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의 한 냉면집 앞. /홍다영 기자

지난 14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한 냉면집 앞에는 20여 명이 줄 서 있었다. 백발 노인부터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까지 점심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은 “15분쯤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곳은 올해 초 냉면 가격을 1000원 올렸지만 여전히 만석이었다. 노인 3명이 소주 3병과 냉면을 먹고 있었다. 4인 자리에 의자 1개를 추가해 5명이 앉기도 했다. 대기하던 한 노인은 “냉면값도 이제 비싸졌다”며 혀끝을 찼다.

앞서 오전 11시쯤 찾은 서울의 다른 냉면 가게도 30여 명의 사람들이 냉면을 먹고 있었고 문 밖에서 10여 명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곳도 올해 초 냉면 가격을 1000원 올렸다. 냉면 업계 관계자는 “메밀 가루부터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 등 육수 재료까지 가격이 올랐고 최저임금 등 인건비가 증가해 부담이 크다”고 했다.

여름철 서민음식으로 여겨지던 냉면가격이 한그릇에 1만6000원까지 오르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냉면 가격은 평균 1만269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87% 올랐다.

서울 6대 냉면 가게 중 3곳도 올해 초 가격을 올렸다. 을지면옥·필동면옥은 1만2000원에서 1만3000원으로, 봉피양은 1만4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인상했다.

우래옥(1만6000원), 을밀대(1만3000원), 평양면옥(1만4000원) 등도 1만원이 넘는다.

그래픽=이은현

냉면은 메밀 등으로 면발을 뽑는다. 가게마다 배합 비율이 다르지만 한우 양지·돼지고기 목심·닭고기 등을 끓여 육수로 만들고 계란·오이·무절임 등 고명을 더한다.

업계에서는 1만원대 중반에 판매되는 냉면 재료비는 많아야 3000~4000원대라고 추산한다.

서울 한 냉면집은 수입 메밀로 평양냉면을 만든다. 수입 메밀 200g 반죽으로 1인분을 만든다고 계산하면 메밀값만 900원 수준이다.

여기에 무절임 고명을 1인분에 60g 제공한다면 무 가격 44원에 양념까지 많아야 100원이다. 계란 반쪽 100원, 수육 고명 500원대, 김치 등 반찬은 200~300원대로 전해진다.

배합 비율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1만원대 중반 냉면에 들어가는 육수 가격은 1000~2000원대로 업계는 보고 있다.

소비자들은 냉면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른 외식 품목에 비해 많지 않은데 가격이 비싸다는 입장이다.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한 30대 남성은 “일주일에 세 번은 냉면을 먹었는데 예전처럼 즐기지 못하고 있다”며 “서민 음식이 더이상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지갑이 얇은 일부 노년층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14일 서울에서 판매 중인 냉면. /홍다영 기자

평양냉면 등의 인기로 수요가 늘자 냉면 가게들이 값을 올린다는 의견도 나온다. 평양냉면은 심심한 맛에 깊은 육수가 특징으로 실향민이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찾던 음식이다. 술을 마시고 해장하는 이들도 즐겨 먹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오르며 젊은층이 평양냉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냉면 맛집을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며 ‘완냉(냉면 완전 정복)’ 등의 신조어도 생겼다.

업주들은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가 올라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국 등에서 메밀 수입이 줄었고 세계 곡물 사료 가격이 오르며 돼지고기·닭고기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냉면은 사람이 직접 면발을 관리하고 고명을 얹는 등 인건비가 다른 외식 품목보다 많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게 업주들 설명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5% 오른 9160원이다.

냉면업계 관계자는 “다른 식당과 다르게 최저임금보다 인건비를 더 주고 있다”며 “냉면 한그릇에서 재료비, 인건비, 전기료 등을 고려하면 값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자 외식 대신 집에서 냉면 간편식(HMR)을 만들어 먹는 사람도 늘고 있다. 풀무원(017810)은 “작년 7월 여름면 매출이 전년 대비 84.3% 늘었는데 올해도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풀무원은 고지대 평원에서 자란 메밀 냉면을, 신세계푸드(031440)는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봉밀가와 협업해 올반 평양식 메밀 국수를 선보였다. CJ제일제당(097950)은 동치미 물냉면에 청양초 양념을 넣고 면선(麵線) 분리 기술로 끓는 물에 50초면 풀어지는 제품을 선보였다.