에 있는 양조장 우포의 아침 양조장과 협업한 제품이다. 또, 포항의 ‘폭탄주 이모’와 포항쐐주(지역특산주)를 같이 만들고 있다. 생산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폭탄주를 참이슬, 처음처럼 같은 희석식소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지역농산물을 원료로 한 지역특산주로 만든다는 것이 특이하다. 재미난 술이 될 것이다. 알코올 도수는 15.5도로 생각하고 있다. 젊은층들은 알코올 도수 낮은 소주도, 맥주 섞어 마시는 걸 즐긴다. 외국인 대상 전통주 교육원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